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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아사히 맥주 안 마시지만 일본인 친구와는 잘 지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인스타그램에서 '일본불매운동'을 검색하니 9000건이 넘는 게시물이 나왔다. [인스타그램 캡쳐]

23일 인스타그램에서 '일본불매운동'을 검색하니 9000건이 넘는 게시물이 나왔다. [인스타그램 캡쳐]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

한·일 관계 보는 젊은이들 시각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불매운동” #SNS 인증샷 올리며 행동 나서 #일부 “지나친 반일 땐 관계 악순환” #일본 유학생 “혐한 분위기 못느껴”

20~30대 층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최근 유행하는 게시물 문구다. #노노재팬 #일본불매운동 #일본여행취소 #boycottjapan 등의 해시태그(#)들로 검색하면 수백건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일본 호의적이던 20~30대, 온라인서 '적극적 반대'로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에 반대하는 일부 국내 젊은 층의 ‘반일 행동’이 강도 높고 구체적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일본불매릴레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손글씨로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한국에 사과할 때까지 일본 제품의 소비를 줄일 것임을 약속합니다’라고 쓴 메모를 사진으로 찍어 올린 게시물들이 나온다. 일본 제품 리스트와 여행 취소 인증샷도 활발하게 올라오고 있다.

그간 20~30대가 일본과 일본 문화에 대해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호의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 호텔에서 1년 동안 일했던 조모(26)씨는 23일 “일본 관련 보이콧 운동이 이렇게까지 피부로 와 닿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며 “정치적 이슈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불매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일본을 매우 좋아했던 친구마저 불매 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에 동참한다는 김지연(21)씨는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조치와 최근 외교적인 자리에서 보인 행동들은 우리나라와 한국인, 한일 역사를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간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백번 양보해 이해한다고 해도 최근 경제적 보복 조치와 같은 것들은 절대 국민들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극적으로 동참하는 20~30대들도 많다. 회사원 김모(32)씨는 “회식 후 2차로 가던 이자카야를 안 가는 건 아닌데, 편의점에서 4캔 만원 행사로 자주 사던 일본 맥주도 안 사고 음식점에서도 일본 맥주를 안 시키게 됐다”며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가 있으니까 유니클로는 못 가겠더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산 중인 일본불매운동 릴레이. 손글씨로 직접 해당 문구를 적은 뒤 사진을 찍어 올리며 다른 사람을 태그해 참여를 유도하는 형식이다. [인스타그램 캡쳐]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산 중인 일본불매운동 릴레이. 손글씨로 직접 해당 문구를 적은 뒤 사진을 찍어 올리며 다른 사람을 태그해 참여를 유도하는 형식이다. [인스타그램 캡쳐]

"일본 정부와 일본인은 별개" 목소리도  

하지만 일본 불매운동과 일본인 개개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중앙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하시모토 나오(24)는 “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되기 전에도 일본인을 비하하는 발언은 있었고, 처음 한국에 올 때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왔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길거리에서 무거운 것 들고 있으면 어른들이 도와주시고 친근감도 표시해주고 오히려 잘해주더라”라고 말했다.

유예지(24) 명지대 일어일문학과 학생회장은 “학내에 일본인 유학생들이 있는데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고 교환학생 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정치적 이슈는 정치적인 문제고, 친구 사이에서는 등 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물론 일부 젊은 층에서는 일본을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 여행 취소 등이 지나친 행동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회사원 정모(34)씨는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이런 운동이 과열돼 일본 정부뿐만이 아니라 일본인, 일본 문화 자체를 반대하는 반일 감정을 키우는 쪽으로 가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일본도 한국에 대해 마찬가지의 감정을 가질 것이고 더 안 좋은 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일본 젊은이, 아베에 '암묵적 동조' 분석도   

그렇다면 지금 일본의 젊은 층은 어떨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반한 운동’이 불고 있을까. 일부 일본 언론과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한국인들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한국의 불매운동은 성공한 적이 없다’ 등의 발언들이 나오기도 한다.
하시모토 나오는 “일본의 국민성은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언행을 할 때 두려워하는 경향이 크다”며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서 오사카(大阪) 상점가에서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서 오사카(大阪) 상점가에서 유권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젊은 층의 투표율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서도 김경주 도카이도대학(교양학부) 교수는 YTN 라디오를 통해 “어떤 변화를 원해야만 젊은이들도 투표장에 걸음을 하는데 ‘지지는 하지만 더 좋아지길 기대하지도 않고, 그러나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아베 정권이 계속해도 된다’는 일본 젊은이들 특유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20~30대, 여전히 한국 문화·노래 좋아해" 

하지만 일본에서 유학을 하거나 일본회사에서 일하는 20~30대 대상으로 현지 분위기를 물은 결과 대다수가 “일본 사람들은 현재 상황에 큰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일본 대학 유학생들은 캠퍼스 안팎에서 반한 발언이나 퍼포먼스 등을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올해 3월 일본 소우카대학에 입학한 이정기(19)씨는 “일본 젊은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하고, 여전히 한국 노래와 여행을 즐긴다”며 “한국어를 배우는 동아리도 규모가 크고, 한국어 스피치 대회도 크게 열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히려 승리 버닝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걸 가지고 한국인을 비꼬는 말은 들어봤는데, 그것도 딱 한 번 뿐이었다”고 말했다.

BTS 일본 스타디움 투어 중 첫날 공연이 펼쳐진 지난 6일 일본 오사카'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앞에서 일본팬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BTS 일본 스타디움 투어 중 첫날 공연이 펼쳐진 지난 6일 일본 오사카'얀마 스타디움 나가이' 앞에서 일본팬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4월 일본 기업에 입사할 예정인 정민석(26)씨는 “최근까지도 면접을 보기 위해 도쿄에 갔었는데 대다수의 일본인 시민들은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며 “솔직히 인터넷이나 SNS에서 ‘일본 여행을 갔다가 ‘혐한’ 표현을 들었다’ ‘식당에 갔는데 눈초리 안 좋았다’는 식의 글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관심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2014년부터 일본 오사카대학에서 유학 중인 이동현(26)씨는 “이번 사태를 포함해 유학 온 이후 한·일간 정치적 갈등이 여러번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생활에 직·간접적인 피해나 위험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며 “이번에도 일본 친구들과 두 번 정도 짧게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인데, 그마저도 빨리 화해해야 한다는 넋두리 정도였다”고 전했다.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하는 차모(31)씨는 “전사적으로 분위기를 주시하고는 있지만, 언론으로 접하는 갈등 외에 직접 느껴지는 변화는 없다”며 “주변에서 특별히 반응을 보인 일본인은 없었지만, 단지 관계가 나아졌으며 하는 바람들은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일 유학생들 "일본 생활 괜찮다, 걱정 지나쳐" 

오히려 일본 현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한국에 있는 지인과 가족의 ‘걱정’이 너무 크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인 이정기씨는 “가족들이 ‘거기 괜찮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많이 하고 친구들도 ‘여행 가도 되겠니’라고 물어본다”며 “전혀 그렇지 않은데 가족이나 지인이 체감하기에는 일본에 있는 게 굉장히 불안한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이모(19)씨는 “한국인 학생들이 훨씬 더 한일관계와 최근 분위기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 돌아갈 때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가야 할지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후연·이가영·박사라·이태윤·권유진·이병준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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