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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TV를 앉아서 보나, 하정우처럼 걷고 또 걸어보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순의 인생 후반 필독서(18)

 우리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 평소에는 크게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건강을 잃었을 때 절망하고, 건강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중앙포토]

우리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에 평소에는 크게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건강을 잃었을 때 절망하고, 건강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중앙포토]

조카들을 유난히 사랑하던 외삼촌은 운영하는 병원을 접기 얼마 전에 수술하셨다.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오고 불편하지만 조금씩은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에 또 한 번의 쇼크가 오고 자리에 누우셨다. 외삼촌 삶의 질은 수술 후 1차로 떨어졌고, 2차 수술 후에는 급격히 떨어졌다.

젊은 시절 훤칠한 키에 게리 쿠퍼 같은 외모의 외삼촌을 우리 조카들은 따르고 좋아했다. 수술 후 몸에 마비가 온 것을 안 외삼촌은 의사의 체면도 버리고 ‘죽어버리겠다고’ 침대에서 뒹구셨단다.

‘다리를 쓴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고마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무리한 운동으로 무릎이 아프거나 발목이 다치면 그제야 다리의 존재를 더 크게 느낀다. 평상시에 늘 운동 부족을 느끼던 나는 TV의 걷는 프로나 캠페인이 나올 때마다 귀를 솔깃하게 된다. ‘걷는 행위’ 자체가 몸의 순환은 물론 무엇인가를 정화하는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정우라는 배우가 매력 있다 정도의 느낌이 들다가,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그리고 몇 번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들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쓴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이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걸 사서 봐야지 했는데 이제야 집어 들었다.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글·사진.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글·사진.

‘아,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나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정말 치열하게 일한다. 그런데 휴일에 꼼짝도 못 하고 나가떨어질 만큼 평소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기 때문일까? 정작 일은 너무나 열심히 하는데 휴식 시간에는 아무런 계획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아니겠어요?’라는 말이 독자인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리는 휴식에 쓸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일하지는 않는다. 독하게 일에 몰입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침대 위에 던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방기’는 결과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를 잠시 방에 풀어두었다가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걷는 것은 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쳐 쓰러진 채로 자신을 방치하는 대신 진정한 휴식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책에서 하정우는 걷고 싶을 때면 하와이를 간다고 했다. 나도 휴식을 위한 에너지를 좀 남겨 놓고, 하와이에서 걸어볼까? [사진 pxhere]

걷는 것은 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쳐 쓰러진 채로 자신을 방치하는 대신 진정한 휴식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책에서 하정우는 걷고 싶을 때면 하와이를 간다고 했다. 나도 휴식을 위한 에너지를 좀 남겨 놓고, 하와이에서 걸어볼까? [사진 pxhere]

아마 이 말에 반기를 들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지 않나? 『걷는 사람, 하정우』는 하루 5000보에서 6000보로, 1만보에서 5만보로, 5만보에서 10만보까지 도전하고 걷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걷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철학과 사색이 한발 한발 깃들어 있고, 몸과 정신이 어떻게 조응하는가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다. 그는 팀원들과도 걸으면서 회의하고, 걸으면서 놀고, 걸으면서 사색한다.

나는 출근을 할 때도 이 책을 챙겨가고, 여행을 갈 때도 이 책을 넣었나 확인했다. 걷기책이 많지만 이만큼 재미있게 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걷는 장소로 그가 사랑하는 ‘하와이’를 소개할 때는 가보지도 않은 하와이가 눈앞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와이가 가고 싶어서 무리한 일정으로 하와이에 도착해서는 너무 지쳐 걷지도 못하고 방에서 끙끙 앓는 모습을 보면서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피곤 아이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가 결심했다. 휴식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 놓고 일할 것. 일상에서 걷기를 저축할 것. 방에서도 걸을 것. 누가 TV를 앉아서 보냐? 그리고 내가 간다 하와이!

한순 시인·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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