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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approach” 한·일·중·러 전투기 수십대 독도 하늘 엉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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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무단 진입했다. 이 중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하기도 했다. 공군은 F-15K 등 전투기를 출격시켜 360여 발의 경고사격을 했다. 사진은 독도 상공에서 비행 중인 공군 F-15K 편대. [중앙포토]

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에 무단 진입했다. 이 중 러시아 A-50 1대는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하기도 했다. 공군은 F-15K 등 전투기를 출격시켜 360여 발의 경고사격을 했다. 사진은 독도 상공에서 비행 중인 공군 F-15K 편대. [중앙포토]

23일 오전 동해 상공에선 한국과 중국·러시아·일본의 군용기 수십여 대가 뒤엉켰다. 중·러의 전략폭격기가 동해 상공으로 날아들어오면서다. 우리 군의 KF-16 전투기 1대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의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1㎞ 전방에 기관포 경고사격을 하면서 긴장감은 최고로 치솟았다.

긴박했던 오전 6시44분~10시 #30여 차례 경고 방송했지만 무시 #러 경보기 1㎞ 전방에 기관포 쏴 #중 전투함 2척 포항 동쪽 등 항해 #“중·러, 한·일 핵공격 연습 가능성”

시작은 이날 오전 6시44분쯤. 중국의 H-6 전략폭격기 2대가 이어도 북서쪽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안으로 무단 진입했다. KADIZ는 영공은 아니지만 진입 전 한국에 알리는 게 관례다. 중국 전략폭격기 편대는 KADIZ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을 넘나들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오전 8시33분쯤 동해 북방한계선(NLL) 너머로 진출한 중국 편대는 러시아 전략폭격기 Tu-95 2대를 만났다. 러시아 편대는 막판 지그재그 항로를 그렸다. 중국과 약속한 시각·지점에서 합류하려고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으로 관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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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중·러 연합 전략폭격기 편대는 러시아가 앞서고 3.7~5.6㎞ 뒤 중국 편대가 따라가는 식으로 KADIZ를 무단 진입했다. 군 관계자는 “중·러가 함께 KADIZ를 무단 진입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러 연합 편대는 9시4분쯤 울릉도 남쪽에서 KADIZ를 이탈, 남쪽으로 내려갔다. 중국 편대는 자국으로 돌아갔고, 러시아 편대는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KADIZ를 다시 무단 진입했다.

이날 한국 공군의 F-15K와 KF-16 전투기 총 18대가 긴급 발진했다. 당시 일본 항공자위대에서도 비슷한 수의 F-15J와 F-2 전투기가 날아왔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러시아의 A-50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는 오전 9시1분쯤 KADIZ로 들어온 뒤 9시9분쯤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중앙방공통제소(MCRC)는 공용 주파수로 A-50에 대해 “접근하지 마라, 접근하면 경고사격하겠다(Do not approach or you will be fired)”고 30여 차례 방송했지만 A-50은 응답 없이 무시했다.

이에 아군 KF-16이 플레어(적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뿌리는 섬광탄)를 10여 발 발사한 뒤 기관포 80여 발을 쐈다. 합참 관계자는 “영공을 침범한 외국 군용기에 대한 첫 경고사격”이라고 말했다.

한·일 출격 전투기 제원

한·일 출격 전투기 제원

3분간 독도 영공에서 머물던 A-50은 9시12분쯤 남쪽으로 빠져나갔다가 기수를 돌려 9시33분쯤 독도 영공을 재차 침범했다. KF-16은 A-50 전방을 향해 플레어 10여 발과 기관포 280여 발로 다시 경고 사격했다. 4분 뒤 독도 영공에서 벗어난 A-50은 9시56분쯤 KADIZ를 나와 러시아로 향했다.

합참 관계자는 “A-50이 비무장이었고, 고도와 속도가 일정해 경고 사격만 했다”며 “적대행위가 확인될 경우에만 격추 사격한다”고 했다.

이날 중·러 ‘합동 도발’은 우리 영공과 KADIZ를 무시한 연합훈련 양상이었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중·러 양국의 전략폭격기가 미리 설정한 한국이나 일본의 목표물을 함께 핵공격하는 절차를 연습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러 편대가 동해 상공을 헤집고 다닐 때 중국의 전투함 2척이 이어도 남쪽과 포항 동쪽에서 항해 중이었다. 훈련 상황을 모니터링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은 중앙방송통제소(MCRC)와 중국 북부전구 방공센터 간 핫라인으로 수차례 KADIZ에서 나가라고 중국 측에 요구했다. 처음에는 “범위 초과(자신들 권한 밖)라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답변하던 중국은 나중엔 “국제법적으로 정상적으로 비행하고 있는 군용기”라고 둘러댔다.

김태호 한림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동해를 벗어나 태평양에 진출하려는 중·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사전에 치밀하게 연합훈련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중·러가 훈련을 핑계로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사례가 잦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공 들어오면 주권 침해, KADIZ는 무단진입 해당

영공(領空)은 국제법상 개별 국가의 영토와 영해의 상공으로 구성되는 국가의 주권이 적용되는 공간이다. 반면에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은 국제법상 주권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영공 외곽의 일정 지역 상공에 설정하는 임의의 공간이다. 따라서 KADIZ에 마음대로 들어오면 ‘무단진입’이지만, 영공에 들어오면 이를 넘어선 침범 행위이자 주권 침해다. 일반적으로 영공 침범 시에는 경고 방송→진로 차단→플레어 발사→경고사격의 단계를 거쳐 강제착륙을 시키거나 응하지 않을 경우 격추하게 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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