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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내 재산 뺏어 당첨자에 혜택”…술렁이는 강남 재건축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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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초읽기 들어간 분양가 상한제 폭탄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카드를 꺼내 들면서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긴장과 혼란에 휩싸였다.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지난해 말 철거를 마친 서울 개포동 4단지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확대 카드를 꺼내 들면서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긴장과 혼란에 휩싸였다.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지난해 말 철거를 마친 서울 개포동 4단지 재건축 공사 현장. [연합뉴스]

펜스 틈 사이로 본 빈 땅에는 아파트 두 동과 유치원 한 동이 남겨져 있었다. 부지 남쪽 양재대로 한편에서는 우수 암거(暗渠·지하 빗물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 강남 개포 주공 4단지 재건축 사업 현장이다. 1982년 입주했던 2840세대가 총 3375세대(일반분양분 250세대)의 ‘개포 그랑자이’로 탈바꿈하는 곳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재건축을 추진했던 개포 4단지는 몇 차례 우여곡절을 거쳐 2017년 6월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작년 말 철거까지 마쳤다. 아파트 두 동은 서울시가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고, 유치원은 보상 문제로 철거가 늦어지고 있는 건물이다. 재건축조합은 사업시행 변경 인가가 나는대로 이르면 다음 달 착공해 10~11월쯤 조합원 및 일반 분양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었다.

이주·철거 끝난 곳까지 확대 방침 # 조합장들 "소급 적용하면 대혼란" # 조합원들 "헌법 소원까지도 불사" # 땜질식 가격 통제가 문제 지적도

현재 이곳은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확대 방침으로 긴장하고 있다. 상한제가 소급 적용되면 이미 세워 놓았던 사업 계획이 엉클어져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 같은 도시정비 사업에서 관리처분이란 조합원들의 권리 배분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분양 계획이 정해지고, 조합원이 받을 주택 평수와 부담금까지 결정된다. 이런 계획을 관(官)이 승인하는 절차가 관리처분 인가다. 인가가 나면 이주와 철거에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소급 적용되면 일반 분양분의 가격이 낮춰지고, 그만큼 조합원의 추가 부담금이 늘어나게 된다. 조합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추가 부담금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수천만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곳 조합원들은 대다수가 초소형 아파트를 소유한 1주택자로 현금 동원 능력이 별로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100여 곳 ‘초비상’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빼 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가 강남을 비롯한 서울 시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뒤흔들고 있다. 지금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있지만 규정이 느슨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은 사실상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재 규정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시점을 ▶일반 아파트는 입주자 모집 단계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착공 전 관리처분계획 신청 단계로 정하고 있다. 이를 ‘입주자 모집 단계’로 통일시킨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이주·철거를 끝내고 착공과 분양을 앞둔 단지들이 소급 적용을 받게 된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관리처분 인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관리 처분인가를 받고 철거를 기다리는 단지가 100여 곳에 이른다. 이 중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곳은 조합원 총회를 다시 열어 사업계획을 바꿀 여지라도 있다. 그러나 개포 4단지처럼 이미 인가를 받고 이주가 끝난 곳은 조합원이 추가 부담금을 떠안으면서 사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개포4단지처럼 일반 분양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은 그나마 낫다. 일반 분양분이 많은 사업장은 초비상이다. 대표적인 곳이 ‘단군 이래 최대 정비 사업’이라는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다. 이곳은 임대 주택(1046가구) 포함해 모두 1만2032가구가 들어서는 국내 최대 단지다. 이 중 40%가량인 4787가구가 일반 분양이다. 현재 둔촌 주공은 분양가 책정을 놓고 분양 보증을 해주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HUG는 주변 지역 최근 분양가나 시세에 견줘 새 아파트의 분양가를 산정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둔촌 주공의 분양가는 3.3㎡당 26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인근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시세에 맞춰 3700만원 정도로 생각했던 조합 생각과는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마저 받을 경우 조합원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소는 “조합원들의 추가 부담금이 억대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연히 이해 당사자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 17일 세종시 국토교통부에는 개포 1·4단지, 둔촌 주공, 서초 방배5구역 등 서울 시내 재건축·재개발 사업 8곳의 조합장이 방문했다.

조합원들 불만 폭주

이들은 “관리처분 인가가 이미 떨어져 이주·철거 중인 사업 단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에서 제외해달라”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집값 안정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도 “이미 분양가 상한제를 소급 적용할 경우 막대한 추가 부담금 발생 등으로 사업에 대혼란이 일어난다”고 호소했다. 한 부동산 개발업체 사장은 “가뜩이나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을 집값 불안의 진원지로 여기며 행정 절차를 미루고 있는 상황인데, 분양가 상한제 확대 검토로 사업 추진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청와대 게시판과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정부가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올라오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의 한 청원자는 “희망 고문에 불과한 청약을 과감히 포기하고 최대한 대출을 받아 재개발입주권을 샀다”며 “내 땅이고 내 돈인데, 말도 안 되는 정책으로 서민을 다 죽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청원자는 “청약 당첨자들이 조합원보다 경제력이 낮지 않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왜 우리 재산을 빼앗아 혜택을 줘야 하는지 억울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소급 적용은 재산권 침해”라며 “정부가 정책을 강행할 경우 위헌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공급 축소 현실화될까

분양가 상한제가 등장할 때마다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논쟁이 붙는다. 반대론자들은 시장의 욕망을 억누르는 가격 통제 정책이 결국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을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시행 직후 강남 재건축 시장이 위축되면서 집값이 잠깐 가라앉았으나 몇 년 후 집값 폭등이 재연된 사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찮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수도권 민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듬해인 2008년 줄었지만 곧바로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 때 집값이 폭등한 것은 공급 축소 때문이 아니라 ‘빚내서 집 사라’는 인위적 부동산 부양책 탓이라는 주장이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위원은 “분양가 상한제가 공급 축소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은 여러 변수가 있어 예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역대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지나치게 쉽게 생각해 온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조심스럽게 써야 할 가격 통제라는 극약 처방을 시장 상황에 따라 땜질식으로 처방함으로써 시장의 내성만 키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로또 분양’ ‘공급 축소’라는 부작용만 두드러졌다. 정권 초반 집값 불안에 쩔쩔맸던 문재인 정부는 시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분양가 상한제라는 처방을 꺼낼 태세다. 그 처방에 어떤 보완책이 따를지, 또 그 결과는 어떨지 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상한제 적용되면 분양가는 얼마나 떨어질까

분양가 상한액은 아파트 토지비(감정평가)에 정부가 결정한 기본형 건축비, 건설업자의 적정 이윤 등을 더해 정해진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할 때 국토부는 분양가가 20~25%가량 빠질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위원은 “아직 세부 시행 기준이 나오지 않아 예측하긴 힘드나 현재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어 그 정도까지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제대로 된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할 경우 분양가를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결정한 토지비(공시지가)와 기본형 건축비(올해 기준 평당 640만원)를 더한 강남권의 분양가는 평당 4700만원에서 2160만원으로 55%, 비강남권 아파트 평균 분양가도 평당 2250만원에서 1130만원으로 50%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경실련 분석이다. 그런 경실련의 주장은 토지비를 감정평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로 계산했고, 건축·택지 가산비를 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