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6개월 폐쇄’ 보라카이가 제주에 보낸 경고

중앙일보

입력 2019.07.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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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천권필 환경팀 기자

천권필 환경팀 기자

제주도에서 기자가 처음으로 쓰레기 산을 본 건 지난해 5월이었다. 제주공항에서 20㎞가량 떨어진 매립장에는 처리되지 못한 수 만t의 압축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난달 6월 10일, 다시 찾아간 매립장에는 더 많은 쓰레기가 있었다. 이제는 둘 곳이 없어 도로는 물론 직원용 테니스장에까지 쌓아둘 정도였다. 지난해 압축 쓰레기를 육지로 반출하려다가 일부가 필리핀까지 불법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고, 그 뒤부터 단 1t의 쓰레기도 섬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제주 바닷속 쓰레기 문제는 더 심각했다. 유명 낚시 포인트로 알려진 제주 서쪽의 차귀도 바다 밑에는 플라스틱과 중금속 쓰레기가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섬에서 바라본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와는 달리 바닷속의 쓰레기 무덤은 청정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망가진 제주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과잉관광)으로 인한 환경 파괴는 요즘 전 세계 유명 관광지들이 모두 안고 있는 고민이다. 제주 역시 2016년 관광객 수가 1585만 명까지 늘어나면서 오버투어리즘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저가항공 도입 이후 관광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쓰레기와 상·하수 등 도내 환경 인프라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필리핀의 휴양지 보라카이 섬도 몇 년 전부터 심각한 환경 문제를 겪었다. 해변에는 쓰레기가 넘쳐 났고, 바닷물에서는 악취가 났다. 이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보라카이는 시궁창이다. (이대로 오염이 계속됐다가는) 외국인들이 더는 그곳에 가지 않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는 두 달 뒤 보라카이를 폐쇄하고 6개월 동안 하수처리장 등 사회기반시설을 보강했다.

물론 보라카이처럼 제주도를 폐쇄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망가진 제주의 환경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쓰레기와 상·하수 등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법을 고쳐서라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더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제주의 관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양적 팽창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부터는 지속가능한 관광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제주도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2002년),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년),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년) 등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유네스코 3관왕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생물권보전지역이 한라산 중심에서 제주 전역으로 확대 지정됐다. 그만큼 제주의 생태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뜻이다.

전 세계의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찾는 것도 깨끗한 제주의 자연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주의 환경이 망가져 간다면 청정 제주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보라카이 섬을 향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경고를 제주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다.

천권필 환경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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