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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고 전환 vs 끝까지 저지…폐지 논란 속 자사고 내 온도차 왜?

중앙일보

입력

자립형사립고 재지정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재지정에 탈락한 경기 안산동산고 학부모들이 지난 1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자립형사립고 재지정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재지정에 탈락한 경기 안산동산고 학부모들이 지난 1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자사고 폐지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일반고 전환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현재 학교 상황으로는 내년에 이뤄질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평가에서 전북도교육청이 제시하는 기준점수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에 충실해야 할 때라는 판단도 작용했습니다.”(전북 익산 남성고)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평가는 자사고를 없애기 위해 각본에 따라 짜 맞춘 평가에 불과합니다. 학교들은 5년 전 기준에 맞춰 학교를 운영해왔는데, 시교육청은 지난해 말 달라진 평가지표를 제시했습니다. 평가를 빙자한 자사고 폐지 정책을 끝까지 저지할 것입니다.”(서울 자율형사립고 공동체 연합)

교육당국의 자사고 재지정평가 결과에 대한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자사고 내에서도 일반고 전환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시·도교육청의 평가에서 떨어진 자사고 11곳은 강력히 반발하며 행정소송 등을 진행 중인 반면, 일부 학교는 관할교육청에 먼저 자사고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밝혀서다.

14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북 군산중앙고와 익산 남성고, 대구 경일여고가 최근 시·도교육청에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 이들 학교는 모두 내년에 재지정평가를 앞두고 있다. 평가를 진행하기도 전에 자사고 지위를 포기한 데는 상산고 등의 평가결과를 보면서 통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올해 재지정평가에서 탈락한 자사고 11곳은 정부의 평가를 ‘불공정’ ‘깜깜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상산고(전북)·안산동산고(경기)·해운대고(부산)와 서울지역 자사고 8곳이 여기 포함됐다. 현재 서울지역 자사고들은 감사원 감사를 요청할 예정이고, 보수성향 교육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지난 12일 서울시교육청에 자사고 평가위원의 신상을 공개해 달라는 청구서를 전달했다. 해운대고 학부모비대위원회는 23일 부산시교육청 청문을 진행한 후 행정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지난 12일 자사고 평가위원 명단 정보공개청구 하는 이종배 대표. [연합뉴스]

지난 12일 자사고 평가위원 명단 정보공개청구 하는 이종배 대표. [연합뉴스]

같은 자사고 내에서 이런 온도 차가 발생하는 가장 이유는 학생 충원율 때문이다. 자사고는 정부 지원금 없이 등록금과 재단 전입금만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 모집이 미달되면 재정 위기로 이어진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은 “100명에게 100만원씩 받아서 1억으로 운영하는 학교에서 70명밖에 모집이 안 되면 30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며 “매년 이런 적자를 감당하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근 일반고 전환을 요청한 군산중앙고와 남성고·경일여고도 공통으로 학생 미달 사태를 겪었다. 군산중앙고는 올해 신입생 280명 모집에 174명밖에 지원하지 않아 입학경쟁률 0.62대 1을 기록했다. 한국 GM과 현대중공업의 가동 중단으로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은 게 학생 수 감소로 이어졌다. 남성고도 350명 선발에 220명만 지원해 경쟁률이 0.63대 1이었고, 경일여고도 올해 입학경쟁률이 0.34대 1(280명 모집에 94명 지원)밖에 안됐다.

이는 지방에 있는 자사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서울지역 자사고 21곳(하나고는 자료 비공개로 제외) 중 대광고·세화여고·경문고·숭문고도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이들 학교의 올해 입학 경쟁률은 각각 0.84대 1, 0.95대 1, 0.83대 1, 0.80대 1이었다. 사회통합전형까지 확대하면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는 서울지역 자사고의 절반 이상인 11곳으로 증가한다.<표 참조>

이들 학교가 학생 미달에도 자사고 지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시설 확충 등 그동안 학교 발전에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자사고의 한 교장은 “자사고 전환 후 기숙사를 만든 학교들은 대부분 100억원 넘게 비용을 들였다고 보면 된다”며 “일반고로 전환하면 이런 시설은 어떻게 활용하고, 비용은 누가 보전해 주느냐”고 답답해했다.

정부에서 학교운영이 어려운 자사고가 스스로 일반고로 돌아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평가나 법 개정을 통해 강제하는 방식은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갈등을 키우기보다 자사고 스스로 일반고 전환을 선택할 수 있는 확실한 퇴로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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