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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마트 직원 850명, 英 4명…일자리 날려버린 '초저가 광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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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인 가족이 주말마다 손잡고 찾아오는 곳. 안정적 중산층의 상징.
이랬던 대형마트는 과거 유산이 돼가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2분기 실적 전망은 모두 빨간불이다. ‘창업 이래 최악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관측이다.
오프라인 대형 마트의 몰락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변화하는 가구 구조, 늘어나는 고령층, 무엇보다 달라진 상거래 풍토가 유통 산업의 한 축이었던 대형 마트의 위기를 부추긴다. 이에 따른 사회 변화도 시작됐다. 일자리 창출의 효자 노릇을 하던 유통 부문 일자리가 대폭 줄었다. 중간 수준 소득을 올리는 일자리 중 진입이 쉽고 비교적 안정적이던 직군이 대거 사라진다는 의미다.

[세계 유통 아마겟돈 1]

‘초저가' 에 뛰어든 영국 유통 거인   

지난해 9월 문을 연 영국 채터리스 잭스 1호점. 테스코는 '초저가'와 '영국산'을 키워드로 이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지난해 9월 문을 연 영국 채터리스 잭스 1호점. 테스코는 '초저가'와 '영국산'을 키워드로 이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지난 5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케임브리지 채터리스 ‘잭스’ 매장(약 1000㎡). 평일이라 다소 한가한 이 매장은 유통 거인 테스코가 지난해 9월 ‘테스코 창업 100주년’에 맞춰 내놓은 ‘비밀병기’다. 제살깎아먹기 위험, 즉 본체인 테스코의 매출 감소의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 디스카운트 체인 알디와 리들이 점유해온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현재 전국 9개 지점에서 운영 중이다. 개점 이후 총 매출은 2400만 파운드(351억원). 콘셉트는 단순하다. ‘영국산’과 ‘초저가’. 매장 곳곳엔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 10개 중 8개는 영국산”이란 문구가 삽입돼 있다. 기존 테스코 매장의 노하우를 살리되 가격을 조금이라도 내리기 위한 사소한 아이디어까지 총동원했다.

가장 많이 줄인 것은 인건비다. 채터리스 잭스 매니저인 웨인씨는 “현재 매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까지 단 4명만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매출은 알려줄 수 없지만, 꽤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고 잭스 매장은 더욱 늘어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테스코 창업주인 잭 코헨 경의 이름에서 따온 이 점포는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여 초저가 만들이기에 투입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잭스 매장엔 직원 유니폼도 없앴다. 대신 가벼운 앞치마를 착용한다. 매대 물건 진열 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배송 차량에서 내려 박스째 올려놓을 수 있는 디자인을 도입했다. 테스코보다 냉동고도 10% 저렴한 것을 사용하고 바닥엔 타일 대신 콘크리트를 깔았다. 탄력 근무제를 실시해 1주일에 한 번 배송일에만 12명이 근무하고 평일엔 4명 조로 돌아간다. 임금 체계도 테스코와 다르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이 약 1파운드 차이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잭스엔 직원이 적은 대신 무인계산대가 많다. 채터리스 매장엔 총 24개 설치돼 있었다. 자체 브랜드(PB) 제품의 포장에도 디자인적 욕심은 모두 버렸다. 테스코 매장은 평균 2만6000개의 상품을 팔지만 잭스는 2600개(PB 상품 1800개)를 판매한다. PB로 나온 각종 차 제품(30g)은 40펜스에서 시작해 1파운드 넘는 것은 없다. 초콜릿 한 봉지에 1파운드, 건포도 초콜릿은 한 봉지에 69펜스 정도다. 동네 주민인 리나 커슨스키씨는 “1주일에 2~3번은 이곳에서 냉동식품 등 식재료 위주로 쇼핑한다”고 했다. 그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알디 등과 비교해 보고 번갈아가며 이용한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의 고전,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유통 현장에서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기과학기술대 조춘한 교수는 “유통업계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고 소개했다. 조 교수는 “한번 들어가면 5~10년 일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결국 기계로 다 바뀔 전망”이라고 말했다.

테스코의 2019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장이 늘어도 직원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2015년 테스코 매장당 정직원 수는 60명이었던 것에 반해 올해는 54명으로 줄었다. 잭스 같은 형태의 매장이 늘수록 일자리 점포 인력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테스코는 올해 중 기존 테스코 10~15곳을 잭스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무인 판매 매장과 언택트(비접촉) 매장, 사람 없는 편의점 등이 최저 임금 이슈와 맞물려 실험 중이다. 국내 A 대형마트의 주력 매장(약 1만 6529㎡)에선 평균 850명(판촉사원 포함)이 근무한다. 과거엔 대형마트는 일종의 일자리 텃밭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마트 실적 악화에 따라 규모와 인원을 줄인 서브 브랜드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 무인계산대도 도입이 한창이다. A 대형마트는 80여개 점포에 400여개의 무인 계산대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형마트 관계자는 "무인 계산대를 점차 늘려가고 있지만, 노동조합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기존 계산원은 고객 지원 센터 등으로 이동 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장은 늘어도 직원은 늘지 않는다

