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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후 새 증거 나와도 상고 이유 안된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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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18)

작년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가족들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상고는 권리구제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작년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및 가족들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상고는 권리구제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이다. 대법원보다 상급 법원은 없기 때문에 이곳은 분쟁 해결에 관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을 수긍하기 어려운 경우 이에 불복해 제기하는 것을 상고라고 한다. 이번 글에서는 권리구제의 마지막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상고에 대해 알아본다.

우선 상고 제기 기간이나 방식은 항소와 동일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민사소송의 경우 항소심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7일 이내에 상고장이라는 서류를 원심법원, 즉 항소심 판결을 선고한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항소심 후 20일 이내 상고이유서 제출해야

항소와 마찬가지로 상고하는 경우 역시 우선 상고장을 먼저 제출하고, 추후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해도 된다. 하지만 이때 주의할 사항이 있다. 상고장이 제출된 경우에는 원심법원에서 상고법원인 대법원에 소송기록을 송부하는데, 상고법원에서 소송기록을 접수했다는 통지를 당사자에게 하게 된다.

그런데 상고이유서는 위와 같은 소송기록 접수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 만일 20일 이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상고가 기각되므로 위 기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판단도 받아 보지 못하고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상고이유서 제출 기간을 지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상고이유서 작성에 앞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상고심은 법률심(法律審)이자 사후심(事後審)이라는 점이다. 법률심이란 원심판결의 당부를 법률적인 측면에서만 심사한다는 의미이고, 사후심이란, 항소심까지의 소송자료만을 기초로 하여 항소심 판결 선고를 기준으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상고심은 법률심이자 사후심이기 때문에 항소심까지의 소송자료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상고 이유에 의해 불복신청한 한도 내에서만 조사·판단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상고심은 법률심이자 사후심이기 때문에 항소심까지의 소송자료만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상고 이유에 의해 불복신청한 한도 내에서만 조사·판단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이러한 특성 때문에 상고심에서는 원칙적으로 새로운 증거조사를 할 수 없을뿐더러 항소심 판결 후에 나타난 사실이나 증거가 상고이유서 등에 첨부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사소송법에서는 ‘상고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드는 때에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형사소송법에서는 위와 같은 법령위반 외에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재심청구의 사유가 있는 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도 상고이유로 규정돼 있다.

형사사건에서는 유무죄뿐만 아니라 양형 역시 피고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다. 따라서 사실오인이나 양형부당을 이유로도 상고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으로 제한된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에 대한 양형부당의 상고이유는 부적법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우 사실심인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양형 조건이 되는 범행의 동기 및 수법이나 범행 전후의 정황 등에 관해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하였음을 들어 상고이유로 삼을 수도 없다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결국 상고이유는 법령위반을 중심으로 작성해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판결이 헌법과 법률 등의 법령 그 자체를 위반한 경우와 법령 해석을 잘못한 경우, 법령을 잘못 적용한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법령은 반드시 법전에 명시되어 있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법, 경험법칙도 포함되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상고이유에서는 판결이 법령 그 자체를 위반한 경우, 법령 해석을 잘못한 경우, 법령을 잘못 적용한 경우 등을 적는다. [중앙포토]

상고이유에서는 판결이 법령 그 자체를 위반한 경우, 법령 해석을 잘못한 경우, 법령을 잘못 적용한 경우 등을 적는다. [중앙포토]

실무에서는 보통 법령위반, 법리오해, 채증법칙위반, 심리미진, 판단유탈 등으로 나누어 상고이유를 기재한다. 중형이 선고된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사실오인이나 양형부당을 추가해 기재한다. 특히 어떤 쟁점과 관련해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는) 사실인정의 문제인지, 아니면 (적법한 상고이유로 인정되는) 법률문제인지 모호한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법리오해나 채증법칙위반과 같은 법률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고법원은 상고 이유에 의해 불복신청한 한도 내에서만 조사·판단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상고이유서에는 상고이유를 특정해 원심판결의 어떤 점이 법령에 어떻게 위반되었는지를 구체적이고도 명시적인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상고인이 제출한 상고이유서에 위와 같은 상고이유로 단순히 원심판결에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의 위배가 있었다고만 기재했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어느 증거에 관한 조치가 채증법칙을 위반했다는 것인지, 또 어떠한 법령적용의 잘못이 있고 어떠한 점이 부당하다는 것인지 전혀 구체적 사유를 주장하지 않은 것이어서 적법한 상고이유가 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본안 사건 76%,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

이처럼 상고심은 사후심, 법률심이라는 특성 때문에 당사자가 제출한 상고이유서 등의 서류만 가지고 사건을 심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형사 사건을 제외한 민사·가사·행정 사건의 경우 대법원의 심리절차는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특례가 인정된다. 이 특례에 따르면 당사자가 주장하는 상고이유가 법률이 정한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때는 더 나아가 심리하지 않고 판결로 상고를 기각하고 그 판결에는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

2018년 대법원에서 처리한 본안 사건 중 76.7%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종결되었다고 하니 제대로 된 심리라도 받아 보기 위해서는 상고이유서를 잘 작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상 상고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사실 상고를 한다는 것은 오랜 기간 소송에 매달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 당사자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 것이다. 좋은 결과를 통해 조금이나마 손해와 상처가 회복되길 바란다.

정세형 큐렉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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