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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 행복한 이유, 몰입에 있었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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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호 20면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크리스틴 웨인코프
듀란소, 필립 래터 지음
제효영 옮김
샘터

힘든 일도 힘들지 않은 몰입 #생산성·창의성 최고로 높여 #의도하면 도달하기 힘들어 #달리기할 때 빈번하게 발생

뭔가에 몰두·몰입·전념하고 있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로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잡념과 가식과 헛된 욕심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 몰아(沒我·자기를 잊고 있는 상태), 황홀경(恍惚境·한 가지 사물에 마음이나 시선이 혹하여 달뜬 경지나 지경)···.

심리학은 명경지수·몰아·황홀경 상태를 연구 주제로 삼는다. 선두 주자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클레어몬트 그레쥬에이트 유니버시티(CGU) 교수다. 그는 1970년대부터 ‘flow(플로·흐름)’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수백 명의 연구자가 플로 현상을 연구했다. 칙센트하이 교수는 『플로』(1990)를 비롯해 각국 언어로 번역된 플로 관련 책들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각국 출판계는 영어 ‘flow’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자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 그대로 flow로 쓴다. 스페인에서는 flow를 플루호(flujo)로 직역했다. 포르투갈에서도 직역해 플루슈(fluxo)다. 중국어로는 심류(心流)다.

우리 출판계는 몰입(沒入·깊이 파고들거나 빠짐)을 선택했다. 플로나 흐름을 선택하지 않았다. 애초에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플로를 학술 용어로 선택한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흐르는 물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것 같은 체험’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긍정 심리학’의 리더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따르면 달리기는 ‘흐르는 물에 몸을 내맡기는 것 같은’ 황홀경에 쉽게 도달하는 방법이다.

‘긍정 심리학’의 리더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따르면 달리기는 ‘흐르는 물에 몸을 내맡기는 것 같은’ 황홀경에 쉽게 도달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정적(靜的)인 동양과 동적(動的)인 서양의 차이가 단편적이나마 드러난다. 인간의 정신적인 몰입 상태가 동양에서는 ‘지극히 고요해 거울 같은 물’이다. 서양에서는 ‘흐르는 물’이다.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에 따르면 플로는 다음 같은 효과가 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가운데 어수선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미래 걱정에서 해방돼 오로지 현재를 느낄 뿐이다. 힘든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고 즐겁다. 그래서 최상의 성과, 생산성을 낳는다.

수돗물 흐름을 수도꼭지 개폐로 통제하듯, 플로 상태 속으로 자유자재로 들락날락할 수 있을까.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이 이 문제에 답한다. 교육·스포츠 등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는 플로를 일상생활에 도입하는 법을 제시한다.

제목만 봐서는 달리기에 대한 책으로 오인될 수 있다. 물론 플로를 통해 더 잘 달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하지만 책의 주제는 몰입이다. 달리기는 몰입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는 인간 활동 사례에 불과하다.

원제 ‘러닝 플로(Running Flow)’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중의미(double meaning) 수사법이 제목 짓기에 활용됐다. 러닝은 명사로는 달리기이지만 형용사로서는 ‘연속의·오랜·흐르는’이다. 플로 상태를 연속적으로 오래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한 책인 것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는 인용문은 다음과 같은 게 있다. “자주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게, 더 큰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사람마다 몰입 경험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몰입을 목표로 설정하면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몰입의 특징이다” “몰입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몰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가능하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몰입을 경험할 가능성을 높인다”

전작인 『창의성의 즐거움』(1996)에서 저자는 “몸과 마음을 바쳐 무아지경을 체험하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요 창의성이 발휘되는 순간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IQ와 창의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했다. “연구에 따르면 120 전후의 IQ 이상이면 창의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120으로 충분하다. 130, 140, 150 등 IQ가 높아진다고 해서 창의성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22세에 헝가리에서 미국에 이민 갔다. 시카고대에서 심리학 학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리학과에 진학했을 때 처음엔 실망했다. 심리학 연구 대상이 ‘비정상적’인 인간 현상이었기 때문. 행복이나 창의성, 플로같이 ‘정상적’인 문제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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