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에 사이렌이 울리면 고우석이 뜬다

중앙일보

입력 2019.07.15 14:55

업데이트 2019.07.15 15:11

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 최승식 기자

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 최승식 기자

잠실구장에 사이렌이 울리면 마운드에 오르는 남자가 있다. 올 시즌 새롭게 프로야구 LG 트윈스 마무리가 된 오른손 투수 고우석(21)이다. 올 시즌 구원 성공률 100% 행진을 이어가는 고우석을 11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LG는 전통적으로 마무리가 강한 팀이다. '노송' 김용수(227세이브)-'삼손' 이상훈(98세이브)-'봉의사' 봉중근(109세이브)로 이어지는 계보가 이를 증명한다. 봉중근 이후 뚜렷한 고정 마무리가 없었던 LG는 올 시즌 드디어 '계승자'를 찾았다. 바로 고우석이다.

프로 3년차 고우석이 시즌 시작부터 마무리가 된 건 아니다. 지난해 소방수를 맡았던 정찬헌이 비운 자리를 맡았다. LG의 선택은 옳았다. 마무리투수로 낙점된 고우석은 29경기에서 5승 18세이브(3위), 평균자책점 0.87을 기록했다. 31이닝 동안 내준 점수는 고작 4점(3자책점). 리드 상황을 날린 블론세이브는 '0'이다. 류중일 감독은 "처음엔 '임시'였다. 결과적으론 대성공"이라며 흐뭇해했다.

고우석은 마무리로 '승진'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 4월 21일, 잠실구장 키움전. 5-3으로 앞선 9회 말 등판해 선두타자 장영석을 안타로 내보냈지만 후속 세 타자를 범퇴로 잡아냈다. 고우석은 "'마무리로 준비하라'는 얘기를 그날 들었다. 마무리로 서는 이미지 트레이닝은 했지만 준비한 루틴대로 던졌다"고 떠올렸다.

통산 266세이브를 올린 롯데 손승락은 "마무리의 무게감은 크다. 자신의 실패가 팀의 패배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예 소방수 고우석도 똑같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는 "상대도 집중하고, 우리 팀도 나만 보고 있다. 사실 긴장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게 어렵다. 항상 긴장의 끈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가 없을 뿐, 실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실패할 것도 늘 생각하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고우석은 "포수 유강남 선배가 자신있는 투구를 주문한다. 나도 좋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고우석은 "포수 유강남 선배가 자신있는 투구를 주문한다. 나도 좋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마무리 투수들이 등장할 땐 멋진 음악이 울려퍼지곤 한다. MLB 최초 통산 600세이브를 돌파한 트레버 호프먼(52)이 등판할 땐 밴드 AC/DC의 '지옥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프먼의 기록을 뛰어넘은 마리아노 리베라(50·652세이브)는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잠을 재우는 정령)'을 썼다. 국내에선 오승환(38)이 삼성 시절 NEXT의 '라젠카 세이브 어스'란 등장음악을 썼다.

LG는 고우석이 마무리로 보직을 옮긴 뒤 등장음악을 드라우닝 풀의 '솔저스'로 교체했다. 인트로 부분에 나오는 사이렌 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다. 사실 이 음악은 2013년부터 봉중근이 쓰던 것이다. 당시 봉중근은 '타자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LG는 지난달부터 봉중근의 뒤를 이어 마무리를 맡은 고우석에게 물려줬다.

고우석은 "마무리가 된 뒤 (곡 변경을) 생각해 봤는데 구단에서 신경써주셔서 고마웠다. 예전에 이 곡을 임찬규 선배님이 봉중근 선배에게 추천해줬다고 들었다.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딱 한 가지. 사이렌을 자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우석은 "홈 경기에서만 들을 수 있고, 소음 문제 때문에 밤 10시가 되면 앰프를 틀 수 없다. 그래서 사실 아직 경기 중엔 한 번 밖에 못 들었다"고 웃었다. 인터뷰 이후 고우석은 13, 14일 삼성전에서 연속 등판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사이렌과 함께 세이브 2개를 챙겼다.

류중일 감독에게 고우석의 마무리 선정 이유를 묻자 "공이 제일 빠르지 않느냐"고 답했다. 고우석은 최고 시속 155㎞의 포심패스트볼을 뿌린다.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고우석의 직구 구종가치는 12.6으로 전체 6위다. 평균구속(150.5㎞)은 산체스(SK)에 이은 2위다. 롤모델인 오승환처럼 체격(1m82cm, 90kg)이 크진 않지만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힘 있는 공을 뿌린다. 지난해 오승환과 함께 훈련한 고우석은 "승환이 형에게 많은 걸 배웠다. 선배님과 비교되면 기분이 좋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했다.

콜로라도 로키스 오승환. [연합뉴스]

콜로라도 로키스 오승환. [연합뉴스]

오승환 최고의 무기가 직구인 것처럼, 고우석도 직구가 강점이다. 그는 "2군에 있을 때 최동수 코치님이 '직구 맞으면 어떡해야 돼'라고 물으셨다. '변화구'라고 했더니, 더 세게 던지라고 하셨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타자가 파울로 직구를 걷어내면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포수 유강남 선배도 과감한 승부를 요구한다. 한 경기만 보면 변화구로 잡은 것도 좋지만, 나를 더 발전시키려면 정면승부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고우석은 고종사촌형 유재유(22·두산) 때문에 야구를 시작했다. LG 팬이었던 고모부가 아들에게 야구를 시켰고, 야구 유니폼을 입은 형을 보면서 고우석도 따라 야구를 했다. '엘린이(LG 팬 어린이)' 출신 고우석은 "2년간 함께 산 적이 있다. 고모부가 멘토로 어떻게 운동을 해야하는지 알려주셨다. 어렸을 땐 하루도 빼놓지 않고 팔굽혀펴기 200개를 했다. 구속이 빠른 건 그 때 열심히 한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생애 첫 올스타전(7월 20일·창원 NC파크)에 나서게 됐다. 투표를 통해 올스타 베스트12(나눔리그 마무리)로 선정됐다. 고우석은 "(정)우영(중간투수 부문)이랑 같이 가게 되서 더 기분이 좋다"고 했다.

또 하나의 영광이 다가올 수도 있다. 올해 11월 열리는 프리미어 12에 출전할 야구대표팀 발탁이다. 고우석은 같은 우완 파이어볼러 하재훈(SK), 조상우(키움) 등과 함께 대표팀 승선 후보로 꼽힌다. 고우석은 "물론 국가대표도 좋다. 하지만 나는 LG가 우승하는 게 더 좋다"며 "난 LG 우승(1990, 94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뛸 때 우승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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