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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버거와 곡물수프… 마드리드에서 만난 '진짜 미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비건라이프(6)

빌바오는 공업도시에서 예술도시로 탈바꿈하며 미식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식당은 바르셀로나의 채식 식당에서 만난 '미식(사진)'과 차이가 있다. 바르셀로나 식당에서는 고기로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색과 향을 담았다. 사진은 완두 콩으로 만든 아름다운 색의 퓌레 위에 익힌 채소, 퀴노아 밥을 얹은 모습. [사진 심채윤]

빌바오는 공업도시에서 예술도시로 탈바꿈하며 미식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식당은 바르셀로나의 채식 식당에서 만난 '미식(사진)'과 차이가 있다. 바르셀로나 식당에서는 고기로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색과 향을 담았다. 사진은 완두 콩으로 만든 아름다운 색의 퓌레 위에 익힌 채소, 퀴노아 밥을 얹은 모습. [사진 심채윤]

최근 몇 년간 미식의 도시로 급부상한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의 철강도시였다. 19세기부터 번성했던 철강산업과 조선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쇠퇴하던 공업도시 빌바오는 ‘미술관’ 덕분에 미식 도시로 탈바꿈했다. 빌바오는 도시 활성화를 위해 미술관 분관 유치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뉴욕을 거점으로 미술시장의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구겐하임 미술재단이 이 도시를 선택하면서부터 도시의 운명은 바뀌게 되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미술관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미술관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으로 탄생시켰고, 쇠락해가던 공업도시로 관광객을 집중시켰다. 미술관이 도시에 미치는 이러한 영향은 문화와 도시재생 분야에서 ‘빌바오 효과’라는 표현까지 만들어 냈다.

구겐하임 미술관 덕분에 빌바오는 현재 한 해 100만 명이 다녀가는 문화 관광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파리의 루브르,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연회원이 많은 미술관이 되었고, 미술관의 수요시장은 곧 도시 식문화의 상업 지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붉은색의 아치 조형물인 살베 다리가 인상적이다. 미술관 야외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조형물 ‘마망’, 제프 쿤스의 ‘튤립’, 아니쉬 카푸어의 둥근 구로 이루어진 작품 ‘큰 나무와 눈’이 보인다. 명성 높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두 보여주겠다는 미술관의 야심이 느껴진다.

미술관 정문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거대한 조형물 ‘퍼피’는 제프 쿤스의 작품이다. 2만 개의 화분으로 12m의 꽃 강아지를 만들었다. 개관 기념으로 한시적 설치 계획이었던 작품은 인기가 좋아서 상설 작품으로 남았다. 아래 사진처럼 작품의 유지는 크레인 차를 통해 기술자들이 수시로 화분을 교체하기 때문에 시즌마다, 해마다 ‘퍼피’의 모습이 달라진다.

사진 왼쪽은 붉은색의 아치 조형물인 살베 다리와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 야외에는 '마망' '튤립' '큰 나무와 눈'을 전시 중이다. 사진 오른쪽은 2만 개의 화분으로 만든 꽃 강아지, '퍼피'. [사진 심채윤]

사진 왼쪽은 붉은색의 아치 조형물인 살베 다리와 구겐하임 미술관. 미술관 야외에는 '마망' '튤립' '큰 나무와 눈'을 전시 중이다. 사진 오른쪽은 2만 개의 화분으로 만든 꽃 강아지, '퍼피'. [사진 심채윤]

미술관을 찾아 일부러 빌바오를 찾는 관광객을 겨냥해 고급 식당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작품들 못지않게 음식도 예술적으로 재탄생했다는 미식가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빌바오는 유럽 미슐랭 지도를 다시 쓰게 만든, 떠오르는 미식 도시가 되었다. 세계의 주요 도시마다 이름난 미술관의 인근에 고급 식당이 자리하니, 빌바오의 지금 모습은 구겐하임 설립이 확정되면서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생 미식 도시 빌바오에서 ‘진짜 미식’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저녁 식사가 7시가 넘어야 가능하고 밤늦게까지 식사를 한다. 미술관으로 유명한 주요 예술도시와 달리 채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드물었다. 미술 시장은 해마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득과 교육수준에 관계없이 미술시장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고,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이 시대정신과 사회문제를 작품에 반영하고, 새로운 세대가 미술관의 주요 관람객이 되면서 이들의 생활 스타일과 가치관, 세계관은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부가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미술관 인근의 고급 식당이다.

