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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온 듯 편안한 베토벤 묘지서 우리 장묘문화를 생각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3)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 교외에 있는 중앙묘지의 음악가 묘역. 왼쪽부터 베토벤 묘지, 모차르트 기념비, 슈베르트 묘지. [사진 송의호]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 교외에 있는 중앙묘지의 음악가 묘역. 왼쪽부터 베토벤 묘지, 모차르트 기념비, 슈베르트 묘지. [사진 송의호]

베토벤과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4인 음악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세계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다. 거기다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또는 비엔나)에서 모두 활동했다. 이 도시는 현지에서 ‘Wien’으로 표기된다. 오스트리아가 독일어를 쓰기 때문에 현지 발음은 빈이다. 비엔나(Vienna)는 빈의 영어식 명칭이다.

이들 4인은 죽어서 빈의 교외 한 곳에 함께 묻혀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난 7월 12일 빈에 들렀다. 그곳에 도착하니 음악가의 흔적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관광 안내 책자에 조그맣게 소개된 음악가의 묘지를 찾아갔다. 죽음에서 거장의 내면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71번 트램에 올랐다. 위대한 예술가의 묘지는 어떤 모습일까. 또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떻게 추모할까.

정류장에 내렸다. 빈의 조용한 외곽 ‘중앙묘지’다. 높다란 중앙묘지 출입문이 인상적이다. 옆에는 추모 꽃과 양초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입구 관리인에게 베토벤의 묘지를 물었다. 그는 “가운데로 쭉 들어가 왼쪽”이라고 했다.

묘지가 없는 모차르트

베토벤의 묘지 옆에 선 필자(왼쪽). 묘비에는 금색 나비와 하프 조형물이 있다. 오른쪽은 슈베르트의 묘지. 여신 뮤즈가 슈베르트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묘비의 조각이 돋보인다. [사진 송의호]

베토벤의 묘지 옆에 선 필자(왼쪽). 묘비에는 금색 나비와 하프 조형물이 있다. 오른쪽은 슈베르트의 묘지. 여신 뮤즈가 슈베르트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묘비의 조각이 돋보인다. [사진 송의호]

200m쯤 들어가자 사람이 많이 보였다. 32A 구역. ‘MUSIKER(음악가)’라는 팻말이 있다. 반원 형태로 음악가 4인이 빙 둘러 자리 잡았다. 왼쪽부터 베토벤, 슈베르트, 오솔길을 건너 요한 슈트라우스와 브람스. 반원의 가운데는 또 모차르트.

중앙묘지는 본래 빈 시내에 흩어져 있던 5개의 공동묘지를 1894년 이곳으로 한데 모아 새로 조성한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베토벤과 슈베르트도 이곳에 새로 안장했다고 한다. 가운데에 있는 모차르트는 네 음악가와 달리 시신이 묻힌 묘지가 아닌 기념비다. 모차르트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묘지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소박한 편이다. 대체로 앞쪽에 관이 묻혀 있고 뒤에 생애를 표현한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지는 땅과 높이가 같은 평장이다. 묘지마다 작은 화단도 꾸며져 있다. 규모는 한 사람당 한두 평 남짓이다. 그래도 봉분에 이름만 새긴 프랑스 파리 교외에 묻힌 고흐 묘지와는 달리 장식이 화려하다. 묘비마다 조각이 눈길을 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지(왼쪽). 묘비에는 ‘왈츠의 왕’을 형상화한 왈츠 추는 아기들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은 브람스의 묘지. 묘비에는 고뇌하는 브람스의 얼굴이 조각돼 있다. [사진 송의호]

요한 슈트라우스의 묘지(왼쪽). 묘비에는 ‘왈츠의 왕’을 형상화한 왈츠 추는 아기들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은 브람스의 묘지. 묘비에는 고뇌하는 브람스의 얼굴이 조각돼 있다. [사진 송의호]

베토벤의 묘비에는 금색 나비와 하프가 장식돼 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묘비는 음악의 여신 뮤즈가 슈베르트에게 월계관을 씌우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베토벤을 많이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죽으면 베토벤 묘지 근처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슈베르트의 유언은 중앙묘지가 새로 조성되면서 이루어졌다.

오솔길을 건너 세워진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묘비에는 왈츠를 추는 아기들 아래 여신이 금빛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이 있다. 그 오른쪽엔 머리에 오른손을 얹고 고뇌하는 브람스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 모차르트 기념비에는 청동의 뮤즈 아래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음악가들 묘역에 서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공원처럼 꾸며진 빈의 묘지

사진은 국내의 한 추모공원의 모습. 우리나라의 추모 시설은 대부분 산에 위치해있다. 빈의 중앙묘지는 이와 다르게 누구나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있었고, 숲과도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중앙포토]

사진은 국내의 한 추모공원의 모습. 우리나라의 추모 시설은 대부분 산에 위치해있다. 빈의 중앙묘지는 이와 다르게 누구나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에 있었고, 숲과도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중앙포토]

방문객이 두고 간 추모 화분은 베토벤 묘지 앞에 가장 많았다. 한 남성은 빨간 꽃 화분을 베토벤 묘지에 놓고 기도했다. 클래식 애호가인 듯한 여성은 요한 슈트라우스 묘지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쓴 채 그의 음악을 듣는 듯했다. 방문객은 이어졌다. 학생들도 단체로 지나갔다. 중앙묘지는 입장료도 없어 누구든 편하게 음악가를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 주변은 음산한 묘지라기보다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져 사람들이 쉽게 들렀다.

음악가 묘역 주변은 최근에 조성된 일반인 묘지도 많았다. 모두 장식이 화려하다. 묘지 사이사이로 숲이 잘 가꾸어져 있다. 장엄한 헤어짐의 미학이다. 좌청룡 우백호 등 풍수를 따라 높은 산 위에 많이 들어선 우리 장묘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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