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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징용+영공침범…한국, 삼면이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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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의 영공과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왼쪽)와 중국 H-6 폭격기 기종. [연합뉴스]

한국의 영공과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왼쪽)와 중국 H-6 폭격기 기종.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지난 23일 자국 군용기가 한국의 독도 영공을 침범한 사실에 대해 공식 부인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24일 주러시아 한국대사관 무관부를 통해 전달한 공식 전문에서 “23일 우리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한국 조종사들이 우리 군용기의 비행 항로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비전문적인 비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항로 방해" 적반하장 러시아 

러시아가 영공 침범을 부인하면서 한국 외교엔 예상치 못했던 러시아까지 복병으로 떠올랐다. 이젠 주변국 모두를 일대일로 상대하며 해결해야 하는 ‘격랑의 한반도’로 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과 중국 중에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던 때가 차라리 단순했다. 이제 일본과 러시아까지 주요 변수로 등장하면서 한국 외교는 지금껏 가장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게 됐다”고 우려했다.

러시아까지 한국 외교 복병으로 #"이제껏 못 겪어본 다층적 위기"

일본, 통상보복에 독도 문제 꺼내

일본은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통상 보복에 이어 독도 영유권을 다시 꺼내 들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뿐 아니라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자디즈)도 휘젓고 다녔는데 일본은 한국군이 독도 영공에서 경고사격한 것을 문제 삼았다. 한국 정부가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라며 차단하고 나섰지만 아베 신조 정부가 독도 문제에서 자제할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은 당초 수출규제 조치를 처음 시행하며 자국 안보를 그 이유로 내비치며 ‘안보 측면에서 한국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후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에서 이웃 나라 한국을 상대로 공세를 펼치며 '안보 동반국'이 아님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27일 오후 오사카 웨스틴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27일 오후 오사카 웨스틴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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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사드, 지역균형 깨뜨려" 백서

러시아와 연합훈련을 벌여 동해 상공에서 함께 움직였던 중국은 24일 한·중 간 잠복해 있던 갈등 요인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를 다시 꺼냈다. 이날 발표한 ‘신시대 중국국방’ 백서에서 “미국이 한국에 사드 체계를 배치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엄중하게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사드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 입장에선 미국이 계속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 하고, 한국도 동맹국 미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는 없는 만큼 기존에 있던 사드 문제를 다시 꺼내 최대한 3국 협력을 지연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일본 자위대 대응도 지지" 애매한 미국

주변국과의 갈등을 줄이거나 차단할 방파제 역할은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한국군의 경고 사격 등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대응을 지지하면서도 애매모호한 표현을 내놨다. 펜타곤은 23일(현지시간) “중·러 영공 침범에 대한 한·일 두 나라의 대응을 강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독도에 대한 언급은 없이 일본이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며 자위대 전투기를 발진시킨 것도 함께 지지한 모양새가 됐다. 미국이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쪽 편을 들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은 그간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중립을 주장해 왔다.

"식량 안 받아" 한국 패싱 북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 상대에만 몰두하면서 ‘한국 패싱’을 계속 보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정부의 쌀 5만t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24일 전했다. 북한은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과의 직거래를 선언한 뒤 실질적인 남북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그간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 구도는 한·일 갈등, 한·중 충돌, 남북 대치 등의 양자 관계에서 대부분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엔 한국이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다층적 도전에 직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한·일 관계가 악화하고 한·미·일 공조가 흔들리니 중국과 러시아가 약한 고리를 헤집고 들어온다”며 “자칫하면 주변국 모두로부터의 난제가 겹치는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동북아는 강대국 간 지정학적 이해의 충돌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지역이란 점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며 “결국 실용적 외교를 통해 한ㆍ일관계를 회복, 최대한 위험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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