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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80세 이스라엘 대통령, 사별한지 한 달 만에 한국행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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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가원수인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의 방한이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는 리블린 대통령이 14~18일 방한해 15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대통령의 방한은 2010년 전임 시몬 페레스 대통령(2007~2014년 재임)이 찾은 지 9년 만이다.이스라엘과 한국 사이의 현안은 스타트업 투자와 과학기술 협력이라는 경제과학적 목적 외에도 민감한 정보 교환과 첨단 무기체계를 비롯한 안보 분야의 중요한 사안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예사롭지 않은 나라 대통령의 드문 방한이다.

리블린 대통령,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방한 #한국과는 스타트업·과학기술·방산·정보 의제 #세계 최강 정보력 모사드 운영하는 이스라엘 #2001년 김정남 일본 입국 원천 정보도 파악 #이란-북한 핵·미사일 협력의 안보위협 촉각 #사우디 등 온건 이슬람국가완 관계강화 추진 #기술과 자본 결합해 새로운 중동 질서 추구 #한국 원전 기술의 중동확산도 주목할 가능성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왼쪽)이 영부인 네하마 리블린 여사와 함게 지난해 3월 예루살렘을 방문한 불가리아의 루벤 라데프 대통령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당시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이용해 힘겹게 호흡한 리블린 여사는 지난 6월 4일 세상을 떠났으며 80세의 리블린 대통령은 상처한 지 한달 만에 한국을 찾았다.[EPA=연합뉴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왼쪽)이 영부인 네하마 리블린 여사와 함게 지난해 3월 예루살렘을 방문한 불가리아의 루벤 라데프 대통령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당시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이용해 힘겹게 호흡한 리블린 여사는 지난 6월 4일 세상을 떠났으며 80세의 리블린 대통령은 상처한 지 한달 만에 한국을 찾았다.[EPA=연합뉴스]

80 고령, 상처 한 달 만에 한국 방문

눈여겨 볼 점은 리블린 대통령이 오는 9월로 만 80세가 되는 고령인 데다, 지난달 부인과 사별한 상황에서 방한했다는 사실이다. 배우자를 잃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체력이나 정신력이 아무리 좋아도 육체적, 심리적으로도 위안이 필요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연로한 사람에게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여름철에 방한하는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리블린 대통령의 부인 네하마 리블린은 폐섬유증을 앓다 지난 3월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7년~2007년 예루살렘대 동물학·유전학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도 평화와 관용 운동을 펼치며 여성·어린이·아랍인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사회 활동으로 배우자의 공직 수행을 지원한 셈이다.

이스라엘 영부인 네하마 리블린 여사(오른쪽)가 2017년 5월 예루살렘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손을 잡고 대통령 관저를 걷고 있다. 폐섬유종을 앓다 지난달 4일 세상을 떠난 리블린 여사는 휴대용 호흡기를 들고 다니면서도 마지막까지 영부인으로의 의무를 다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영부인 네하마 리블린 여사(오른쪽)가 2017년 5월 예루살렘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손을 잡고 대통령 관저를 걷고 있다. 폐섬유종을 앓다 지난달 4일 세상을 떠난 리블린 여사는 휴대용 호흡기를 들고 다니면서도 마지막까지 영부인으로의 의무를 다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투병 중에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예루살렘 방문 등 국빈 행사에는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들고 참가했다.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동지인 부인을 잃은 리블린 대통령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리블린 대통령의 방한은 이처럼 인간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모사드, 김정남 등 대북정보 강해

