[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64) 영화 ‘미쓰백’
요즘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인데요. 2010년 5657건이었던 아동학대가 2017년 2만 2367건으로 7년 새 약 4배가 증가했습니다. 여기서 가해자의 76.8%가 부모라는 사실이 더 놀랍고도 안타깝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이렇게 부모의 학대 속에 방치된 아이와 그 아이를 외면하지 못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렌지빛 탈색 머리에 새빨간 립스틱, 검은 가죽 재킷에 뾰족한 힐, 딱 달라붙는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세상일엔 관심 없고 세상도 나한테 관심을 꺼 줬으면 싶은 여자의 이름은 백상아, 미쓰백(한지민 분)이라 불립니다. 어릴 적 발생한 사고로 인해 전과가 있는 그는 하루하루 여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어느 겨울밤 집 밖에 나간 상아는 골목길에 홀로 서 있는 한 아이에게 시선이 머뭅니다. 달랑 원피스 한 벌만 입고 추위에 떠는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 포장마차로 향하죠.
아이의 이름은 지은(김시은 분)입니다. 배고픔에 허겁지겁 배를 채우던 지은은 밖에서 엄마 미경(권소현 분)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죠. 집에 가자는 엄마의 말에 덥석 상아의 손을 잡습니다. 마치 자기를 좀 구해달라는 구조신호처럼요. 이때 상아는 지은의 어깨와 손에 난 멍과 상처를 보게 되는데요. 이를 외면하죠.
하지만 골목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그 아이가 잊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여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상아 역시 아동학대 피해자였는데요. 어릴 적 알코올중독이었던 엄마에게 학대받고 버려진 아픔이 있죠.
지은을 데리고 경찰서에도 가봤지만 신고해봤자 주의를 줄 뿐 다시 집에 돌려보낸다는 지은의 말에 상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떠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안 그는 모든 걸 외면하고 떠나려 하는데요. 그때 다시 상아 앞에 지은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더는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외면해버린 이 두 여자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이지원 감독이 직접 겪은 일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감독은 몇 년 전 옆집에 살고 있던 아이가 도움이 필요해 보였지만 직접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는데요. 그런 와중에 뉴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이 그에게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고 하네요.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배우 한지민입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봄밤’과 이전에 만만한 리뷰에서 소개해 드린 적 있는 ‘눈의 부시게’ 까지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주로 사랑스럽고 단아한 역을 주로 했었는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외적인 이미지 변신은 물론 욕이 섞인 거친 말투에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빛, 격한 몸싸움까지 합니다. 한지민 본인도 처음 이 시나리오를 받고 이 시나리오가 정말 자기에게 들어온 게 맞는지 물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한지민’이라는 배우의 이미지 틀에서 벗어나는 역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열연 덕분인지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여자 최우수연기상과 제3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요. 이번 영화를 통해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밖에도 지은 역을 맡은 김시은 배우와 지은의 엄마 미경 역을 맡은 권소현 배우, 상아를 유일하게 믿어주고 감싸준 장섭 역의 이희준 배우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 속 ‘지은’과 같은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발견하고 이들을 위해 용기 내지 못했던 분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는데요. 영화의 내용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도움이 필요한 내 주변의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미쓰백
감독&각본: 이지원
출연: 한지민, 김시아, 이희준, 권소현, 백수장, 김선영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8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10월 11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