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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사이 한국은 누구 친구냐, 일본이 경고사격 날린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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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호 08면

한·일 갈등, 일본의 속내 - 후카가와 교수

25일 세계경제포럼 강연 참석차 한국을 찾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나빠졌으며 민간 부문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국제무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따돌림당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25일 세계경제포럼 강연 참석차 한국을 찾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나빠졌으며 민간 부문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국제무역 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따돌림당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한국은 누구의 친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 답할 건가. 자칫 국제적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세계적인 보호무역 기조 속에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의 한·일 무역갈등은 일본의 강제징용과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서 시작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파생된 국가 간 편가르기 차원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피아식별을 위해 한국에 일종의 경고사격을 날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25일 오전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에 앞서 만난 그는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매우·대단히’ 등의 말을 30여 차례나 사용하며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심각성과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 정부, 민간 자산은 침해 안 해 #한국 신뢰 깨져 전략물자도 의심 #그래도 수출규제 등은 극히 이례적 #일 ‘백색국가 제외’ 이후 일단 관망 #한국인 채용 중단, 파트너십 철회 등 #민간선 자발적 거래 단절 가능성 #한국은 미·중 사이서 애매한 태도 #자칫 고립되거나 따돌림당할 수도

남북 문제 풀리면 다 해결? 희망에 불과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양국 간에 늘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은 좀 더 심각하다. 발단은 한국 대법원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해소됐다는 2005년 판단을 뒤집은 데서 비롯됐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신뢰가 무너졌다. 그간 한·일 관계에 피로감이 누적된 측면도 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적 의도라는 분석도 있었지만, 일본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하다. 한국 문제가 아니어도 자민당이 이길 선거였다.”
일본은 왜 한국이 안전보장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국이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거부감이 크다. 전후 일본 정부는 기업이 아무리 비도덕적 행동을 해도 민간 자산을 침해한 적이 없다. 국가 신용의 기본이다. 한국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전략물자가 어디로 흘러갈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전략물자가 북한 등에 흘러갔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다만 수출규제나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의 카드를 꺼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보다 대일 정책에서 더 강경한가.
“외교란 경제·문화 등 여러 화두를 포괄적으로 다루는데, 현재 한국은 남북 대화 한 가지에만 천착한다. 남북 문제를 풀어야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희망에 불과하다. 한국의 태도에 일본은 물론 미국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지만 미국은 글로벌 이슈를 신경 쓰는 나라다. 외교는 포괄적 게임이다.”
수출규제를 앞두고 미·일 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 보나.
“물론이다. 주요20개국(G20) 정상 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만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수출관리를 희망하기 때문에 일본도 동맹국으로서 동참의 뜻을 밝혔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번복하지 않는다면 더는 논의가 진척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5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약속을 희망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동남아시아과도 비슷한 문제가 걸려 있어 굽히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업을 규제하면 일본 기업도 피해를 입지 않나.
“한국은 앞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재 국산화를 할 것이고, 다른 공급처를 찾을 것이다. 일본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한국에 일관성을 담보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기업 문화는 매출보다 규정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안보 이슈가 있는 국가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추가 카드를 꺼낼 수 있나.
“일본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는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일본 국민들은 가족과 국가 단위 사이의 공공 영역이 외부로부터 침해 받는 데 굉장히 예민하다. 자발적으로 한국인 채용을 중단한다든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끊을 수 있다.”
미국의 중재자 역할이 필요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영향을 미칠 중동 문제에 집중하고, 한·일 문제는 양국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제조 2025를 겨냥해 지난해 전략물자 유출 관리 규정을 정했는데, 여기에 동맹국 모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화웨이 제재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을 제한한다는 입장이다. 국제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미·일은 밀착 관계인데 비해 한국은 어느 쪽인지 불분명하다.”

수출규제 미·일 간 사전 교감 있었을 것

한국도 미국의 동맹국 아닌가.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중국 중 양자택일을 선택받지 않기 위해 외교를 펼친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끼기 어렵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칫 고립되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WTO에서의 협상력을 자신하고 있지만, WTO는 올해 12월 존폐 기로에 놓인다. WTO 체제는 애초에 미국·유럽 등 동맹체제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보 약정이 느슨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중국·러시아·이스라엘 등이 참여하며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해졌다. 미국은 국가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유무역보다 안보를 더 중시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많은 나라가 연대하고 있고, 앞으로 한국은 누구의 친구냐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WTO가 붕괴하면 한국은 대응 카드가 없어진다.”
한국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중·일 관계가 개선된 가운데 북·미 협상이 펼쳐지면 한국의 역할이 없을 수도 있다. 외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와의 게임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경험이 부족하다.”

보호 무역 득세, 분쟁 조정 한계…WTO 벼랑 끝

세계무역기구(WTO)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상설 기구로 격상시켜 1995년 출범했다. 미국 정부가 다자간 무역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47년부터 50년간 공을 들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WTO 체제 속에 글로벌 자유무역은 꽃을 피웠고, 1990~2000년대 세계 경제는 유례 없는 호황을 맛봤다.

그런 WTO가 위기에 처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는 가운데 분쟁 조정의 한계를 드러내며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우선 WT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무역 분쟁을 담당하는 상소기구부터 존폐 기로에 놓였다. WTO 상소기구 최종심 상급위원회는 7명 중 현재 4명이 공석이다. 나머지 3명 중 2명도 올해 12월 임기가 끝나, 중국 출신 수석위원 1명만 남게 된다. 위원회를 3명 이상으로 유지하지 못하면 상소기구는 역할이 정지된다.

공석이 생겨도 이를 채우지 못하는 것은 WTO의 산파 역할을 한 미국의 반대 때문이다. 수석위원 선임은 164개 WTO 회원국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미국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수석위원 임명을 저지하고 있다. 다른 회원국들은 미국 눈치만 보고 있다. 이를 두고 리카르도 라미레스 에르난데스 WTO 상소기구 전 수석위원은 지난해 5월 고별 연설에서 “WTO가 서서히 목 졸려 죽고 있다”고 평가했다.

WTO는 16일(현지시간) 중국 정부의 태양광 패널·풍력탑 보조금을 둘러싼 미·중 갈등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주며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성명을 통해 “이 판결이 미국 근로자와 기업에 피해를 주고 중국 국영기업 보조금에 대한 대응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강력 반발했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WTO 탈퇴 가능성 언급이 단순히 엄포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WTO를 탈퇴하면 다른 나라들은 대미 관세를 마음껏 올릴 수 있지만, 무역법 301조(수퍼 301조) 등 미국의 보복 조치에 따른 피해가 더욱 클 수 있다.

국제사회 여론도 대체로 WTO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WTO의 분쟁해결 기능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보호무역주의 반대는 언급되지 않았다. 마이클 오설리번 크레디트스위스 전 최고투자책임자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 성장 둔화와 ‘통화 행동주의(monetary activism)’, 부의 양극화 등으로 세계화와 작별해야 할 때”라며 “세계 경제는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중심 아시아 등 세 권역으로 나뉘며 WTO와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역할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 1958년 도쿄 출생으로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와세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30년 넘게 동아시아 경제와 제도, 산업 발전을 연구해온 지한파 경제학자다. 한국 학계·재계와 폭넓게 교류하고 있으며 동북아, 한·일 관계 학술 행사의 단골 명사로 인기가 높다. 현재 일본 총리 관저 산하 아시아게이트웨이 전략회의 7명 멤버 중 하나로 활동 중이다. 한국 정치·경제에 대한 쓴소리와 조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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