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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수 없는 태아 환자, 심장판막 넓히고 종양도 제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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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호 28면

[J닥터 열전] 원혜성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

원혜성 교수가 산모들이 보내온 편지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힘들 때마다 도착한다는 편지는 그에게 활력소 그 이상이다. 전민규 기자

원혜성 교수가 산모들이 보내온 편지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힘들 때마다 도착한다는 편지는 그에게 활력소 그 이상이다. 전민규 기자

보통의 의사는 환자를 보며 치료한다. 환자와 마주하며 아픈 곳 얘기를 듣고 시진·청진·촉진을 동원해 몸 상태를 살핀 후 치료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한 번도 마주 보지 못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다. 바로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원혜성(54) 교수다. 그는 엄마의 뱃속에 자리한 기껏해야 20㎝ 남짓한 태아와 소통한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어 오직 초음파로만 대화한다. 그런 그를 엄마들은 ‘새 생명 구원자’라고 부른다.

미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 연수 #‘태아 치료’ 첫 도입 2000건 치료 #“어렵게 얻은 아이 아픈 경우 많아 #작은 수술도 기도하며 들어가”

원 교수는 태아 치료 개념을 국내 처음 도입하고 30여년간 고위험 태아를 수술해온 태아 치료 분야 권위자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수정된 후 40주라는 기간 동안 많은 위기를 거치며 성장한다. 이때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꽤 많다. 원 교수가 발전시킨 태아 치료 덕분에 예전이라면 포기해야만 했던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세 번의 슬픔 딛고 원 교수 만나 정상 출산

신은정(가명·36·대구)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씨는 지난 4년 동안 세 명의 죽은 아이를 출산했다. 임신만 하면 5개월 차에 아이의 심장이 멈췄다. 유명하다는 의사를 모두 찾아다녔지만 습관성 유산이라는 진단만 들을 뿐이었다. 4번째 임신한 후 원 교수를 찾아갔다. 원 교수는 정밀 검사를 거쳐 신씨의 유산이 ‘M 항체’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엄마의 특이 항체가 탯줄을 통해 아이의 핏속으로 들어가면서 적혈구를 깨트리고, 장기 기능에 문제를 일으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원 교수는 급히 아이의 적혈구 수치를 정상화하는 ‘태아수혈’ 시술을 했다. 엄마의 배·자궁·양막·양수를 거쳐, 움직이는 태아의 1~2㎜ 되는 탯줄을 정확히 찾아 순간적으로 수혈 기구를 삽입해야 하는 고난도의 시술이다. 신 씨는 8번에 걸쳐 수혈 치료를 받았고, 지난달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

쌍둥이를 출산한 정아영(가명·34·서울 성동구)씨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동네 산부인과에 갔더니 불과 몇 주 전 검진 때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던 쌍둥이의 심장 박동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주치의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빨리 원 교수에게 가보라고 의뢰서를 써줬다. 문제는 쌍둥이 간 연결된 혈관이었다. 한쪽 태아의 혈액이 다른 쪽 태아의 혈액으로 공급되면서 혈액을 주는 아이의 성장은 더디어지고 받는 아이는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원 교수는 급히 산모의 배꼽을 통해 자궁 안으로 내시경을 밀어 넣어 쌍둥이 간 연결된 미세 혈관을 하나하나 분리했다. 사망 직전까지 떨어졌던 쌍둥이의 심장 박동은 극적으로 정상화됐고, 정씨는 임신 35주째 건강한 쌍둥이를 출산했다.

원 교수가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언젠가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 친구가 실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듣고서다. 충격이 컸다. 막연히 산부인과 의사가 되면 그런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원 교수는 “지금 생각해보면 심리 상담이나 사회복지의 영역이었는데, 어찌 됐든 그때부터 산부인과 의사가 된다는 목표 하나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중학교 때부터 그렇게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고 싶어하더니 정말 그렇게 됐다’며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원 교수는 의대에 입학했고, 산부인과에 레지던트로 지원하게 됐다. 당시 산부인과에 여자가 지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담당 교수는 “산부인과 의사는 24시간 대기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위험한 수술도 많다. 버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원 교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피맺힌 왼쪽 손가락을 보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기에 의대 시절부터 밤마다 ‘타이(절개 부위를 실로 묶는 것)’ 연습을 하느라 실이 닿는 왼쪽 손가락은 늘 피가 맺히고 헤져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산부인과 전공의 시절에도 노력은 계속됐다. 매일 새벽까지 흰 종이를 대고 복강경 수술 기구를 넣어보며 보이지 않는 아기를 수술하는 연습을 했다.

그를 기특하게 여긴 지도 교수는 원 교수에게 태아 초음파 분야를 개척해보라며 영상의학과 ‘족집게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태아 치료로 유명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병원으로 연수를 가 태아 치료에 대한 수술방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돌아왔다. 이후 현재까지 2000여 건의 태아 치료를 시행했다. 태아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 방광이나 폐에 물이 차 사망 직전인 아이의 물을 빼내는 수술, 심장 판막이 좁아져 있는 태아의 판막을 넓히는 수술 등 직접 볼 수 없는 어린 환자의 아픈 곳을 치료하는데 30여 년을 바쳤다. 그래서 현재 원 교수팀의 치료 성적은 국내는 물론, 그가 연수를 받았던 미국보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

의대생 때 손가락에 피맺히도록 수술 연습

이렇게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의사이지만 아직도 그는 꿈에서도 수술 연습을 한다. 원 교수는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불임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데, 아파서 오는 경우가 참 많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온 부모 얼굴을 생각하면 작은 수술에도 기도를 하고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원 교수의 힘의 원천은 뭘까. 원 교수는 “정말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우연인지 퇴원한 산모가 어엿이 성장한 아이 사진과 감사 편지를 보내온다”고 말했다. 그걸 보면 모든 피로가 풀린고 힘이 난다는 것이다. 원 교수는 “태아 치료는 앞으로도 개척할 부분이 많다. 후배들과 함께 더 좋은 치료법을 개발해 새 생명을 더 많이 구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라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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