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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가 핵심기술 일본 종속 벗어나려면 출연연 역할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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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부터),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지난 5월 24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열린 '제1차 공공기관 R&R 성과공유회의'에서 신용현 국회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박수 치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부터),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지난 5월 24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열린 '제1차 공공기관 R&R 성과공유회의'에서 신용현 국회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박수 치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이번 수출 규제의 결과로 국가의 핵심 성장동력인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분야에서의 타격이 일본의 일부 소재기업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발 빠르게 외교적 대응을 준비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내의 반도체 소재ㆍ부품ㆍ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른 시간 안에 최소한 반도체 분야에서만큼은 탈(脫) 일본화를 가속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부품ㆍ소재 기술 강국인 일본은 얼마 전 발생한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로 인한 일본 첨단산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제품에서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연구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거래처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스스로 냉정하게 자문하면서 국가 연구ㆍ개발(R&D) 체제 혁신이라는 큰 틀에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술독점을 이용한 이러한 총성 없는 전쟁은 비단 반도체 산업 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국내외 경제 상황이나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하여 단기간에 비용대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R&D 투자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핵심 기반 기술의 확보가 없이는 산업과 기술의 발전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는 이제 정부가 더 이상 단기적인 R&D 투자 정책을 펼칠 것이 아니라 전격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먼저 최근 급속히 늘어난 4차 산업혁명과 AI 관련 R&D 투자와,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끄는 기반 주력산업의 투자가 균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

그간 과학정책은 산업발전 트렌드와 정치 사회적 변화에 맞춰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2000년대 초부터 이어진 나노과학ㆍ녹색성장 주도의 투자도 그랬고, 창조경제를 지나 지금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이 그러하다. 정책의 다변화도 중요하지만 주력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반드시 병행되어야한다. 과연 정부는 국가의 기반 주력산업에 뚝심 있게 투자하고 있는가.

또한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술독립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강화하기 바란다. 현재 우리나라가 놓치고 있는 기술개발 부분을 정부부처 차원에서 점검해야 한다. 복잡한 공정으로 이루어진 첨단산업의 리스크는 핵심 소재ㆍ부품뿐만 아니라, 핵심 측정 및 공정장비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정부와 기업ㆍ연구계가 함께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체 개발이 필요한 핵심 기술 분야를 선정하고, 꾸준히 육성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역할과 책임(R&RㆍRole & Responsibility)’에 대한 재정립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적인 핵심기술의 독립은 기업의 몫으로만 넘길 일이 아니다.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해온 국가연구기관으로서의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에 국가 핵심기술의 독립도 포함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의 R&D 역량과 산업 규모 때문에, 출연연에는 주로 중소기업 지원 임무가 부여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반도체 사태와 같이 핵심 기반 기술은 어느 한 기업이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해외 의존성이 높은 기술 분야를 선정하고 이를 출연연 주요 역할에 부여함으로써 기술독립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성장동력을 생각할 때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수출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지 못하도록 기술독립을 통한 경쟁성 확보가 절실한 시점이다.

남승훈

남승훈

남승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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