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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의 '그래미의 난' 덕에···콧대높던 그래미가 방탄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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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아미 연구하는 아미 출신 이지행 박사

이지행씨는 ’아시안, 보이밴드, 비영어권 아티스트 등 거의 모든 마이너리티적 성격을 갖춘 방탄이 팬들의 열광적인 풀뿌리 지지로 메인스트림에 올라선 사건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공을 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종택 기자

이지행씨는 ’아시안, 보이밴드, 비영어권 아티스트 등 거의 모든 마이너리티적 성격을 갖춘 방탄이 팬들의 열광적인 풀뿌리 지지로 메인스트림에 올라선 사건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공을 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종택 기자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 아니 ‘제2의 비틀즈’가 되었다. 이들의 끝은 어디일까.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기적’을 이뤘다는 것, 그 기적 뒤에는 글로벌 팬클럽 ‘아미(A.R.M.Y·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미는 방탄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존재다. “빌보드에 서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해줬다. 방탄도 시상식마다 “아미 덕분이다. 아미 사랑해”를 외친다.

[양성희의 직격인터뷰] #방탄 성공의 주역인 팬클럽 아미 #중장년, 다양한 인종, 소수자 포함 #목표 정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여 #음악의 메시지를 팬덤의 정신으로

그저 비정상적 열정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소녀팬들이 떠오르는가. 책 『BTS와 아미 컬처』를 펴낸 문화연구자 이지행(45)씨는 “방탄은 10대 소녀 중심의 아이돌 팬덤을 인구통계학적으로 다양하게 진화시켰다”고 말한다. 2017년 미국 50개 주 아미연합(BTSX50States)이 지역 라디오 DJ들을 공략해, 보수적인 라디오에서 방탄 노래가 흘러나오게 한 일화도 들려줬다. 오직 ‘내가 좋아하고, 나를 감동시킨 방탄이 미국에서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의 결과였다. 팬들이 애호가·소비자를 넘어 서포터·프로모터가 됐다.

그 자신이 아미인 ‘팬-연구자’ 이씨는 “방탄이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데는 아미 팬덤이라는 유례없는 현상이 있었다”며 “방탄 현상의 핵심이 곧 아미”라고 강조했다 “서태지도 안 좋아했다”는 그는 2017년 ‘아메리칸뮤직어워드(AMA)’ 무대에 선 방탄을 처음 보고 뒤늦게 ‘입덕’했다. 국내외 아미 중에는 자신처럼 “아이돌에 관심 없던 30~40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지행씨의 책 『BTS와 아미 컬처』. 이씨는 미국 칼아츠 예술학 석사를 거쳐 중앙대에서 영화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에 출강하고 있다.

이지행씨의 책 『BTS와 아미 컬처』. 이씨는 미국 칼아츠 예술학 석사를 거쳐 중앙대에서 영화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에 출강하고 있다.

