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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은지를 키우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그 반대였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

제주도에 사는 시인. 결혼 20년이 되던 해 위탁 부모로 나눔의 여정을 시작했다. 갈 곳 없는 아이를 맡아 키우며 사랑을 나누고, 자신도 성장하는 '색다른 동거' 이야기. <편집자>

함께 집에 온 첫날부터 아기는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사진 pxhere]

함께 집에 온 첫날부터 아기는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사진 pxhere]

첫날이었다. 밤이 되자 아기는 악을 쓰면서 울었다. 이유가 없었다. 입을 쫙 벌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찢어져라 울었다. 분유를 줘도, 안아 줘도, 모두 싫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울고 또 울었다.

아기를 안고 일어나 토닥거리고, 어르고, 방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잠시 다시 몸을 뒤로 젖히고 찢어져라 울었다. 입을 쫙 벌리고 두리번거리면서 우는데 순간,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혹시, 친엄마를 찾나?' 애서원에서 아기랑 헤어지며 뻘게진 얼굴로 현관 앞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아기를 안고 나오며 인사를 하니까,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끈으로 만든 팔찌를 아기 손목에 채워주고, 뽀뽀를 하고, 다시 뒷걸음질로 몇 발짝 물러나서는 입술을 씰룩이며 연신 눈가를 닦았던 그녀다.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어린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연합뉴스]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어린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연합뉴스]

"엄마…, 잊지 마…."
스무 살 어린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모성은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어린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간신히 슬픔을 삼키며 아기를 쓰다듬던 손끝까지 젖어있었다.

셋째 날 저녁이었다. 다시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내가 허둥지둥 젖병을 찾아 분유를 타는데 둘째 어진이가 옆에 오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엄마…, 아기 다시 돌려보내면 안돼요?”
방실방실 웃는 아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온 아기는 밤만 되면 울었다. 귀엽고 예쁜 동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아기는 얼굴이 터질 듯이 빵빵했다. 어진이는 여간 실망한 게 아니었다.

“어진아 미안, 애기 우유만 먹이고….”
어렵게 뱉은 그 말조차 들어줄 수가 없었다. 오직 아기를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엉클어진 머리칼이 자꾸 시선을 가리는데도, 묶을 생각을 못했다. 땀은 나고, 손은 바쁘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진이는 그 후로도 몇 주를 혼자 일어나, 혼자 준비하고, 혼자 등교했다. 쓰러져 잠든 엄마를 차마 깨우지 못했다. 알람이 울리면 얼른 일어나, 냉장고를 뒤져 주섬주섬 꺼내먹고, 교복을 툭툭 털어 입고, 혼자 집을 나섰다.

언니가 제일 좋다며 어진이를 졸졸 따라 다니는 은지. 밤에는 베개를 끌어안고 어진이 방으로 간다. [사진 배은희]

언니가 제일 좋다며 어진이를 졸졸 따라 다니는 은지. 밤에는 베개를 끌어안고 어진이 방으로 간다. [사진 배은희]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인사를 하고, 미명의 거리를 나섰던 아이. 이젠 그 아이가 은지를 키우고 있다. 어진이는 오늘도 은지 머리를 묶어주고, 용돈을 아껴 은지 옷을 사 오고, 뽀뽀를 다섯 번 해달라며 오히려 은지에게 애교를 부린다. 저녁엔 같이 샤워를 하고, 치카치카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씰룩이다가 둘이 푸하하 웃는다.

은지는 언니가 제일 좋다며 졸졸 따라 다니고, 밤엔 베개를 끌어안고 언니 방으로 간다. 은지는 누구 새끼야? 물으면, 언니 새끼! 하고 코를 찡긋하며 웃어 보인다.
“은지야, 언니도 은지가 제일 좋아. 우…, 뽀뽀….”

아이들은 가족이 되어 같이 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다정한 삼남매. [사진 배은희]

아이들은 가족이 되어 같이 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다정한 삼남매. [사진 배은희]

성(姓)이 다른 아이들이 가족이 되어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어느새 성숙해진 어진이를 본다. 은지를 받아들이고, 은지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아이다. 막내였다가 뒤늦게 언니가 됐으니 나름의 성장통도 있었을 것이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처음엔 우리가 은지를 키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지가 우릴 키우는 것 같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배우는 게 더 많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우린 위탁가족이다. 혈연보다 더 진한 ‘사랑’이 우릴 가족으로 만들었다.

가정위탁제도란?

아동이 가정 내·외의 여러 요인(부모의 질병, 가출, 실직, 수감, 사망 등)으로 친가정에서 건강하게 양육할 수 없을 때, 일정 기간 아동을 보호·양육하는 제도다. 적합한 가정에서 아동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친가정이 가족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적인 아동복지서비스다.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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