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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임신부까지 공격했다···홍콩 한밤 '백색 테러' 쇼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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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캡처]

[트위터 캡처]

홍콩 시위대를 겨냥한 ‘백색(白色) 테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향후 홍콩 사태에 변곡점을 이룰 전망이다.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가 계속되면서 일각에선 시위대가 과격화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젠 시위대에 대한 테러라는 폭력 사태가 불거지면서 향후 홍콩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몽둥이로 무장한 흰옷 차림의 100여 명 #시위대와 시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행 #의원과 기자 등 45명 다쳐 병원 실려가 #“폭력조직 삼합회 멤버 같았다” 증언도

명보(明報)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홍콩에서 첫 백색 테러가 발생한 건 21일 밤 10시 무렵 위안랑(元朗) 전철역에서다. 바지는 검정, 상의는 흰옷으로 통일한 남성 10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역사 안으로 난입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검은 옷을 입은 것과 구별되게 상의를 흰색으로 맞춰 입은 이들은 위안랑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전철에서 내리는 시위대와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부상당한 이들 중엔 만삭의 임산부와 이를 취재하던 기자 등이 포함돼 있다고 HKFP(Hong Kong Free Press)는 22일 전했다.

흰 옷을 입고 몽둥이를 든 남성들이 21일 밤 홍콩 위안랑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흰 옷을 입고 몽둥이를 든 남성들이 21일 밤 홍콩 위안랑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역에 도착했을 때 잠시 자리를 피했던 이들은 자정을 넘긴 22일 새벽 1시까지도 역과 역 주위에서 시위대와 시민을 가리지 않고 추격하며 공격했다.

시민 양(楊)씨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아들이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각목 등으로 얻어맞아 머리와 다리를 다쳤다고 하소연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민주당의 린줘팅(林卓廷) 입법회 의원도 곤봉과 우산 등으로 얻어맞아 얼굴에서 피를 흘렸다.

또 사건 현장에 있었던 ‘입장신문(立場新聞)’의 여기자는 땅바닥에 쓰러진 채 흰옷을 입은 남성들에 의해 30초 동안 구타를 당해 머리와 손 등에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명보는 전했다.

21일 밤 홍콩 지하철역의 흰 옷을 입은 남성들. 이들은 각목 등을 들고 역 입구를 에워싼 상태다.[로이터=연합뉴스]

21일 밤 홍콩 지하철역의 흰 옷을 입은 남성들. 이들은 각목 등을 들고 역 입구를 에워싼 상태다.[로이터=연합뉴스]

SCMP는 이들의 묻지마 폭행으로 22일 오후 3시 기준 45명의 시민이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백의(白衣) 남성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동안 위안랑역에선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폭력을 휘두른 이들이 마치 중국의 전통적 깡패 조직인 삼합회(三合會)의 멤버들 같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의 배후가 누구냐 하는 점이다.  친중 세력으로 밝혀질 경우 홍콩 내 반중과 친중 세력 간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명보는 현재 인터넷상에 떠도는 영상을 보면 흰옷 차림의 남성들이 위안랑역에 집결해 있을 때 군복차림의 경찰 두 명이 역을 나가는 모습이 잡혀 있는데 이들이 현장 충돌을 전혀 처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친중파 입법회 의원인 허쥔야오(何君堯)가 21일 위안랑역 부근에서 흰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으며 일부 사람은 손뼉을 치며 “지지(支持), 지지” 구호를 외쳤다는 것이다.

허쥔야오는 이에 대해 “그곳에서 밥을 먹고 지나갔을 뿐”이라며 자신은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곳 사람 일부를 아는데 그들은 자신의 동네를 지키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홍콩 경찰은 흰옷을 입은 이들로부터 몽둥이 몇 개를 압수했을 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홍콩 정부는 “어떤 폭력도 용인될 수 없으며 이번 사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또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후 세력 중국이면 전례없는 유혈 충돌 우려

만일 이번 테러의 배후에 중국이나 친중 세력의 존재가 확인된다면 홍콩 시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화할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홍콩 내 유혈 충돌은 물론 반중 시위도 전례 없이 확산될 공산이 크다.

홍콩 시위대 일부는 21일 저녁 시환(西環)에 있는 중국의 홍콩주재연락사무소 건물을 포위하고 중국 국가 휘장에 달걀과 먹물을 던지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 당국이 격분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은 즉각 “공공연하게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고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 원칙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며 분노했다. 홍콩 정부도 “국가 주권에 대한 공개적 도전으로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2일 홍콩 시위대를 “폭도”라 규정하고 “중국의 국가 휘장을 모욕한 범죄 분자는 피고석에 앉게 된다”며 “그들의 미래엔 반드시 감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서울=홍지유 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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