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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분양가 상한제 칼, 뽑을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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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 “나 칼 있어, 조심해” 할 때 알아서 상대가 엎드려주면 최고다. 하지만 상대인 강남 아파트와 분당·판교·하남 등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되레 소폭이지만 집값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다. 급기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분양가 상한제의 칼을 뽑을 기세다. 엊그제는 여당과 청와대, 건교부가 입을 맞췄다고 한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칼집을 벗어나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가격 통제 효과 없고 부작용 커 #공급 줄고 ‘줍줍족’ 배만 불릴 것 #세 차례 과거 경험에서 배워야

필자는 분양가 상한제를 반대한다. 지난달 방송기자 클럽 토론회에서 김현미 장관이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도 반신반의했다. 가격 통제가 본능인 좌파 정부라지만 쉽게 칼을 뽑지 못할 것으로 봤다. 1977년 이후 세 차례 시행 결과, 효과 없고 부작용 많은 데다 되레 청약 과열, 로또 아파트만 부추긴 경험이 있어서다. “하늘이 두쪽 나도 집값을 잡겠다”던 노무현 정부도 마지막까지 주저했던 카드다. 그런데도 김 장관이 밀어붙인다면 어쩔 수 없다. 대신 다음 세 가지 질문에는 답을 갖고 추진하기 바란다.

첫 번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2년 집값은 22.78%가 올랐다. 이때부터 길고 긴 ‘부동산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주택거래신고제 지정,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양도소득세 중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금융규제에 이어 종합부동산세 부과까지 나올 수 있는 모든 집값 대책이 이때 쏟아졌다. 당연히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및 분양가 상한제도 정책 테이블에 올랐다. 하지만노 대통령은 원가 공개를 단호히 반대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도 정권 말인 2007년에야 마지못해 시행했다.

2004년 2월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담당자를 불러 물었습니다. 분양 원가를 공개하면 그 뒤에 어찌 되나. 주택 수급이 5년 뒤, 10년 뒤 늘어나느냐, 아니면 줄어드느냐. 담당자가 우물쭈물 대답을 잘 못 하더군요. 그래서 없던 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물을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를 하면 그 뒤에 어찌 되나?” 김현미 장관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두 번째는 디벨로퍼(개발업자)가 던진 것이다. A 사장은 “지난해 양천구에 950억원을 주고 땅을 샀다. 경쟁 입찰이라 시세대로 줬다. 예상 분양가에 맞춰 최대 금액을 써냈기 때문이다. 마진율을 약 10%로 봤다. 그런데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되레 역마진을 보게 된다. 땅값을 실거래가로 쳐주지 않고 공시지가(시세의 약 80%)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정 이윤을 보장한다지만 많아야 20%를 넘기 어렵다. 결국 손해 보고 아파트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A 사장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통해 자금 조달을 했기 때문에 착공을 미룰 수도 없다고 했다. 이자 비용 등이 더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는 손해나도 아파트를 예정대로 짓겠지만, 신규 아파트 사업은 절대 안 하겠다”며 “이런 업자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김 장관은 2~3년 뒤 올 공급 절벽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세 번째는 로또 아파트다. 벌써 강남에선 “최대 13억원의 차익이 기대된다”는 아파트까지 등장했다. 강남 4구 재건축 물량만 30곳에 달한다. 현재 청약제도로는 무주택 서민 대신 돈 많은 ‘줍줍족’의 배만 불릴 가능성이 크다. 김 장관은 “전매 제한 기간을 길게 해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한 20년은 해야 할지 모른다. 2006년 판교는 전매제한이 10년이었지만 청약 과열을 빚었다. 당첨자는 예상대로 집값이 두 배 이상으로 뛰는 로또를 맞았다. 채권입찰제나 초과이익 환수제 같은 대안도 있지만, 역시 확실한 한 방은 아니다. 김 장관의 국토부는 복안이 있나.

최소한 이 세 가지 질문에 답이 없다면, 김 장관은 부디 자중하시라. 칼은 그냥 칼집에 넣어 두시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