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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일본행 항공권 취소 난기류에 휩싸여

중앙일보

입력

전체 국제선의 일본 노선 비율 37.5%… 실적 악화 전망에 중국 노선 확대 나서

1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보이콧 재판’ 운동. / 사진:연합뉴스

1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보이콧 재판’ 운동. / 사진:연합뉴스

회사원 강유진(28세·가명)씨는 오는 8월 여름휴가를 앞두고 예매한 제주항공의 일본 도쿄행 항공권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일본 여행 후기에 비난 댓글이 달리는 것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강씨는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글이 많다”며 “저비용항공사(LCC)로 예매해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취소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흔들리는 저비용항공사

일본 노선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LCC 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나서자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일본 여행 취소 움직임이 빠르게 퍼지고 있어서다. ‘(일본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보이콧 재팬’ 운동이 일고 있는가 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게시물도 잇따른다. 항공 업계에선 “반일감정 확산으로 일본 노선이 많은 LCC의 수익성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보이콧 재팬’ 운동 확산

국내 LCC의 일본 의존은 상당한 수준이다. 국내 LCC 6개사가 운영하는 232개 국제선 중 일본으로 향하는 노선은 87개로 전체의 37.5%에 이른다. 시장점유율 1위 제주항공은 국제선 노선 68개 중 22개(32.4%)를 일본 노선으로 운영하고 있다. 진에어는 28개 국제선 노선 중 약 32.1%(9개)를 일본 노선으로 채웠다. 티웨이항공은 국제선 노선 53개 중 23개(43.4%), 이스타항공은 34개 중 12개(35.3%), 에어부산은 32개 중 10개(31.3%), 에어서울은 17개 국제선 노선 중 11개(64.7%)가 일본 노선이다. 일본 노선이 LCC 업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지난 1분기 기준 티웨이항공의 일본 노선 매출 비중은 30.9%로 대한항공(11%)과 아시아나항공(14%)의 두 배 수준을 웃돌았다. 같은 기간 제주항공(25.6%)과 진에어(24.0%)도 전체 매출의 4분의 1가량을 일본 노선에서 올렸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LCC는 일본 주요 도시는 물론 지방 중소도시로 노선을 확장하며 성장했다”면서 “일본 노선이 부진하면 실적이 꼬꾸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반일감정 고조에 따른 일본행 항공권 취소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7월 1주 차 83.5%였던 인천~오사카 노선 평균 탑승률은 7월 2주 차 들어 75.5%로 일주일 만에 8%포인트 감소했다. 그동안 인천~오사카 노선은 평균 탑승률이 80%를 넘는 이른바 ‘알짜 노선’으로 분류돼왔지만, 일본 여행 취소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탑승률 80%가 깨졌다. 특히 일본으로 가려던 단체 여행객의 항공편 예약 취소가 나타나는가 하면, 일부 여행객들은 SNS에 일본행 항공권 취소 인증 사진을 올리고 있다. 아직 개인 승객들에서 예약 취소 사태가 일어나고 있진 않지만, 관공서나 공기업 등을 중심으로 7, 8월 단체 항공편을 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 1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일본 전 지역 여행 경보지역 지정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7월 19일 기준 8400여 명이 해당 청원에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예약 취소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일본 여행 수요 자체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이전 일본행 항공권을 예약한 고객이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는 적을 수 있지만, 반일감정 확산에 따라 일본 여행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사례가 늘게 될 것”이라면서 “경기 악화 등으로 국내 항공 업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불안감 확대는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항공사보다 먼저 항공권을 포함한 일본 여행 상품을 예약·판매하는 여행사에서 일본 여행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다. 아웃바운드(한국인의 해외 여행) 1위 여행사인 하나투어에 따르면 일평균 1100명 수준이던 일본 여행상품 예약자 수는 최근 들어 600~7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일본 여행 문의도 뚝 끊겼다. 모두투어는 휴가철을 앞둔 지난해 이맘때 일평균 1000명 선이던 일본행 여행객 숫자가 500명 선으로 내려앉으며 반 토막이 났다고 전했다. 주요 홈쇼핑들도 일본 여행상품 편성을 취소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LCC 업계는 ‘항공업 성수기’인 3분기 실적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노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LCC 업계의 수익성이 본격적인 하강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은 일본 지진, 태풍 등의 여파로 성수기 운항 차질이 빚어지는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5%~54.3% 감소했다. 올해 일본 여행 불매 움직임이 장기화하면 성수기 실적 악화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홍준기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2017년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당시 방중 한국인 수가 전년 대비 19%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행 여행 심리가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터지기 전인 올해 2분기부터 일본발 부진을 겪어온 것도 국내 LCC 업계에 부담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4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264만74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017년 대비 5.6% 늘어난 총 753만8997명이 일본을 방문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국내 LCC 업계 주가는 이미 추락하고 있다. 일본행 여행객 감소가 불러올 LCC 업계 실적 악화가 투자심리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제주항공 주가는 지난 6월 28일 3만3150원(종가 기준)에서 11거래일 만에 2만8000원으로 15.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진에어와 티웨이항공은 주가는 각각 17.5%, 8.9% 떨어졌다.

투자심리 악화로 LCC 주가 급락

LCC 업계는 서둘러 중국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중국 노선을 일본으로 돌렸던 상황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앞서 국내 LCC들은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영향으로 중국 노선에 악재가 생기자 일본으로 눈을 돌린 바 있다.

이스타항공·에어부산 등은 중국 노선의 신규 취항과 증편에 가장 먼저 나섰다. 지난 5월 인천~상하이를 비롯해 6개 노선 주 27회 운수권을 배분 받은 이스타항공은 지난 7월 12일부터 인천~상하이 노선을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대형항공사(FSC)와 비교해 평균 20~40% 저렴한 가격으로 운임을 책정해 고객의 수요 증대를 끌어내겠다”며 “하반기 중국 노선을 통한 실적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에어부산은 7~10월 기존 취항했던 부산~옌지, 부산~장자제 노선을 각각 주 6회, 주 5회로 늘릴 방침이다. 반면 대구∼오사카 노선은 감편하고 대구∼도쿄 노선은 아예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에어부산은 관계자는 “인천 출발 중국 노선도 올해 안에 취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제주항공·티웨이항공·에어서울도 올해 안에 중국 노선 신규 취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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