매장은 늘어도 직원은 늘지 않는다

테스코의 저가 브랜드 매장 '잭스'. 초저가 경쟁에 빼앗긴 소비자를 되찾아오기 위해 제살깎기를 감수하고 시작한 사업이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테스코의 저가 브랜드 매장 '잭스'. 초저가 경쟁에 빼앗긴 소비자를 되찾아오기 위해 제살깎기를 감수하고 시작한 사업이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영국 채터리스 잭스 매장. 2파운드 이상 식재료가 드물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영국 채터리스 잭스 매장. 2파운드 이상 식재료가 드물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영굴 채터리스 잭스 매장. 냉동 채소의 가격은 모두 1파운드 미만이다. 잭스는 영국산과 초저가를 강조한 전략을 취한다. 이 브랜드는 인건비 등 비용을 줄여 가격에 투자한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영굴 채터리스 잭스 매장. 냉동 채소의 가격은 모두 1파운드 미만이다. 잭스는 영국산과 초저가를 강조한 전략을 취한다. 이 브랜드는 인건비 등 비용을 줄여 가격에 투자한다. 채터리스=전영선 기자

슈퍼마켓의 나라 미국의 초저가 전략  

지난해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에 타깃 매장에 줄을 선 소비자들. 오프라인 유통 업체는 다양한 저가 전략으로 소비자 유치에 힘쓰지만, 고전 중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에 타깃 매장에 줄을 선 소비자들. 오프라인 유통 업체는 다양한 저가 전략으로 소비자 유치에 힘쓰지만, 고전 중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미국 대형 소매점 타깃의 한 매장. 노란 딱지가 붙은 제품이 매장 곳곳에 진열돼 있었다. 타깃이 30% 이상 세일하는 제품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2만 평방피트(약 1858㎡) 규모인 이곳은 10만 평방피트(약 9290㎡) 규모의 기존 타깃 매장 5분의 1 사이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지만 매장은 볼거리로 넘쳐났다. 계산대엔 1~5달러 사이의 초저가 제품을 모아놓은  ‘불스아이 플레이그라운드’란 코너가 마련돼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초저가 업태의 신장률은 8%를 기록했다. 이는 온라인 다음으로 높은 성장세다. 유통업계가 기존과 전혀 다른 원가 구조와 사업 모델을 만들고, 상품 개발부터 제조ㆍ물류ㆍ유통ㆍ판매 등 모든 과정에서 구조를 개선한다.

미국 맨해튼 타깃 매장 내 무인계산대. 안내 직원이나 계산원을 없애고 소비자가 바코드 스캔으로 스스로 계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뉴욕=곽재민 기자

미국 맨해튼 타깃 매장 내 무인계산대. 안내 직원이나 계산원을 없애고 소비자가 바코드 스캔으로 스스로 계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뉴욕=곽재민 기자

타깃 역시 매장 환경이나 디자인보다는 가격 할인에 초점을 맞춘다. 안내 직원, 계산원을 없애 인건비와 같은 고정 지출을 대폭 줄였다. 미국 대부분의 유통 업체는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신기술이 유통에 접목되면서 점점 유통 부문 일자리는 감소할 전망이다. 올해 다보스 포럼이 출간한 ‘일자리의 미래를 위한 산업 주도 행동’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통기업을 포함한 소비자 부문은 미국 전체 일자리의 약 10%를 차지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유통 관련 기업 중 절반 이상(53%)이 유통 부문 자동화에 따라 인력을 줄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덜 숙련된 인력의 감소와 유통부문 전문화된 인력 확대가 동시에 진행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저소비 몸에 밴 일본, 거세진 초저가 바람 

일본도 초저가(게키야스ㆍ激安)’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지난 5월 방문한 일본 시즈오카시 후지공항 근처 워크맨 매장의 직원은 단 1명이었다. 작업복 기업으로 시작한 워크맨은 지난해 캐주얼·아웃도어로 영역을 넓힌 '워크맨 플러스'를 선보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초저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방수·방풍·방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 공정을 단축하는 노하우를 결합해 경쟁 브랜드보다 3분의 1 가격에 제품을 내놓는다. 김인호 비지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품질을 따지는 일본 시장에서도 초저가가 대세"라며 "워크맨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초저가 아웃도어 브랜드 데카트론도 인기”라고 말했다.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공항 인근 작업복 매장 '워크맨'. 초저가를 내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즈오카=김영주 기자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공항 인근 작업복 매장 '워크맨'. 초저가를 내세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즈오카=김영주 기자

세계 유통사가 일제히 초저가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온라인 채널보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부동산이 필요 없는 시대,  상품 수급 경쟁에서 기존 유통사의 우월적 지위는 갈수록 사라진다. 단독 판매, 비용 절감을 통한 가격 인하 전쟁에서 현장 직원 배치는 점차  ‘사치’가 돼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괜찮은 중급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던 유통산업 일자리 소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공항 근처의 '워크맨' 매장. 기대치를 넘는 싼 가격의 아웃도어 제품과 신발 등을 취급한다. 시즈오카=김영주 기자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공항 근처의 '워크맨' 매장. 기대치를 넘는 싼 가격의 아웃도어 제품과 신발 등을 취급한다. 시즈오카=김영주 기자

대형마트와 백화점을 운영하는 B 유통사 관계자는 “출점 경쟁을 벌이던 2000년대 초에는 신입사원을 연간 200명씩 뽑았지만, 최근에는 매년 20명 미만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신 온라인 플랫폼 정비를 위한 숙련된 정보기술(IT) 인력 고용에 신규 고용이 집중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채터리스·시즈오카·뉴욕=전영선·김영주·곽재민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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