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판결을 부정하는 사람은 친일파”라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주장은 귀를 의심케 한다. 법학 교수 출신이 어찌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의 자유와 다양성을 무시하려 하는가. 그는 2010년 6월 『자유론』 특강에서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의 유명한 주장을 인용하며 사상의 자유를 역설한 적이 있다. “설령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같은 의견이라도 인류에겐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그러면서 “국가 권력이 이야기하든, 관습이 얘기하든, 거기에 의문을 품지 않으면 지적인 노예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그가 대법원 판결과 의견이 다르면 친일파라고 몰아친다. 평생 지녀왔을 학자적 소신을 이리 쉽게 버릴 줄은 몰랐다. 이 논리대로라면 대법원 판결 때 소수의견을 낸 두 대법관은 뭔가. 친일파란 말인가.
친일파 프레임, 사상의 자유 침해 #중재위·ICJ 방안도 검토해볼 만 #갈등 심해져도 GSOMIA 유지해야
이뿐 아니다. 최근 한 국제법 권위자에게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판결 후 국제법 학자들의 의견을 모아봤더니 ‘국제법과 맞지 않는다’고 보는 비율이 4분의 3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식민지 지배에 따른 피해는 대개 일괄타결 조약으로 해결하는데 이럴 경우 개인의 청구권은 국가 청구권 속에 묻혀서 없어진다는 게 국제법의 다수설”이라는 것이다. 조 수석 주장대로라면 국내 국제법 전문가의 다수도 친일파다.
물론 대법원 판결이 옳다고 믿는 한국과 일본 율사들도 적잖다. 이들은 대법원과 일본 최고재판소 모두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없어진 건 아니라고 해석하는 터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이길 거로 본다. 국내 국제법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와는 다른 생각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사실은 양쪽 모두에서 지금처럼 양국이 싸우느니 “중재나 ICJ로 가서 푸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재판에서 이기든 지든, 끝 모를 소모전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다. 곳곳에서 대일 특사를 보내자, 한국 정부가 먼저 배상금을 갚아주고 나중에 일본 측에서 받아내자는 등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을 일본이 받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러니 적절한 때에 중재와 ICJ행 여부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만하다.
이런 과정에서도 명심해야 할 대목이 있다. 양국이 아무리 격렬하게 다투더라도 넘지 말아야 선이 있다는 거다. 2차대전 중 영국과 독일의 주요 도시는 수많은 공습으로 처참하게 파괴됐다. 하지만 이 와중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두 곳이 있다. 양국의 대표적 대학 도시, 옥스퍼드와 하이델베르크다. 적어도 지성의 요람과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만은 남겨두자는 암묵적 합의가 작동해 이들 도시에 대한 폭격은 서로 자제한 덕이었다. 아무리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도 최소한의 금도는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작금의 현 정부에게 해당되는 최소한의 금기라면 군사·안보 분야에서의 한·일 간 협력을 깨는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지난 18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관련, “지금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으면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도 끝낼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 협정은 북핵 등 양국이 함께 맞닥뜨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맺은 것이다. 일본은 우리에겐 하나도 없는 정찰 위성 7대에 이지스함 6척, 1000㎞ 이상 탐지 가능한 장거리 지상 레이다 4기, 조기경보기 17대 등, 한국보다 월등한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추고 있다. 총체적으로는 우리가 얻는 군사적 이익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협정을 깨면 우리의 현실적 국익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모든 국민이 흥분해도 지도층은 얼음처럼 냉정해야 한다. 그래야 할 지도층의 일부 인사들이 맹목적 선동에다 자해적 행위까지 거론하는 건 자제해아 마땅하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