아미의 규모는?
“공식 팬클럽 인원이 150만명 정도인데 외국 아미들은 국내 시스템이 불편하니까 잘 안 온다. 트위터 팔로워 수는 2000만이 넘는데, 빌보드 같은 시상식 투표 때 팬들이 여러 계정을 만들기 때문에 다소 허수다. 대략 1000만명, 그중 한국과 미국에 각각 200~300만명으로 추산된다. 해외 팬덤이 국내보다 크다. 트위터나 외국 팬들이 모인 ‘레딧(reddit)’ ‘아미노 앱(Amino App)’ 같은 커뮤니티를 연구했다. 방탄은 2013년 데뷔 이전부터 방탄로그(log)나 유튜브 등 여러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들려줬다. 해외 팬덤이 처음 확인된 건 2014년 미국에서 열린 K-con이었다. 가장 신인급인데 가장 환호가 컸다. 글로벌 아미는 2018년 서구 메인스트림 시장에서의 방탄의 성공을 위해 ‘2018 Race For Gold’라는 목표를 정하고 나라별 팬덤이 해야 할 일을 전달하기도 했다. 연초 세운 7개의 미션을 모두 수행해 2018년 미국 차트에 유의미한 변화(빌보드 앨범차트 3연속 1위)가 생겼고, 2019년에는 폐쇄적인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차트까지 움직였다.”
한국형 팬문화의 수출로도 일컬어진다.
“보통 K팝 팬들이 ‘겸덕(여러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인데 반해 아미들은 방탄만 좋아한다. 방탄을 K팝 일반과 구분하는 것이다. 물론 집단적인 응원 구호, 광고판 계약해서 서포트하는 것, 시상식을 위한 투표, 강한 로열티 등은 K팝 팬덤과 같다. 음원 순위를 높이기 위한 반복적 스트리밍은 종종 문제로 지적되는데, 사실 이제는 그걸 문제 삼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빌보드 차트 등이 팬덤 위주로 굴러가고 있다. 아리아나 그란데, 비욘세, 원 디렉션, 숀 멘데스 등 서구 아티스트 팬덤도 굉장히 조직적으로 스트리밍한다.”
아미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10대 소녀 중심 아이돌 팬덤을 넘어 인구 구성이 무척 다양하다. 남성도 있고, 30~40대 중장년 여성, 아시안·라틴·흑인 등 다양한 인종, 성소수자, 지식인팬 등 다양하다. 백인 팬 중에는 방탄을 좋아하면서 비로소 세상의 부조리를 몸으로 체험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시아 보이밴드인 방탄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끼면서 말이다. 방탄으로 인해 다양성, 마이너리티에 대한 존중을 진심으로 고민하게 됐다고도 한다.” 
마이너리티의 상징이 됐다는 얘기다.
“방탄이 대변하는 게 마이너리티성, 혹은 언더독(underdog)성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인구의 99%를 스스로 언더독이라고 여기게 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방탄은 언더독 중에서도 언더독으로 출발했다. K팝 중에서도 굉장히 낮은 곳에서 출발했고. 그런 언더독의 한계를 극복해간 과정에 대한 응원이 크다. 2018년 초 그래미상을 주관하는 레코딩아카데미 트위터에서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앨범’을 물었는데, 누군가 BTS를 썼다가 ‘진짜 음악을 말하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그때 전 세계 아미들이 달려들어서 방탄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수만개의 댓글을 달았다. ‘우울증이었는데 자살 생각을 하지 않게 도와줬다’ ‘목을 매기 직전 BTS를 보면서 울었다’ 이런 글이 많았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방탄의 성장사, ‘지금 자체로도 괜찮다’는 음악의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위로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이 더는 인종차별 말고 방탄을 인정하는 게 다양성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글도 많았다. 이 ‘그래미의 난’ 이후 콧대 높은 그래미가 방탄을 받아들이게 된다.”
팬들이 프로모터 역할을 했다.
“팬들이 신곡 나오면 24시간 동안 잠을 안 자고 유튜브를 본다. 2018년 ‘아이돌’ 때 24시간 동안 4500만 뷰가 나오니까 CNN이 보도했기 때문이다. 아미가 기록을 만들어주면 예전에는 상대도 안 해주던 어디를 뚫을 수 있는지 팬들이 확인한 거다. 2017년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 투표에서 방탄이 저스틴 비버랑 붙어서 무려 3억표를 얻은 것도 이런 동력 때문이다.”
아미 팬덤의 구조는.
“모든 팬과 소통하는 회사(빅히트) 스태프인 팬 매니저는 있지만, 팬 대표인 회장은 없다. 물론 투표라든지 팬 이벤트 등 행사를 할 때 이를 이끄는 조직은 있는데, ‘독려계’라는 자발적 트위터 계정들이다. 이것도 전달자 역할만 하지 대표성은 인정받지 못한다. 익명의 온라인 팬덤에서 민주주의를 펼치려는 결벽성이 크다고 할까. 서구 아티스트 팬덤은 앨범 발매일, 판매량 등을 알려주는 정보형 계정이 대부분인데 아미 팬덤은 ‘독려계’ 외에도 없는 게 없다. 북클럽계정, 전 세계 심리상담사· 심리학도 아미가 모인 심리상담계정, 아미들 간의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을 설명해주는 컬처계정. 상시로 자선을 하는 계정까지. ‘번역계’라고 불리는 팬번역가 계정도 있다. 교포·유학생 20여명이 무보수로 운영하는데 가사·인터뷰, 방탄이 생산하는 모든 콘텐트를 거의 실시간 번역한다. 문화적 맥락을 각주로 달기도 한다.”
K팝 팬덤과의 차이는 뭘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게 자기 삶에 활력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팬덤의 특징이라면 K팝 팬덤은 열광적인 지지와 서포트를 하는 행위적 특성을 지닌다. 아미 팬덤은 더 나아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돼서 그로부터 받은 선한 영향력을 타인과 세상에 적극적으로 쓰려 한다는 데 있다. 이처럼 팬덤의 인구구성이 다양해지는 게 방탄의 음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방탄과 아미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팬덤이 커지면서 생기는 문제는 없나.  
“종종 한국 아미와 해외 아미 사이의 문화적 충돌이 있다. 활동 축이 해외가 되면서 오는 한국 팬덤의 소외감도 있고. 하지만 방탄이 서구 미디어에게 인종차별을 받거나 논란에 휘말릴 때 출동하는 것도 아미다. K팝을 ‘게이팝’이라 부르기도 하듯 남자가 화장하니 게이라는 공격도 많이 받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방탄의 남성성이 오히려 서구 지식인들을 팬덤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화장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 불안함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깨는 대안적 남성성이라고 보더라.”
아미 팬덤의 진짜 힘은 뭘까.
“사실 방탄 팬덤 내부에서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단 자정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내가 힘들고,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방탄을 만났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팬이 되어야 한다는 팬덤 멘탈리티 때문이다. 방탄이 아미라는 새로운 수용자 집단을 만들었고, 그런 아미가 방탄을 성숙하게 만들고 있다. 방탄 현상의 본질이 아미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