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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귀찮다’의 변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무더위가 이어지다 보니 몸이 처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 움직이기가 싫다는 사람이 많다. 움직이면 땀이 흐르고 숨이 차니 가급적 움직임을 줄이려는 것이다.

이럴 때 쓰이는 ‘귀찮다’는 단어는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귀차니즘’이나 ‘귀차니스트’라는 말이 생겼다. 귀찮은 일을 몹시 싫어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을 ‘귀차니즘’이라 한다. ‘귀차니스트’는 귀찮은 일을 싫어하고 혼자 노는 데 익숙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귀차니스트에게 소구하는 제품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귀찮다’는 언어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단어다. 본래 뜻은 지금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귀찮다’는 원래 ‘귀(貴)하다’와 ‘아니하다’가 합쳐져 ‘귀하지 않다’는 의미로 쓰였다. ‘귀하지 아니하다’가 ‘귀치 않다’로 줄어들고, 이어 ‘귀찮다’로 축약된 것이다. 그러니까 귀하지 않고 평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을 의미할 때 ‘귀찮다’를 사용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귀찮다’를 찾아보면 ‘마음에 들지 아니하고 괴롭거나 성가시다’로 풀이돼 있다. 원래의 ‘귀하지 아니하다’는 의미는 포함돼 있지 않다. 귀하지 않아 평범하다 보니 흔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이르렀고, 결국에는 괴롭고 성가시다는 의미가 더해져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귀(貴)하다’에서 멀어지다 보니 이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귀찮다’를 순우리말처럼 취급하고 있다. 즉 ‘귀(貴)찮다’와 같이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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