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태안 앞바다 위치추적기 끈 배, 잡고보니 해삼 20t 싹쓸이 어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0일 오전 2시 10분쯤 태안해양경찰서 상황실로 긴급한 통보가 접수됐다. 충남 태안 앞바다 경계를 맡은 육군 32사단 예하 레이더기지에서 보낸 통보로 '태안 원북면 신도 인근에서 미확인 소형선박이 시속 20노트(약 시속 40㎞)로 운항 중이니 확인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태안해경은 지난 10일 군과 공조를 통해 어선위치발진장치(V-PASS)를 끄고 허가없이 해삼 200㎏를 불법 채취한 일당을 검거했다. [사진 태안해경]

태안해경은 지난 10일 군과 공조를 통해 어선위치발진장치(V-PASS)를 끄고 허가없이 해삼 200㎏를 불법 채취한 일당을 검거했다. [사진 태안해경]

통보를 받은 태안해경은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소속 헬기와 경비함정, 파출소 연안구조정 등을 신도 인근 해상으로 급파했다. 해경 도착 당시 불법 잠수기 어선으로 추정되는 2t 크기의 소형 어선은 검문검색에 불응하고 그대로 남쪽으로 달아났다.

해경, 무허가 잠수기 조업 선장·잠수부 등 4명 입건 #검문·검색 불응하고 80㎞ 거리 추격전 끝에 붙잡혀 #지난해 11월부터 해삼 20t(시가 6억원) 불법채취해

해경은 남쪽으로 이동하는 어선을 추격했다. 이 과정에서 라이트를 비추고 “정지하라”며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어선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어선은 도주하면서 배에 실려 있던 수산물을 바다에 모두 버렸다. 3시간가량 추격전을 벌인 끝에 해경은 어선을 검거하고 배에 타고 있던 선장 등 4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어선이 도주한 거리만 80㎞에 달했다.

조사 결과 선장 이모(52)씨와 잠수부 김모(55)씨 등 4명은 전날인 9일 오후 5시쯤 보령시 오천항을 출발했다. 자동으로 출입항을 확인할 수 있는 어선 위치발신장치(V-PASS)를 끈 상태였다. 자신들이 출항하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오천항을 빠져나온 어선은 북쪽으로 달려 자정쯤 태안군 원북면 신도 인근 해상에 도착했다. 이곳은 해삼이 군락을 이뤄 자생하는 곳으로 무허가 잠수장비를 이용한 해삼 채취가 빈번한 곳이었다. 잠수부들 사이에서는 인적이 뜸해 불법 채취 장소로 잘 알려진 지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군의 레이더 사각지대 감시장비인 열상감시장비(TOD)를 통해 불법 어업 행위가 들통이 났다. 태안해경은 최근 북한의 목선이 동해안을 표류하다 삼척항까지 입항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지자 육군 32사단 예하 1789부대와 군이 운용하는 전자장비를 활용, 해상에 출현하는 미확인 물체 등을 확인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협조를 강화했다.

지난 10일 충남 태안군 신도 인근 해상에서 어선위치발진장치(V-PASS)를 끄고 무허가 잠수기조업으로 해삼을 채취하다 적발된 일당이 어선을 타고 도주하는 모습.[사진 태안해경]

지난 10일 충남 태안군 신도 인근 해상에서 어선위치발진장치(V-PASS)를 끄고 무허가 잠수기조업으로 해삼을 채취하다 적발된 일당이 어선을 타고 도주하는 모습.[사진 태안해경]

해경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충남 태안과 보령 인근 해상에서 수십여 차례 불법으로 조업하면서 해삼 20t가량(시가 6억원)을 채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채취한 해삼은 도소매업자에게 팔아넘겼다고 한다. 불법행위는 물론 무자료 거래를 통해 세금까지 탈루한 것이다. 태안과 보령지역에서는 고질적인 불법어업으로 어민들이 피해를 호소해왔다.

이씨 등은 해경에서 “처벌을 받을까 봐 도주하면서 채취한 해삼 200㎏을 모두 바다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태안해경은 선장 이씨 등 2명을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잠수부 김씨 등 2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무허가 잠수기 어업을 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는다.

태안해경 소병용 수사과장은 “불법 조업은 주민 피해는 물론 해양 생태계 파괴와 해양자원 고갈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며 “가용한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불법 잠수기 어업과 같은 조직적·상습적 조업을 단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충남 태안군 신도 인근 해상에서 어선위치발진장치(V-PASS)를 끄고 무허가 잠수기조업으로 해삼을 채취하다 해경에 적발된 어선.[사진 태안해경]

지난 10일 충남 태안군 신도 인근 해상에서 어선위치발진장치(V-PASS)를 끄고 무허가 잠수기조업으로 해삼을 채취하다 해경에 적발된 어선.[사진 태안해경]

한편 태안해경은 지난달 3일에도 육상·해상 잠복근무를 통해 태안군 근흥면 옹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 잠수장비를 이용, 해삼 150㎏가량을 채취한 선장 A씨(57) 등 3명을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 검찰에 송치했다.

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