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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일 갈등, 양국 모두 차분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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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논란과 관련, 일본의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 요구를 놓고 아베 정권이 제시한 답변 시한이 오늘로 끝난다. 청와대는 지난 16일 일본 측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양국 기업에다 한국 정부가 배상에 참여하는, 소위 ‘1+1+α’ 방안까지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분위기다.

중재위, ICJ 등 다양한 옵션 필요 #일본 기업도 중요한 고객 놓칠 판 #외교에선 일방적 승리란 불가능

이런 가운데 여당은 어제 당내에 설치한 ‘일본경제보복특별위원회’의 이름 중 ‘경제보복’을 ‘경제침략’으로 바꿨다. 일본의 금수 조치는 상대방의 원인 제공에 대한 대응 차원의 보복이 아닌, 일방적인 경제침략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개명 같지만, 그저 감정적으로만 치닫는 양국의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여기서 보듯, 이대로 두면 한·일 간 무역 분쟁은 보복에 보복을 불러 진정되기는커녕 도리어 악화할 게 뻔하다.

그간 양국은 아무리 정치적 갈등이 심해져도 ‘아시안 패러독스(Asian Paradox)’라고 불릴 정도로 호혜·상생적 경제 관계를 이어왔다. 서로 깊게 얽힌 두 나라가 정치적 이유로 무역 분쟁을 치르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양쪽 기업과 국민이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등 한국 경제의 기둥이 되는 핵심 제품의 원료와 부품 수출을 막으면 당장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입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도 자급자족하든, 아니면 다른 공급처를 찾든 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주요 고객을 잃게 되는 것이다. 벌써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납품할 중국 기업을 삼성이 찾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들불처럼 번지는 불매운동도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이로울 리 없다. 그러니 이제는 양국 모두 냉정함을 되찾고 차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고는 열린 마음과 유연한 사고로 이번 사태에 다시 접근해야 한다.

먼저 청와대부터 한국 정부가 개입된 배상안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제3자 중재, 국제사법재판소(ICJ)행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방안을 연구,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릇 외교 ‘100 대 0’ 식으로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될 수는 없는 법이다. 서로 양보해야 타협이 이뤄진다. 일본 측도 이번 기회에 한국을 단단히 손보겠다는 식의 경직된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수많은 일본 변호사가 지지할 정도로 법리적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결정이다. 그런데도 한일협정을 이유로 무조건 무시하려는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적절하게 지적했듯, 정치적 이유로 무역 보복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여론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한·일 양국 정부는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 이웃한 세계 3위, 12위의 두 경제 대국이 서로 질시하고 싸우는 것은 양국 국민 모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