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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미래세대의 전략 선택권을 박탈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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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팀장

고정애 정치팀장

#1. 지난달 말 진보의 거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그의 판단을 듣는 자리였다. 마침 테이블 위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예정된 전쟁』이 놓여있었다. 미·중 경쟁을 두고 2500년 전 그리스를 초토화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떠올린 저작이다. 최 교수는 앨리슨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국제질서가 변하고 있다. 이미 변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중의 위계 구조(dual hierarchy)다. 미·중이 경쟁하는 국제정치 질서다. 중국이 공동의 세계 운영자가 됐다.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부분적으로 있을 수 있어도 전체적인 전쟁이 벌어진다고 보진 않는다. 초강대국의 전쟁은 너무나도 많은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중국이 성장해 미국과 엇비슷해졌다지만 여전히 경제력 차이가 있다. (미·소와 달리) 대칭적이지도 않다. 중국의 경제체제는 사실상 미국의 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다.”

이중의 위계 구조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미국의 안보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의미다.

#2.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국제질서 유지에 관심을 잃게 되며 한국에서 한 발 뺄 수 있다”고 본 지정학 전략가가 피터 자이한이다. 그가 한국 입장에서 참고가 될 법한 글을 몇 차례 올렸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미국이 국제질서 유지에서 발을 빼는 건 전략적 관점의 변화뿐만 아니라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초대형 항모단의 존재로 놀랄만한 효율성으로 해군력을 투사할 수 있으나 ‘작은 함정’ 숫자가 크게 줄어 상시로 질서를 지킬 순 없게 됐다. 미군은 이젠 ‘질서가 아닌 무질서를 위한 것’(Not for order, but for disorder)이다. ②한때 미국이 무상으로 제공했던 혜택을 앞으론 돈 주고 사야 한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는 적절하게 보상했기 때문일 거다. ‘우버’식 사업모델이다. ③트럼프는 지난달 “왜 한 푼도 보상하지 않는 나라를 위해 우리가 바닷길을 보호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④익숙했던 질서 규범이 무너질 텐데 여기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어지러운 진단들이다. 한마디로 전환기란 얘기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질서는 사라지고 있다. 지금 보는 건 잔상(殘像)일 수 있다. 어쩌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한 세대 이상 분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가운데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최근 본지에 “미국이 3시 방향을 기대하고 중국이 9시 방향을 주문할 때, 한국은 기본적으로 1시 반 방향의 대처를 하는 나라임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한다. 여기엔 숨은 전제가 있으니 미국과 함께하려면 일본과도 함께해야 한다는 거다. 일본과 멀어지면 미국과도 멀어질 수 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까진 말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우리가 움직일 공간이 있을까. 아마도다. 대신 대단히 냉철한 현실 인식-우리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까지 포함해서-이 필요할 게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세력들이 일본 이슈를 다루는 걸 보면 그나마 좁았던 공간이 더 협소해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걸핏하면 운동권적 사관을 드러내고 구한말·일제강점기의 분노에 사로잡히곤 해서다. 근래엔 4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민족주의적 열망은 정신 승리엔 도움될 수 있으나 실제 승리엔 글쎄다.

문제는 그게 당대만 어렵게 하는 게 아니란 점이다. 지나친 강공으로 후대의 전략적 공간마저 제약할 수 있다. 일본의 보통 사람들까지 혐한(嫌韓)하게 한 게 대표적이다. 냉정해지자. 여전히 일본과 이웃으로 살아갈 후대를 생각해야 한다.

고정애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