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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용기 초유의 영공 침범…360여발 공중서 경고사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군용기가 23일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영공을 침범해 한국 공군이 360여발을 경고 사격했다. 중국 등 외국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영공을 침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상황 발생 전후로 중국 군용기는 KADIZ로 들어왔다. 중·러 군용기가 동시에 KADIZ에 무단진입한 것 역시 전례가 없다.

중,러 함께 KADIZ 들락날락

합참에 따르면 중국 2대, 러시아 3대 등 총 5대의 중·러 군용기 편대가 KADIZ를 무단으로 진입했고, 이중 러시아 군용기 1대는 한국의 독도 영공까지 침범했다. A-50 조기경보통제기로 파악되는 이 러시아 군용기는 이날 오전 9시9분부터 12분까지 약 3분간 독도 영공을 1차로 침범했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독도로부터 거리는 약 12.9㎞에 불과했다.

한국 공군의 F-15K

한국 공군의 F-15K

군 당국은 F-15K, KF-16 등 공군기 18대를 투입해 해당 러시아 군용기가 영공에 침입하기 전부터 차단 기동을 실시한 뒤 영공 침입 후에는 플레어(미사일 회피용 섬광탄) 10여발, 기총 80여발을 쏘는 등 전술조치를 했다.

하지만 이 러시아 군용기는 16분 후인 9시28분 KADIZ에 다시 들어와 5분 후인 9시33분 2차로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러시아 A-50은 9시37분 한국 영공을 이탈해 북상했고, 9시56분 KADIZ를 최종적으로 빠져나갔다. 한국 군은 두 번째 침범 때 플레어 10발과 기총 280여발을 각각 경고사격했다. 공군 F-15K가 두 차례에 걸쳐 모두 360여발의 경고사격을 실시한 거리는 러시아 A-50의 전방 1㎞ 앞이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번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입은 중국 군과 합동훈련 중 발생한 것으로 군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과 맞물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이 KADIZ에 무단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날 KADIZ를 최초 진입한 중국 군용기 2대는 H-6 폭격기 2대다. 이들 중국 군용기는 오전 6시44분 이어도 북서쪽 방향으로 와 7시14분 이어도 동쪽 방향으로 이탈했고, 이후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안쪽으로 비행하다가 7시49분 울릉도 남쪽 방향 약 76마일(140㎞) 지점에서 KADIZ에 다시 진입했다. 이후 북쪽으로 기수를 올린 뒤 울릉도와 독도 사이를 지나 8시20분께 KADIZ를 이탈했다. 이에 맞춰 포항 동쪽 방향 80여㎞ 지점과 이어도 남쪽에 중국 함정이 출몰했다.

중국 폭격기의 KADIZ 진입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해당 중국 군용기 2대는 러시아 TU-95 폭격기 2대와 합류해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고, 모두 4대로 늘어난 중·러 연합 편대는 8시40분께 울릉도 북쪽 76마일 지점에서 다시 KADIZ에 진입했다. 이들이 KADIZ를 이탈한 건 9시4분 울릉도 남쪽에서였다. 독도 영공을 침범한 A-50은 이들 4대와 따로 움직였다.

4대의 중·러 군용기는 오후에 거꾸로 북으로 향하면서 다시 KADIZ에 진입했다. 이들 군용기는 오후 1시11분부터 38분까지 KADIZ에 머물다가 이탈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중·러 연합 군용기 편대 5대는 오전 6시44분부터 오후 1시38분까지 6시간 54분 동안 한국 영공과 KADIZ,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했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로 초치된 두농위 주한 중국무관(왼쪽)과 마르첸코(왼쪽) 주한 러시아무관. [뉴스1]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로 초치된 두농위 주한 중국무관(왼쪽)과 마르첸코(왼쪽) 주한 러시아무관. [뉴스1]

합참 관계자는 "정전 협정 이후 귀순 목적을 제외하면 타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사례는 처음이고, 중·러 군용기가 동시에 KADIZ에 진입한 것도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 군이 타국 군용기 전방 1㎞ 근방으로 경고사격을 한 사례 역시 없었다.

군 당국은 이번 침범이 엄중하다는 인식 하에 전술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러시아 군용기와 교신을 시도했지만 소득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출격한 한국 공군 전투기는 KADIZ에 무단 진입한 중국 H-6에 대해 20여회,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A-50에 대해 10여회 등 모두 30여회 무선 경고통신을 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들 중·러 군용기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JADIZ도 넘나들어 일본 군용기도 출격했다.

러시아 군용기는 지난달 20일 동해 쪽 KADIZ에 진입한 직후 일본 오키나와의 미나미다이토섬과 도쿄 하치조섬 인근 영공을 침범하고 홋카이도를 거쳐 귀환하기도 했다.

합참은 이날 오후 중국 측으로는 두농이(杜農一)·류자오(刘昭) 국방무관을, 러시아 측으로는 니콜라이 마르첸코 공군무관·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무관을 각각 초치해 엄중하게 항의했다.

☝영공과 KADIZ=영공(領空)은 국제법상 개별 국가의 영토와 영해의 상공으로 구성되는 국가의 주권이 적용되는 공간이다. 반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 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은 국제법상 주권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자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영공 외곽의 일정 지역 상공에 설정하는 임의의 공간이다. 따라서 KADIZ에 마음대로 들어오면 '무단진입'이지만, 영공에 들어오면 이를 넘어선 침범 행위이자 주권 침해다. 일반적으로 영공 침범 시에는 경고 방송→진로 차단→플레어 발사→경고사격의 단계를 거쳐 강제착륙을 시킨다. 불응 때 격추하는 경우도 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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