리블린 대통령은 특히 세계 최강의 정보수집 능력을 인정받는 대외정보기관 모사드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모사드의 정보 수집 범위는 전 세계적인 것으로 정평이 났다. 중동과 유럽, 미주 지역은 물론 아시아 지역까지 범위가 미친다. 정보기관의 능력이나 활동은 대부분 배일이 싸였지만 드러난 사례만 해도 능력을 인정받을 만하다.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2001년 남미 국가의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발간됐을 당시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가 원천벙 보를 입수해 서방국가와 공유하면서 입국을 저지한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AP=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2001년 남미 국가의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발간됐을 당시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대외정보기관 모사드가 원천벙 보를 입수해 서방국가와 공유하면서 입국을 저지한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AP=연합뉴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2001년에 남미 국가의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발각된 사건도 모사드가 배경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모사드가 관련 원천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공유했으며, CIA는 이를 일본에 넘겨 김정남을 공항에서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북한 간 핵과 미사일 협력에 촉각

2004년 4월 22일 북한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폭발사고로 모사드 관여설이 있다. 당시 열차에는 핵기술 교류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시리아 과학자 12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상관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핵무기 개발 기지를 탐지해 2007년 9월 6일 폭격으로 파괴했는데, 시리아 핵 개발의 결정적인 단서를 파악한 계기가 용천 폭발사건이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폭사한 시리아 과학자들의 이전 행동을 추적한 결과 이란의 나탄즈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들이 이란에 이어 북한에 핵기술을 받거나 넘기려고 간 것으로 파악했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가장 큰 잠재적인 적국으로 여긴다. 이란이 핵 개발에 나서자 미국은 물론 러시아,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은 이란을 철저하게 누르는 경제제재 결의안을 줄줄이 통과했다. 그 배경에 이스라엘의 외교와 로비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란 핵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보여준다.
2012년 이란 테헤란에선 모터사이클 운전자가 달리는 자동차에 다가와 차체에 붙인 부착식 폭탄이 폭발해 주요 핵 과학자가 폭사하는 사망하는 사건이 4건이나 연속 발생했다.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모사드의 요인 암살 공작이란 의심을 불렀지만,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한국 원전기술 일부가 중동에 유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와중에 이스라엘이 한국 원전 기술의 중동 확산에 주목할 가능성이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에너지 기술이다. 이스라엘은 남부 네게브 사막에 원자력 연구소를 운영해왔으며, 여기에서 이미 핵무기를 개발해 비축 중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런 이스라엘이 원자력 에너지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자력 기술이 중동의 다른 나라에 확산하는 것을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5일(현지시간) 예멘의 친후티 방송국이 공개한 미사일 발사 장면. 전날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할리드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사우디군은 이를 요격했다.후티반군이 쓰는 탄도 미사일은 북한 기술을 이용해 이란에 게작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취대 안보 고민이 되고 있다.[중앙포토]

5일(현지시간) 예멘의 친후티 방송국이 공개한 미사일 발사 장면. 전날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할리드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사우디군은 이를 요격했다.후티반군이 쓰는 탄도 미사일은 북한 기술을 이용해 이란에 게작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취대 안보 고민이 되고 있다.[중앙포토]

북한 기술 이란제 미사일 이스라엘 노려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내전 중인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쪽으로 발사했다가 요격된 탄도 미사일에 주목한다. 이스라엘은 이 미사일이 이란에서 공급됐으며, 북한이 관련 기술이나 설계, 부품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기체계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을 보유한 이란과 북한이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란이 성능 좋은 미사일을 개발하면 유사시 이스라엘을 노리게 된다. 과거 걸프전과 이라크전 당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참전도 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슬람권에 자신들이 친이스라엘 세력과 대결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하서였다.
이런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이란도 미국으로부터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즉각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날릴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이 이란과 북한의 핵과 미사일 협력을 시급한 안보 위협으로 보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선 북한 관련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중고도 장기체공 무인기 IA 헤론의 모습.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이 제작한 무인기로 우수한 성능 덕분에 전 세계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위키피디아]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중고도 장기체공 무인기 IA 헤론의 모습.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이 제작한 무인기로 우수한 성능 덕분에 전 세계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위키피디아]

무인기 등 이스라엘 방산기술에도 주목 

이스라엘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사일 방어 기술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다. 무인기와 무인선박, 다양한 미사일 기술도 확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낡은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 전차, 자주포, 장갑차 등을 적은 비용으로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한국 방위산업도 기술력과 생산력에서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이스라엘은 한국이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기술력을 갖춘 또 다른 강국이다.