식사의 선택이 개인의 기호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20대, 30대 젊은이는 대체 육류 시장의 성장에 맞추어 육류 생산의 환경적, 윤리적 심각성을 의식하고 있다. 뉴욕과 파리, 런던 등 전통적인 미술시장뿐 아니라 베를린과 아부다비 등 떠오르는 미술 도시에서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와 음식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수요에 맞추어 미술관 인근 전통적인 고급 식당이 채식 메뉴를 도입하고 채식 전문 식당이 새로 생기는 추세다.

‘미식’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울 미(美)를 사용하여 좋은 음식, 아름다운 음식 혹은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을 뜻한다. 아름다운 음식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좋은 음식이라는 뜻은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전통적인 고급 식당의 메뉴는 전채요리부터 후식까지 대부분의 요리가 동물성 재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접시 위에 아름답게 차려진 음식을 마주할 때, 우리는 이 아름다움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면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이곳은 낮과 밤에 다른 빛과 모습을 드러낸다. 쇠퇴해가는 지방 도시의 운명을 뒤바꾸고 신생 미식 도시로 키울 만큼 미술관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곳의 근처의 고급 식당은 '진짜 미식'을 선보이지 않는듯해 아쉽다. [사진 심채윤]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면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이곳은 낮과 밤에 다른 빛과 모습을 드러낸다. 쇠퇴해가는 지방 도시의 운명을 뒤바꾸고 신생 미식 도시로 키울 만큼 미술관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하지만 이곳의 근처의 고급 식당은 '진짜 미식'을 선보이지 않는듯해 아쉽다. [사진 심채윤]

현대의 모든 요리는 그 재료의 근원이 차단되어 있다. 아름답게 장식된 디저트 앞에서 우리는 강제 임신, 출산, 새끼 분리, 착유를 반복하다가 3년 이내 잔혹하게 도축되는 어미 소의 젖, 즉 우유가 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는다고 알려지면서 최근 국내에서도 판매되는 송아지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는 어떨까.

태어나서 어미와 바로 분리되고, 고기를 연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도축 전까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강제 빈혈로 4~6주간 살다가 도축되는 송아지의 잔혹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도축장에서 처리되는 소, 돼지, 닭, 양 등 동물의 다수는 생산성이 우선인 빠른 도축 라인에서 기절한 후 도축되지 못하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사지가 잘리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이 죽는 과정은 실로 잔혹할 뿐 아니라 살아 있는 짧은 생애를 통틀어 고통의 연속이다.

공장식 축산이라 불리는 밀집 사육 문제는 기후변화와 토양, 하천에 악영향을 준다. 그리고 인류의 건강 문제뿐 아니라 생명경시가 확산해 사람들을 폭력과 타인 공감으로부터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고급 식당은 그 모든 것과 차단된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미식’이다. 홀로코스트와 다를 바 없는 동물의 홀로코스트가 ‘미식’이라는 이름을 얻어 사람들에게 욕망과 경험의 대상이 되고 과시의 기준이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아름다움’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다. “플라톤이 아름다움이란 진실의 광채라고 말했어. 무슨 대단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진실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서로 가깝단 말이지.” 우리가 먹는 음식의 근원은 진실할까? 우리는 고기가 식탁에 오르기 이전의 과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마주했던 ‘미식’의 경험을 뒤돌아보았을 때, 우리의 식사는 미술관의 작품처럼 아름다웠는지 생각하게 한다. ‘미식’과 ‘진짜 미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우아하게 미술관을 관람하고 미술관 인근에 자리한 고급 식당에서 아름다운 조명 빛을 받으며 유명 셰프가 만든 접시 위 음식을 만났을 때, 우리의 ‘미식’은 그 뒤에 감추어진 밀집 사육의 잔혹사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드리드의 유기농 채식 전문 식당은 시즌마다 식당 외관을 자주 바꾼다(왼쪽 상단). 방문 당시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동물에 대한 기사가 걸려있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수프와 채식 버거, 공정무역과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료를 판매한다. [사진 심채윤]

