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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일한 계약직 앵커 해고한 MBC…법원 "부당 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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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MBC. [연합뉴스]

“A씨, 부탁이 있는데 출근하면 내 자리 화초에 물 줄 수 있을까요?”
“A씨, 시간 되시면 신문 부탁해도 될까요?”

MBC 계약직 앵커 A씨가 MBC 직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의 일부다. 업무와 관계없는 지시를 받은 내용도 A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서울행정법원 13부(재판장 장낙원)는 “보통의 업무지시뿐 아니라 업무 외적인 영역에서도 A씨가 MBC의 일방적인 지시를 받던 관계임을 알 수 있다”며 “A씨는 MBC의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2012년 MBC 파업이 한창이던 때 계약직 앵커로 MBC에 입사한 A씨는 2017년 말까지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했다. 그런데 그해 말 MBC는 A씨에게 “더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해 두 차례 모두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MBC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와 MBC와의 관계에서 ▲세부적인 업무수행 지시가 있었는지 ▲계약이 전속성 및 배타성을 지녔는지 ▲정규직 직원들과 사무공간을 함께 썼는지 ▲휴가 등 근로조건은 어땠는지 등을 따졌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계약 형식보다는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돼서 일했는지 여부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A씨의 앵커 업무가 MBC의 세세한 지휘ㆍ감독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A씨는 MBC가 정한 시간에 사전 연습을 하고, 방송 후에도 세부적인 수정 지시를 받았으며 방송에 앞서 촬영에 적절한 동선 및 동작, 방송용 문구 및 어조까지 지시받았다. 법원은 “아나운서 직군 특성상 업무적으로 세세한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A 씨는 업무 외적인 영역까지 일방적인 지시를 받았다”고 봤다. 화초에 물을 주라거나 신문을 갖다 달라는 일, 퇴직하는 직원에게 줄 감사패를 만들며 도안과 문구를 검토하는 일 등 종속관계가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일상적 업무도 종종 수행했다는 것이다.

또 법원은 A씨가 MBC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안 사실상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못하는 전속적이고 배타적인 계약관계에 있었던 점, 다른 MBC 직원들과 사무공간을 함께 쓴 점, 연간 15일이 보장되는 휴가를 쓸 때 담당 부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A씨는 MBC의 근로자라고 인정했다.

법원은 MBC가 A씨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했으므로, 기간제 근로자 법에 따라 A씨는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A씨 해고는 부당해고임을 확인하며 MBC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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