이스라엘, 사우디 등 온건 이슬람국가에 접근 

루벤 대통령의 방한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34)의 방한 직후라는 점도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한국을 거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부친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84)을 대신해 참석했다. 이에 따라 리블린 대통령의 방한 시점도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부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노령의 이스라엘 대통령이 4박 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 이유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눈여겨볼 점은 이스라엘은 사우디와 사실상 ‘반이란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우디는 아랍어를 쓰는 아랍권의 중심 국가로서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이자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국가다. 반면 이란은 셈어 계통의 아랍어가 아닌 아리안어 계통의 이란어(현지와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에선 파리시라고 함)를 쓰는 나라로, 이슬람 수니파의 숙적인 시아파의 맹주이자 대표적인 반미국가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적으로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행정과 입법을 맡는 민주체제에 이슬람 시아파 율법학자들이 이들을 감독하는 기묘한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이들은 반미와 반군주제를 결합한 이란 혁명의 이상을 중동 지역에 퍼뜨리려고 시도했다. 사우디는 자국에서 벌어졌던 시아파나 군주제 반대자의 봉기나 사원 점거 사건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의심한다.

이스라엘 최남단에 있는 홍해안 항구도시 에일라트.사우디 연안가지 20km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다. 채인택 기자

이스라엘 최남단에 있는 홍해안 항구도시 에일라트.사우디 연안가지 20km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다. 채인택 기자

기술과 자본 결합해 새로운 중동 질서 추구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조심스럽게 접촉을 넓히고 있다. 사우디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할 때부터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는 과거사일 뿐이다. 과거 살벌한 전쟁을 치렀던 이집트와 요르단이 이미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국민과 관광객이 국경을 자유스럽게 지나다니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제3국에서 장관급 비공식 접촉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나 등이 찔리지나 않을까 계산기를 두들기고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다.

만에 하나 양국이 수교할 경우 중동의 국제 관계는 대격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과 가깝거나 이란에 대항하는 나라는 사우디를 따라 이스라엘과 연쇄 수교할 가능성이 크다.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이 줄을 이어 수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이란을 제외한 중동은 오일머니라는 거대 자본과 이스라엘의 기술과 스타트업이 결합해 경제 붐을 이룰 수도 있다.

이런 시나리오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를 석유 수출국에서 탈피해 현대 산업·서비스 국가로 탈바꿈하려고 시도하는 '그랜드 프로젝트'와도 일맥상통한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를 위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가까운 사우디 서북부에 건설하려는 첨단 미래형 도시 '네옴'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큰 꿈을 잘 보여준다. 요르단과는 육로로, 이집트까지는 바다를 건너는 다리로 연결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이스라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스라엘의 최남단 홍해안 항구도시 에일라트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연안까지는 미처 20㎞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네옴은 바로 그 근처에 건설될 예정이다.

군사·과학기술 연구소 사우디에 진출할까 

예멘 내전에 참전 중인 사우디는 군사 수요도 많다. 지난번 무함마드 왕세자는 한국을 방문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았다. 사우디에 한국의 ADD와 같은 국방연구소를 건설해 각종 무기체계를 자체 개발하거나 생산하겠다는 꿈을 비췄다. 국방에 숱한 돈을 들이는 사우디 왕실의 서열 2위로선 당연한 고민일 것이다.
과학기술력의 결정체인 무기체계를 완제품으로 구매하기보다 장기 투자를 통해 자국에서 개발과 생산을 하겠다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지도자로 보인다. 한국의 다양한 과학기술 대학, 대학원을 통째로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복지 확대를 위해 병원은 물론 의과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 간호대학, 보건대학원을 통째로 도입할 수도 있다. 민주화되고 현대화된 중동국가로서 어느 나라보다 중동 지역을 잘 알고 촘촘한 정보 네트워크를 보유한 이스라엘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지역 진출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무슬림 국가들은 영원히 원수지간으로 지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비전을 세울 때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인 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벽돌 틈에 종이쪽지를 넣고 기도하는 유대인으로 늘 붐빈다. 최근 통곡의 벽은 첨단과학으로 거듭났다. 안내소에서 고대 성전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하고 지하터널에서 고고학 발굴 성과도 확인할 수 있다. 채인택 기자