마드리드의 유기농 채식 전문 식당은 시즌마다 식당 외관을 자주 바꾼다(왼쪽 상단). 방문 당시 기후 변화로 고통받는 동물에 대한 기사가 걸려있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수프와 채식 버거, 공정무역과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료를 판매한다. [사진 심채윤]

식사가 어려웠던 빌바오에서 우리는 과일로 저녁을 해결했다. 미식 도시라고 이름난 도시에서 새롭게 재정의한 미식을 경험한 셈이다. 아름다운 색과 향, 자연이 주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과일 한 접시를 놓고 ‘미식’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고통을 느끼고 죽음을 원하지 않으며, 감정과 사회성을 가진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면 ‘미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면 생태계에 최소한의 해를 끼치는 식사가 필요하다. 그런 식사라면 ‘진짜 미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소비와 음식의 선택 하나하나가 모두 투표라고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의 새로운 세계관처럼 전통적인 미식의 의미는 새롭게 재정의되어 갈 것이다.

빌바오에서와 달리 마드리드에서는 ‘진짜 미식’ 요리를 만날 수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받는 북극곰과 바다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드리드 한 식당의 입구에 걸려있다. 이 식당에서 채소와 곡류로 만든 따뜻하고 아름다운 요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북극곰 기사를 보여주는 것이 무슨 관계일까 싶지만 실제로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영향은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다. 한 끼의 식사에 먹는 것,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가치를 알리고 손님들이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름답고 착한 식당이다.

건강으로 시작했던 채식의 시작이 아름다움을 보는 눈까지 바꿔놓았다. 상업자본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다른 생명과의 공존의 깨달음을 얻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질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눈으로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우리와 타인을 사랑하고 보여주기 위한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들에게 겉으로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때, 삶은 그때부터 진짜 ‘내 것’으로 특별해지기 시작한다.

작가의 레시피
여름 채소와 템페 볼

콩을 발효해 만드는 템페(그릇 가운데 위치)는 최근 20~30대 비건에게 인기 있는 식재료다. 생으로 즐길 수도 있고 굽거나 튀김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러 채소와 현미밥에 템페 구이를 더해서 평범한 식사를 좀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사진 심채윤]

콩을 발효해 만드는 템페(그릇 가운데 위치)는 최근 20~30대 비건에게 인기 있는 식재료다. 생으로 즐길 수도 있고 굽거나 튀김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여러 채소와 현미밥에 템페 구이를 더해서 평범한 식사를 좀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사진 심채윤]

재료

현미밥, 제철 샐러드 채소(당근, 래디시, 토마토, 오이 등 생채소), 템페, 소금, 후추, 레몬즙, 간장, 고추냉이, 바질, 올리브오일, 생마늘, 소금, 후추, 페스토 소스, 아몬드, 잣 등 견과

1. 현미밥과 제철 샐러드 채소를 준비한다.
2. 당근, 래디시 등은 템페와 함께 소금, 후추 간을 더해 굽는다. 불을 쓰지 않고 토마토, 오이 등 생채소로만 구성해도 좋다.
3. 소스를 채소에 얹어 곁들인다.

추천 소스(1) : 레몬즙을 넣어 연하게 만든 간장 소스. 취향에 따라 고추냉이를 더해도 좋다.
추천 소스(2) : 바질, 올리브오일, 생마늘 약간, 소금, 후추를 곱게 갈아 만든 페스토 소스. 취향에 따라 아몬드나 잣 등의 견과를 함께 갈아주어도 된다.

강하라 작가·심채윤 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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