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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완치한 '희망의 힘'…과자 회사 CEO의 새로운 도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48)

1980년대 초중반 백혈병은 불치병이었다. 친구 중 몇 명이 오랜 시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기억이 난다. 아이건 어른이건 TV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은 상당수가 백혈병이었다.

의료기술 발달 덕분에 한동안 백혈병 치료가 쉬워진 줄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백혈병보다는 혈액암, 소아암 등으로 불리고 있을 뿐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다. 그나마 실제로 의료기술의 발달과 신약 개발 덕분에 불치병보다는 난치병으로 통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당사자나 가족은 불치병이든 난치병이든 괴로운 것은 똑같겠지만, 희망의 차이는 클 테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백혈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이겨낸 이재혁(44) 진협제과 대표를 소개받았다. 과거 그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서 운영하는 사업을 통해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다는 그의 희망 스토리를 소개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이겨 낸 경험으로 인생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도전과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이재혁 진협제과 대표. [사진 이재혁]

죽음의 문턱에서 이겨 낸 경험으로 인생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도전과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이재혁 진협제과 대표. [사진 이재혁]

백혈병은 언제 발병했나
초등학교 5학년 말에 우연히 발견했어요. 피곤하고 몸이 안 좋아 어머니께 말했더니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 피 검사를 받게 했어요. 한창 클 때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잖아요. 저도 지금 아이를 키우는데 같은 상황이었다면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겠나 싶어요. 운이 좋았죠. 검사 결과를 본 의사가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고. 그날부터 학교에 못 갔지요.
많이 놀랐을 텐데 투병생활 얼마나 했나
어린 마음에 학교에 안 가니까 처음에는 좋았죠(웃음). 처음 1년은 병원에서 보냈고요, 2년째는 통원치료 받고, 3년 째부터는 학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어요. 중학교 1학년으로 복학해 고등학교 3학년 때 완치판정을 받았으니까 8년 정도 투병했네요.
발병 소식을 듣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 덕분에 백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오랜 투병생활을 거쳐 완치할 수 있었다고. [사진 이재혁]

발병 소식을 듣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 덕분에 백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오랜 투병생활을 거쳐 완치할 수 있었다고. [사진 이재혁]

고통스럽거나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면
초기에 많이 힘들었어요. 약물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치될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끝에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잠을 자는데, 그냥 저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는 저 세상에 갔다 온 것 같기도 하고요. 그때 한순간이라도 ‘끝이구나’ 생각했으면 그냥 그대로 정말 ‘끝’이었을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그 순간 ‘놓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인터뷰 전에는 백혈병이 많이 극복된 병인 줄 알았다
혈액암, 소아암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를 통해 소아암 환자들에게 경험담을 들려주며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 완치 판정받아 정상생활을 하면서 사업도 적극적으로 펴고 있는 나를 슈퍼맨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큰 보람이죠.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병생활을 통해 얻은 삶의 교훈, 철학이 있다면
10대 이후 내 삶은 말 그대로 여생이죠. 다시 한번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오랜 투병생활이 가르쳐 준 선물 같은 깨달음, 바로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과 일 모두를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자는 것입니다.
회사명 ‘진협제과’를 소개해 달라
회사 이름은 35년 전에 부친이 창업하며 지은 거예요. ‘진심을 담은 올바른 화합’이라는 뜻인데 평생 받은 가르침이니까 무관한 것도 아니죠.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을 맡았는데 내 인생처럼 도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35년이나 된 회사라는데 이름이 생소하다.
인쇄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케이크 위에 장식하는 식용 데코레이션 카드를 생산해 유명 제과 기업에 납품하면서 ‘진협제과’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장미꽃 등 장식물 납품으로 범위를 넓히고, 나중에는 전병을 굽는 기술을 개발해 납품하기도 했어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 제과점에 거의 우리 제품이 들어갔죠.
경영을 맡게 된 계기는
나는 공대를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형이 아버지와 함께 경영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았어요. 2000년대 중반 3년 동안 동경제과학교 유학을 다녀온 후 경영에 본격 참여했고, 지난해부터 혼자 맡으며 납품을 끊고 독자 브랜드로 제조하고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동경제과학교 유학 시절의 이재혁 대표. 이때의 경험과 인연으로 납품만 하던 회사를 독자 브랜드로 제조하고 판매하는 회사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고. [사진 이재혁]

동경제과학교 유학 시절의 이재혁 대표. 이때의 경험과 인연으로 납품만 하던 회사를 독자 브랜드로 제조하고 판매하는 회사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고. [사진 이재혁]

오랫동안 납품만 하다가 중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생각이었나?
어렵기는 해도 당장 매출이 발생하는데 중단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곧 어려워질 것이 뻔한데도 당장 괜찮다고 미룰 수는 없잖아요. 독자적인 브랜드로 제조해 판매하면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겨낸다면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투병 후에 인생을 전체적으로 길게 보는 습관이 생겼는데, 동경제과학교 유학을 통해 제과업계 미래를 보는 시각도 조금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3대째 전병설비 제조를 가업으로 잇고 있는 스승 같은 분을 만난 행운도 있었고요. 현재 ‘우리쌀로 구운 전통전병’과 ‘우리쌀로 구운 쿠키전병’ 두 가지를 구워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50억 원에 달하던 연 매출이 10억 원대로 떨어졌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대로 갔더라면 5년 버티기 힘들었을 겁니다.

진협제과의 대표상품. ‘우리 쌀로 구운 쿠키전병’(좌)과 ‘우리 쌀로 구운 전통전병’(우). [사진 진협제과]

진협제과의 대표상품. ‘우리 쌀로 구운 쿠키전병’(좌)과 ‘우리 쌀로 구운 전통전병’(우). [사진 진협제과]

앞으로 계획은
진협제과의 이름으로 만들고 판매한 두 가지 전병이 맛과 품질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곧 세 번째 신상품도 출시되고요. 현재는 온라인 판매만 하고 있는데 매장 판매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사업도 사업이지만 소아암 등 어려운 상황에 놓인 환우를 위한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요. ‘살 수 있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다’ 등의 희망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경험해 봤기 때문에 잘 압니다.

이 대표의 개인적인 투병 경험과 회사의 변신 얘기를 들으면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백혈병 등 소아암에서 완치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대기업에 납품만 하다가 중단하고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탈바꿈에 성공한 중소기업 또한 매우 드물다.

그 덕분인지 이 대표는 어려움에 맞서 이겨내는 자신만의 자세를 가진 것이 느껴졌다. 더구나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호들갑스럽게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흐름을 타는 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소아암협회에 봉사를 나가고 공장을 확장해 나가는 그의 소소한 스토리가 많은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주는 이유다.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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