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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文, 참모들과 상춘재 번개오찬···"日대응에 '아차' 싶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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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두 차례 청와대 참모진들과 ‘번개 오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일에 예고 없이 제1부속실을 통해 연락이 간 자리였다. 지난 12일 오찬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 조국 민정수석 등이 참석했다. 16일은 이호승 경제수석과 산하의 경제정책·산업정책·통상비서관 등을 불렀다. 1시간 반 가까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장소는 청와대 상춘재.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리는 여민1관 3층의 집무실 옆 소회의실에서 종종 참모들과 워킹 런치를 하곤 한다. 관저나 구내식당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상급 외빈이나 여야 대표 등을 예우하기 위한 장소인 상춘재로 참모들을 부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문 대통령이 참모들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전하고, 또 소규모 자리를 통해 직접 밝혀야 할 메시지가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좋은 곳을 힘들게 일하는 참모진과 공유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회의실이나 구내 식당만 이용해왔는데 최근 들어서 상춘재도 함께 쓰려고 한다”는 취지로 주변에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찬 참석자들은 문 대통령이 현 사태에 대한 엄중함과 긴박함을 공유하면서 단일대오로 대응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에 이번 상황 인식에 대한 온도 차가 있다고 대통령이 느끼는 것 같았다”며 “초기에 참모진들이 로키(low-key, 낮은 수위)로 관리하자고 제안해서 따랐는데 사태 추이를 보고 ‘아차’ 싶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초반엔 공식 언급을 자제했다. 그러다 문 대통령이 8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10일 기업인 간담회에서 비상상황이라고 규정하며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다른 참석자도 “아주 엄중한 시국이니까 대통령과 참모들 간에 생각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강기정 정무수석과 이호승 경제수석이 매일 오전 집무실에서 열리는 티타임의 정례 멤버인데도 이들을 각각 불러 오찬을 함께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티타임에서 일본 문제가 빠지진 않지만 이것저것 다른 이슈들도 많다. 대통령이 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대화하자고 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정책라인뿐만 아니라 정무·민정 파트와 머리를 맞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 참모진은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 있으면서 정책실이나 안보실 이야기만 듣고 의사결정을 내린 데 대한 아쉬움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며 “이번엔 정무와 민정까지 포함해 두루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 아니겠냐”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친교 만찬을 마친 뒤 만찬장을 나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친교 만찬을 마친 뒤 만찬장을 나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로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이라크 파병 등의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었던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어서 (대통령에게) 더 말하기 어려웠다. 내 이해와 인식이 좀 더 분명했으면, 정무관계 수석실 전체로 논의를 확산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돌이켰다.

오찬에 참석한 참모들로선 대통령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 계기였다. 한 참석자는 “최근 대통령이 내놓은 여러 메시지 중에서도 특히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지 직접 말씀해줬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대통령의 발언 중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건 이 대목”이라고 식으로 해설해 주는 청와대 인사들이 늘었다.

이 자리는 문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참모들이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오찬 자리에서 격의 없이 들음으로써 의사 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향후 홍보파트나 안보라인과 번개 오찬을 이어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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