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를 취소한 8개 학교에 대한 청문 절차가 22일 시작됐다. 경희고가 가장 먼저 청문을 마쳤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청문에서 경희고 관계자들은 “교육청이 자사고 평가 지표와 항목을 지난해 12월 느닷없이 바꿔서 공지한 것은 잘못”이라고 항의했고, 시교육청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자사고 8곳 교육청 청문 시작 #“폐지 결론 내놓고 부당 평가” 항의 #학생 대표 “입시기관 모는 건 잘못” #“우리가 적폐냐” 청사 앞 시위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경희고에 이어 배재고·세화고의 소명(까닭이나 이유를 밝혀 설명하는 절차)을 듣는 청문을 진행했다. 23일에는 숭문·신일·이대부고, 24일에는 중앙·한대부고 청문이 이어진다. 이들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평가에서 기준점 70점(100점 만점)에 못 미쳐 자사고 지위가 취소됐다.
청문은 서울시교육감이 지정한 외부 변호사가 주재한다. 첫 순서로 열린 경희고 청문에는 이정규 교장을 포함해 학교·법인 관계자 6명, 법률대리인 1명, 학부모 대표 3명, 학생 대표 1명 등 11명이 참석했다. 교육청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주요 질의는 법률대리인이 맡았다.
법률대리인은 청문 자리에서 “교육청이 자사고 재지정 여부를 결정할 때 학교가 지난 5년간 어떻게 운영됐는지 성과를 토대로 평가해야 한다”며 “학교는 5년 전 평가 지표에 맞춰 학교를 운영해 왔는데, 교육청이 지난해 12월 새 지표와 배점을 일방적으로 통보해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폐지’라는 결론을 정해 놓고 부당하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학생 대표로 참석한 김민섭(경희고2)군은 “우리 학교는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정하지 않았다. 교육과정은 학생의 다양한 경험과 진로탐색에 적합하게 짜였다”며 “자사고가 입시기관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만족하는 곳을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폐지해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서울시교육청 측에서는 이종탁 교육혁신과장, 이창우 중·고체제개선 팀장 등 4명의 실무자가 배석했다. 이종탁 과장은 “청문은 학교 측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이기 때문에 학교 측 주장을 귀담아들었을 뿐 이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희고 청문은 정해진 2시간이 채 안 돼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이정규 교장은 “경희고는 그간 열심히 학생을 교육했고,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공부해 왔다”며 “자사고 지위를 반드시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청문이 진행되는 내내 서울시교육청 정문 밖에서는 경희고 학부모 100여 명이 모여 자사고 취소를 규탄하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자사고를 지켜 달라” “학교는 우리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희연 교육감이 평범한 학부모인 우리를 적폐·특권층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학부모 자유발언도 이어갔다. 자녀가 경희고 3학년이라는 한 학부모는 “아이들 입시가 코앞인데, 우리가 왜 이렇게 길거리에 내몰려 구호를 외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강북에서도 학군이 특히 열악한 동대문구에 딱 하나 있는 자사고를 없애면 아이들은 대체 어느 학교에 가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를 일반고에 보내다 경희고로 전학시켰다”면서 자유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일반고에서는 최상위권인 소수의 아이들만 특별관리하고, 우리 아이를 포함한 대다수 학생은 소위 들러리에 불과했다”며 “경희고에 보낸 뒤 아이가 학교에서 성장하는 게 느껴져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또 “자사고에 보낸 것은 인근에 보낼 만한 일반고가 정말 없어서다”며 “교육감이 먼저 일반고를 정상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놨다면 자사고를 없애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좋은 일반고는 만들어주지 않은 채 자사고부터 없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자유발언이 끝날 때마다 학부모들은 “옳소”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뒤이어 “진보의 탈을 쓴 조희연은 물러나라” “교육감 자식은 모두 외고 졸업, 내로남불” 등을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경희고 다음 순서로 청문에 참여한 배재고의 고진영 교장은 청문에 들어가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자체가 위법하고 부당하게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평가 지표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달성할 수 없고, 같은 항목을 이중으로 감점하는 것도 적지 않아 청문을 통해 이 부분을 충분히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8개 자사고에 대한 청문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교육부에 이들 학교의 자사고 취소를 동의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다. 교육부가 동의하면 해당 학교는 내년 3월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오세목 자사고연합회장(전 중동고 교장)은 “교육부의 동의 절차까지 마무리되면 8개 자사고가 공동으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고 행정소송에 돌입할 계획이며, 감사원에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평가 과정에 대한 감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수·전민희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