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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채 유령처럼 떠있는 선박···'김정은 벤츠' 나른 그 배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신항만 7부두에 토고 국적 선박 'DN5505호'가 정박돼 있다. 이 선박은 이른바 '김정은 방탄 벤츠'를 부산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수송한 것으로 지목됐다. 포항=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신항만 7부두에 토고 국적 선박 'DN5505호'가 정박돼 있다. 이 선박은 이른바 '김정은 방탄 벤츠'를 부산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수송한 것으로 지목됐다. 포항=김정석 기자

18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송정동 포항신항 제7부두. 부두에 크고 작은 선박들이 여러 대 정박돼 있었다. 그 사이로 선체 곳곳에 녹이 슬어 있는 청록색 선박 한 대가 눈에 띄었다.

지난 2월 포항신항 입항…현재는 선체 곳곳 녹슨 모습 #NYT "DN5505호가 부산~러 나홋카항 벤츠 수송 담당" #해경 "북한산 석탄 반입 여부 비롯해 결의위반 수사중"

선박 앞머리와 마스트엔 ‘DN5505’라 적혀 있었다. 지난 2월 4일 포항신항에 입항한 이 선박은 북한산 석탄을 국내로 불법 반입하려 했다는 의심을 사 포항신항에 억류된 토고 국적의 선박이다. 현재 출항 금지를 당해 5개월 이상 이곳에 묶여 있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길이 84m, 너비 13m, 총 톤수 1999t급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의 DN5505는 1987년 1월 1일 건조된 일반화물선이다. 같은 자리에 오랜 기간 정박시켜 선체 곳곳에 녹이 슬어버린 흔적이 확연히 보이고, 선박 주변을 오가는 인기척마저 전혀 없어 마치 버려진 배처럼 보였다.

포항신항해양수산사무소 관계자는 “미국 측이 DN5505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행위에 관련된 선박으로 의심하면서 해경이 이 선박을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만 측은 수사 중인 선박이란 이유로 취재진을 비롯한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했다.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신항만 7부두에 토고 국적 선박 'DN5505호'가 정박돼 있다. 이 선박은 이른바 '김정은 방탄 벤츠'를 부산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수송한 것으로 지목됐다. 포항=김정석 기자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신항만 7부두에 토고 국적 선박 'DN5505호'가 정박돼 있다. 이 선박은 이른바 '김정은 방탄 벤츠'를 부산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수송한 것으로 지목됐다. 포항=김정석 기자

북한산 석탄을 다른 국가로 실어날랐다는 의심을 받은 선박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DN5505호는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10월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탄 벤츠를 부산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수송한 화물선으로 알려지면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미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 보고서와 자체 취재를 통해 김 위원장의 고급 리무진들이 어떤 경로로 평양까지 들어갔는지 추적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차량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서 출발, 중국 다롄(大连), 일본 오사카(大阪)와 한국 부산항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의 나홋카까지 배로 옮겨졌다. 부산항에서 나홋카항까지 차량을 수송할 때 사용된 선박이 바로 DN5505호다.

DN5505호가 수송한 방탄 벤츠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기종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다. 대당 가격이 6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9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은 이 차량을 개조한 무개차를 타고 등장했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용차로 사용했던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리무진. [뉴스1]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용차로 사용했던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 리무진. [뉴스1]

차량 운송 위탁책임은 DN5505호 선주인 도영시핑(DoYoung Shipping)이 맡았다고 NYT는 보도했다. 마셜제도를 국적으로 한 것으로 알려진 ‘도영시핑’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파나마 선적 석유제품 운반선 ‘카트린호’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포항신항해양수산사무소에 따르면 DN5505호가 포항신항에 입항할 당시 선박엔 9명의 러시아인 선원이 탑승해 있었고 석탄 3217t가 실려 있었다. 선원들은 DN5505호가 나홋카항에서 석탄을 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경은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둔갑시켜 반입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DN5505호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동해해양경찰서 관계자는 “대북 보안 관련 수사 사항이라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수 없다”면서도 “석탄 반입을 비롯해 대북제재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모든 행위를 염두에 두고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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