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그대 마음 굳은 바위와 같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소설 ‘남한산성’과 이를 각색한 동명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작가 김훈은 “놀랐다”고 고백했다. 작품은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을 모두 충신으로 그렸다. “우리 독자들은 민족의 치욕과 패배를 받아들이는 데 훈련이 안 돼 있다고 보았다…내 우려와 예측은 틀렸다…어떤 민족의 역사도 영광과 자존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그 치욕과 패배, 그 너머에 대한 많은 관객의 이해가 살아 있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2017년 10월 27일 시사IN 인터뷰)

이성적으로 대응하자는 주장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일부 세력들 #한국이 그 정도 수준의 나라인가

약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볼 여유가 우리에게 조금은 생겼을까. 한·일 관계사의 갈등 국면 때마다 한국은 언제나 반일 물결로 뒤덮였다. 지금이 과거와 다른 풍경이라면 이성적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방증이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의 30분의 1이었던 국력(GDP)이 3분의 1까지 올라왔다는 자신감도 반영됐으리라. 2010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사태 당시, 중국의 반일 시위 광풍을 ‘관제 민족주의’의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봤던 우리 국민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권, 친정부 언론의 분위기는 좀 다른 것 같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정부의 외교 난맥상을 지적한 신문 칼럼과 기사를 두고 “100년 전 친일단체 일진회의 합방성명서를 떠오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냉철한 이성으로 대응하자는 기사에는 “이게 바로 친일파의 논리”라고 말했다. 한 출연자는 일본은 혐한(嫌韓)하는 판인데, 겨우 반일하자는 게 무슨 문제냐는 논리를 폈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보여준 억지와 단순함, 이들이 아직도 벗어버리지 못한 콤플렉스가 놀랍다.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 중앙일보 등의 일본어 번역 기사에 ‘매국’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일본인이 읽고 한국 여론을 이해한다는 이유다. 정부 비판 기사를 북한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이적(利敵)’ 딱지를 붙이던 과거 독재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다. 대법원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에 청와대가 침묵한 명분도 사법부의 ‘다른 목소리’에 대한 존중 아니었던가. 그런 정부가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한목소리를 강요하는 이 시대 퇴행적인 상황이 놀랍다.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공기(空氣)는 좋지 않다. 수출규제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반대의 세 배에 가깝다(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그럼에도 일부 극우 매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신문은 아베의 졸렬한 조치에 비판적이다. 이런 기사가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된다는 이유로 신문이 ‘매국’으로 매도됐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최명길은 남한산성에서 김상헌이 찢은 항복 문서를 주워 붙이며 말했다.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처럼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 지금 정부에는 온통 ‘찢어 버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죽창가가 울리고, 의병과 국채보상운동이 소환됐다. 한 여권 인사는 “이런 판국에 아베를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하는 분들은 도쿄로 이사를 가시든가”하고 빈정댔다. 대통령의 말도 점점 강해진다. 급기야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한다”까지 갔다. 근린 국가에 ‘경고’ 표현을 쓴 것도 놀랍지만, 막상 궁금한 것은 우리한테 어떤 무기가 있는가다. 일본은 단 3개의 반도체 소재 물질로 우리를 조여오고 있다. 그다음 수가 뭐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진 비장의 수는 뭘까. 설마 ‘너 죽고 나 죽자’는 오기만은 아니길 빌 뿐이다.

최명길은 김상헌에게 말했다. “그대 마음 굳은 바위 같아 끝까지 바뀌지 않거니와, 나의 도는 둥근 고리 같아 믿는 바에 따르네(君心如石終難轉, 吾道如環信所隨).” 묻고 싶다. 그런 ‘굳은 바위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왜 무지막지한 중국의 사드 공세 때는 왜 제대로 말을 못 했는지.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