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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끝? 인생이 40년이나 남았다는 걸 잊었나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10)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은행은 철밥통 직장이었다. 입행하는 것만으로 온 가족의 경사였고, 지점장을 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은행의 영광의 순간을 지내온 이들도 변화한 세월 앞에서는 어찌할 바가 없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러스트 강경남]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은행은 철밥통 직장이었다. 입행하는 것만으로 온 가족의 경사였고, 지점장을 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은행의 영광의 순간을 지내온 이들도 변화한 세월 앞에서는 어찌할 바가 없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러스트 강경남]

“남의 일이었지요!” 1980년대 은행에 자랑스럽게 입행했던 사람들이 명퇴를 맞이하고 있다. 그들이 은행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는 격동의 시대 그 자체였다. 민주화라는 역사적 대변화의 물결 속으로 넥타이 부대들과 함께 앞장서 걸어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은행은 평생직장이었다. 은행은 정년퇴직까지 다닐 수 있는, 자타가 인정하는 인생직장이었다. 게다가 은행원은 그 위상이 실로 대단했다. 행원에서 대리직함은 엄청난 권한이었다. 지점에서는 지점장의 결재 권한을 대행하는 자리였다. 대리 결제가 없으면 일이 되지 않았다. 거래처에서도 은행 대리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빽’이었다.

은행 지점장은 가문의 영광

하물며 지점의 최고 수장인 지점장은 더했다. 지점장은 그 지점의 은행장 같은 권한이 부여됐다. 기사와 차가 주어지는 것은 물론 직원 인사권, 대출 권한까지 주어졌다. 그래서 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임원, 나아가서 기업 오너까지도 지점장을 만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당시 지점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은행 지점장이 되는 것만으로도 은행원으로서 최고의 경력이었다.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외국계 금융기관이 소비자 금융사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일명 글로벌 금융기법, 선진 금융 기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규모 지점은 꼭 출장소 같았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국가 경제도 더욱 발전했다. 1인당 개인소득이 1만 달러 시대를 지나 2만달러 시대로 뛰어오르면서 선진국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다 1997년 온 나라가 뒤흔들리는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를 맞았다. 국가부도라고 했다. 생전 듣지도 못한 ‘모라토리엄’이라는 단어가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다.

자욱한 담배연기에 은행원의 시름이 묻어난다. 1998년 한 은행 직원이 명예퇴직 실시 통보서를 받고 고민 중이다. 그만둘 것인가, 그래도 버텨 볼 것인가를 놓고. [중앙포토]

자욱한 담배연기에 은행원의 시름이 묻어난다. 1998년 한 은행 직원이 명예퇴직 실시 통보서를 받고 고민 중이다. 그만둘 것인가, 그래도 버텨 볼 것인가를 놓고. [중앙포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잘나가던 대기업이 하나둘 쓰러졌다. 대마불사가 무색했다.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믿었던 일부 은행들 주식이 휴짓조각보다 못하게 내동댕이쳐졌다. 잘나가던 선배들이 직장을 잃었다. 울며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가슴을 쳤다. 해외 투자자본으로 인수 합병된 시중은행은 졸지에 시중은행에서 외국계 은행으로 둔갑했다. 살아남은 은행도 서로 인수 합병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혀갔다.

2000년대 들어 선진금융기법을 대거 수혈받는다. 방카슈랑스도입, 신 BIS(국제결제은행)협약 시행, 금융지주사 도입, 동북아지역 금융허브 정책 등으로 금융 선진국이 된듯했다. 금융기관 전산망도 차세대 전산시스템으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201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모바일 뱅킹이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AI(인공지능)뱅킹으로 투자상품 권유까지 한다. 은행의 실체가 점점 온라인 가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드디어 지점장이 되었건만, 지점 숫자는 더는 은행 위상의 지표가 아니다. 길 건너, 길옆에 있던 지점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지점방문 고객 수도 현저하게 줄었다. 언제 또 지점이 통폐합될지 두렵기만 하다. 새로운 형태의 지점이 탄생한다. 스마트 지점이다. 거기에는 은행원이 안 보인다. IMF 금융위기를 위대하게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명퇴라는 단어가 사라질 줄 알았다. 실상은 그 반대로 전개됐다.

1980년대 꿈만 같았던 개인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왔다. 하지만 그 꿈은 우리에게 여전히 명퇴라는 현실로 다가왔다. 명퇴 뉴스는 매년 단골 메뉴다. 이제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다만 명퇴 조건만이 화제일 뿐이다. 명퇴, 그것은 선배의 일이었다.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바로 나의 일이다. 주판이 계산기였던 시대에서 사람보다 더 능력 있다는 AI 시대 은행으로 바뀌는 이 시점에 현실로 다가왔다.

퇴직이다. 현실이다. 숨 가쁘게 지나온 30년, 금융 대변천사를 함께 해온 세월이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여정이었고 매 순간 순간이 보석 같은 경험이었다. 그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또 열심히 살아온 훈장이다. 명예로운 퇴직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부른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명퇴는 끝 아닌 새로운 출발

회사에서 퇴직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 100년을 살 것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명퇴를 해도 60세가 안 되니, 남은 인생이 40년이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새롭게 출발하기에 전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회사에서 퇴직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 100년을 살 것을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명퇴를 해도 60세가 안 되니, 남은 인생이 40년이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새롭게 출발하기에 전혀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100세 시대, 지난 30년 넘는 직장생활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직장생활 하면서 미리 준비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저 남의 일이었기에 무작정 닥치고 만다. 직장인, 특히 금융권 출신은 대부분 기술직이 아닌 일반직이다. 별다른 기술이 없다. 많은 퇴직자가 그래서 더욱 미래를 많이 걱정한다. 미래는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오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날이다. 과거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을 위한 반면교사다.

이제 과거 나의 모습은 지우자. 향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 보자. 남의 눈도 잊자. 비교도 하지 말자. 생각만큼 남들이 나를 생각 안 한다. 나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자.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하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자. 욕심내지 말자. 서두르지도 말자. 배우면서 차근차근히 해나가자. 지금부터 평생직장을 얻는 것이다.

지방 대학 강의를 하러 가는 기차에서 어느 어르신을 만났다. 내 나이를 아신 후 본인은 92세라고 하면서 말씀을 이어간다. “아직 환갑도 안됐네. 애기네! 부럽다 부러워. 나도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 내 나이 환갑 때는 다 살았다고 생각했어. 그때 정신차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더라면….”

먼 훗날 또다시 ‘남의 일인 줄 알았어요’ 할 것인가. 100세 시대, 50대 60대는 아직도 청춘이고 시작하기 좋은 나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고 한다. 지나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그 황금 시간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강명주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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