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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먼로·노무현…인물 259명 부고 기사가 책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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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호 20면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
윌리엄 맥도널드 엮음
윤서연·맹윤경·유세비·오예지
김민지·이한아·김한슬 옮김
인간희극

뉴욕타임스 259건 묶어 출간 #마르크스 부고 2페이지 안 되고 #제임스 딘 기사는 133단어 뿐 #“이승만 민주주의 실현 힘 써” #“김일성 핵프로그램 동결 입장”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고 했다. 역사적 인간은 우선 부고(訃告) 기사로 역사 속에서 데뷔한다.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은 1851년 9월 18일 창간호부터 게재된 뉴욕타임스(NYT)의 부고 기사를 엄선한 책이다. NYT 부고란은 서평란 등과 함께 정평이 높다. NYT의 ‘콧대’다. 2016년에는 NYT 부고란 기자들의 일상과 업무를 다룬 ‘오빗(Obit)’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NYT 부고란 에디터인 윌리엄 맥도널드가 편집한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은 오늘의 세계를 만든 정치·경제·문학·학문·예술 등 각 분야 지도자 259명의 부고를 수록했다. 그중 여성은 23명이다.

NYT 부고란은 2018년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가 간과했던 사람들(Overlooked)’이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NYT 부고란이 ‘죽은 백인 남자(dead white men)’에 편향됐다는 반성에서 기획된 연재다. 이 연재물은 주로 여성과 ‘백인이 아닌 남자’를 소개한다. 백인 남자일지라도 사망 당시 무시됐던 인물도 재조명한다. 『제인 에어』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샬럿 브론테(1816~1855)의 부고도 별세 163년 만에 게재됐다.

신문이 오면 ‘오늘의 운세’부터 펼쳐보는 독자가 있고 부고란으로 직행하는 독자가 있다. 부고 기사는 영감을 주는 매력 있는 읽을거리다. 부고는 요약한 위인들의 전기(傳記)다.

메릴린 먼로가 1954년 내한 공연을 하고 있다. 먼로는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에 소개된 23명의 여성 중 하나다. [사진 미국 국방부]

메릴린 먼로가 1954년 내한 공연을 하고 있다. 먼로는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에 소개된 23명의 여성 중 하나다. [사진 미국 국방부]

이번 한글판에는 NYT에 실렸던 이승만·박정희·김일성·노무현·김대중·김정일의 부고를 수록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고 제목은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이승만, 망명 중 별세/하야했던 이 전 대통령의 시신은 서울로 옮겨져 안치될 예정”이다. 다음 두 대목이 흥미롭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실용주의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 “수많은 한국 국민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해 깊은 적개심을 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책들은 독립 이후에도 양국의 관계개선에 악영향을 끼쳤다.”

미국을 대표하는 좌파·진보 매체인 NYT가 보기에 이승만은 독재자이기 이전에 민주주의자였다. 또 이승만은 비록 친일파의 두목처럼 인식되지만, NYT가 보기에 그야말로 한국 반일 민족주의의 원천이었다.

김일성 부고에서는 다음 문장이 눈길을 끈다. “김일성은 미국이 경제적, 외교적 특혜를 제공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이 현 상황을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면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오늘의 한미 관계, 남북 관계에도 시사점이 많은 문장이다. 김일성 부고는 “지난 금요일 김일성이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로 시작한다. 다른 대부분 NYT 부고 기사와 달리 사인(死因)이 나와 있지 않다.

이 책에는 로댕·맥아더·비스마르크·빅토리아여왕·처칠·피카소·히틀러 등 우리가 초·중·고 학교에서 알게 된 많은 역사적 인물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생소하지만, 미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물도 나온다. 예컨대 P T 바넘(1810~1891)이다. 바넘은 ‘바넘 효과’로 유명하다. 바넘 효과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 또는 심리적 특징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으로 믿으려는 심리적 현상”이다. 현대 미국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그랜마 모제스(1860~1961) 부고는 이렇게 시작한다. “70대 후반의 나이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어 불굴의 노익장을 과시했던 ‘진정한 본연의 미국인’ 그랜마 모제스가 오늘 101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은 생전을 넘어, 생후에도 부침이 있다. 이번 책에서 카를 마르크스 부고는 2페이지도 안 된다. 반면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은 4페이지,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은 5페이지, 마오쩌둥(1893~1976)은 6페이지가 넘는다. 제임스 딘 부고는 영어 기준으로 133단어, 반 페이지도 안 된다. 제임스 딘은 사망 당시에는 아직 전설이 아니었던 것.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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