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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중복투표 가능한 청와대 청원게시판 믿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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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영국 로이터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19 디지털 보고서’에는 대한민국 공론장의 민낯이 잘 드러난다. 한국인의 뉴스 신뢰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선진 38개국 중 꼴찌다. 지난해에도 꼴찌였다. 언론이 정치·경제 권력을 잘 감시한다는 사람은 21%에 불과하다. 역시 최하위권이다.

SNS 계정 바꾸면 중복투표 가능 #묵인이나 조장 없는지 살펴봐야

이런 결과는 우리의 뉴스와 언론, 공론장이 시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또 권력 감시도 부족함을 뜻한다. 그런데 뉴스에 대한 불신은 중개자인 언론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정치 또는 정치인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뉴스 신뢰도는 언론의 감시기능에 영향을 받는다.

뉴스가 정치 자체로 인해 신뢰받지 못하고 또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부족함을 잘 보여주는 최근 사례가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가 국민 소통을 위해 2017년 8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설한 온라인 참여 게시판이다. 처음 1년간 하루 평균 720건의 청원이 접수됐다. 최근 청원 건수가 줄었지만, 정치 공방이 가열되면서 관심은 커진 느낌이다.

올해 들어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역대 최다인 183만 명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원에도 33만 명이 동의했다. 언론은 국민청원에 높은 뉴스가치를 부여해 취잿거리로 삼고 있다. ‘추천 청원 20만 이상’이 답변 기준이기에 청원 내용의 무게나 진정성 못지않게 청원인 숫자 경쟁도 치열하다.

논란은 중복투표와 조작 가능성이다. 필자는 인터넷에서 청와대 중복 청원 운운의 글을 봤을 때 가짜뉴스로 생각했다. 누구든지 1인 1표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복투표는 가능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청와대 국민청원 온라인 주소를 방문한다. 목록에서 안건을 찾아 클릭한 뒤 하단의 동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네이버·카카오·페이스북·트위터 계정을 택해 로그인하라는 안내가 나온다. 그중 하나를 골라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등록하고 동의 버튼을 누르면 된다. ‘청원 동의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알림창이 뜨면서 동의자 숫자가 한 명 늘어난다. 클릭 몇 번으로 청원 동의는 모두 끝난다.

그런데 계정을 네이버에서 카카오로 바꾸면 또 투표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SNS 계정을 바꿔가면 하나의 안건에 네 번까지 가능하다. 그냥은 안 되고 인터넷 방문 기록을 담은 임시파일 ‘쿠키’를 삭제해야 한다. 그러면 동일 인터넷 IP에서도 중복 투표를 할 수 있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재부팅 해도 된다. 하나의 SNS 계정에 ID가 여러 개 있으면 더 투표할 수 있다. 청원 방식이 실명접속이 아니라 SNS 계정 접속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해외에서도 된다. 외국인도 할 수 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시라.

드루킹 일당이 댓글 조작을 위해 써먹은 매크로가 투입되면 대규모 클릭이 가능할 것이다. 청와대가 제시한 답변 기준인 20만 청원은 결국 ‘사람 20만 명’이 아니라 ‘청원 횟수 20만 번’을 뜻한다. 이러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여지가 커진다. 편법이 개입할 공간이 생긴다.

지금 인터넷에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중복투표가 가능하다는 글이 적지 않다. 독려하는 글도 있다. 중복투표를 해봤다는 댓글도 있다. ‘검은 손’은 열린 뒷문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다. 이쯤 되면 청와대 청원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뉴스를 신뢰하기 어렵다. 단순 과실일수도 있다. 그러나 묵인이나 조장은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취지에 맞게 엄정하게 운영해야 한다. 언론은 거짓과 불의가 국민청원의 근간을 흔드는지 잘 살펴야 한다. 언론의 감시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일까. 뉴스 신뢰도는 이렇게 떨어진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