역사의 현장인 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벽돌 틈에 종이쪽지를 넣고 기도하는 유대인으로 늘 붐빈다. 최근 통곡의 벽은 첨단과학으로 거듭났다. 안내소에서 고대 성전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하고 지하터널에서 고고학 발굴 성과도 확인할 수 있다. 채인택 기자

중동-이스라엘 서로 적대감 줄어 

사실 중동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지난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대규모 전면전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과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을 마지막으로 주변국과 무장 충돌도 없다. 다만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이스라엘에 공습으로 맞서는 일은 있지만,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은 아니다. 이스라엘 공군이 내전 중인 시리아에 2012년부터 올해까지 무장단체인 헤즈볼라나 이란, 시리아 정부군 기지를 공습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실질적으론 전면전 없는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더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적대적일 이유가 없다. 중동 국가들도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 발전을 위해선 이스라엘에 더는 등을 돌릴 이유를 찾지 못한다. 리블린 대통령이 이스라엘 대통령으로선 9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뜻깊은 이유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지난 4월 1일 캐나다를 방문해 퀘벡주 첼시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지난 4월 1일 캐나다를 방문해 퀘벡주 첼시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온정적 보수로 전임 진보 대통령 정책 이어 

리블린 대통령은 안보에 강경한 보수 정당인 리쿠드당 출신이지만, 아랍인과의 대화를 추구하고 이스라엘 내부의 아랍인을 통합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온정적인 보수파라고 보를 수 있다. 2014년 7월 대통령에 오른 이래 스타트업과 첨단기술 개발 정책에 몰두해왔다. 스타트업과 과학기술 중시정책은 진보정당인 노동당 출신인 전임 시몬 페레스 대통령의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혁신에 많은 관심을 보인 페레스 대통령은 중동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리블린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청년들의 창업을 격려할 다양한 행사를 열 예정이다.

아랍어 능통-아랍인과 공존 주장 

리블린 대통령은 19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시절부터 예루살렘 근처에 살았던 유대인 가문 출신이다. 유럽이 아닌 중동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집안 출신으로 현지 아랍인과 공존을 주장해왔으며 아랍어에도 능통하다.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에 정예 예루살렘 여단의 정보장교로 활동했던 참전용사다. 예루살렘의 헤브루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변호사로 1988년 국회(크네세트) 의원에 당선해 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2001~2003년 통신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3년~2006년과 2009~2013년 두 차례에 7년에 걸쳐 국회의장을 지냈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왼쪽)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운데), 니르 바르캇 전 예루살렘 시장(오른족)과 함께 지난 5월 2일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추념일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왼쪽)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운데), 니르 바르캇 전 예루살렘 시장(오른족)과 함께 지난 5월 2일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추념일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통령, 심한 정쟁 내각책임제에서 조정 역할

이스라엘은 내각책임제로 정치와 국정은 총리가 주도하고 대통령은 국가통합의 상징적 존재로서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갈등 조정을 통한 국가통합과 미래 비전에 주력하며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다. 이스라엘이 건국 이래 한 번도 과반 정당이 없을 정도로 치열한 정당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총선 제1당에 의회의 연정구성을 맡기면서 막후에서 조정 역할도 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10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초대 대통령 물망에 올랐지만, 과학기술에 몰두하겠다며 본인이 사양했다. 이후 국민이 존경할 수 있는 덕망 있는 인물을 선출해왔다. 진흙탕의 정치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나라와 국민, 그리고 세계의 미래를 폭넓게 상상할 수 있는 자리다. 이러한 이스라엘 대통령의 방한은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영감을 준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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