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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 앞바다 플라스틱 오염, 흔하던 전복 이젠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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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제주 차귀도 바닷속에서 각종 쓰레기를 건져올린 문섬 47 회원들. 천권필 기자

제주 차귀도 바닷속에서 각종 쓰레기를 건져올린 문섬 47 회원들. 천권필 기자

“20년 전만 해도 바닷속에서 15m 앞까지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했는데 이제는 부유물질 때문에 5m 앞도 잘 안 보여요.”

지난달 10일 제주 차귀도 바닷속에서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온 김병일(61) 씨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서귀포에서 다이빙 숍을 운영하는 김 씨는 이날 ‘문섬 47’ 회원 8명과 함께 이곳에서 정화 활동을 벌여 200㎏이 넘는 쓰레기를 건져 올렸다.

청정 제주 사라진다<하> #바다청소부 나선 제주 다이버들 #“물고기 훔치는 도둑으로 착각한 #해녀·어민들에게 쫓겨나기도”

문섬 47은 제주 바닷속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제주 다이버들의 모임이다. 회장을 맡은 김 씨는 제주에서 다이빙한 경력만 1만 번에 이를 정도로 누구보다 제주 바닷속을 잘 아는 다이버다. 대구가 고향인 그는 제주 바다에 푹 빠져 1991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

“도둑 취급받고 쫓겨난 적도”

다이빙을 앞두고 문섬 47 회원들에게 쓰레기 정화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김병일씨. 천권필 기자

다이빙을 앞두고 문섬 47 회원들에게 쓰레기 정화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김병일씨. 천권필 기자

김씨가 문섬 47을 조직한 건 2015년이다. 그는 “5년 전부터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오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며 “다이버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썼는데 후배 다이버가 많이 동참해 줬다”고 말했다.

문섬 47 회원인 22명의 다이버는 유명 다이빙 포인트인 문섬과 범섬, 숲섬에서부터 가파도에 이르기까지 제주 바다 곳곳을 다니면서 쓰레기를 수거해왔다. 문섬 47이란 이름은 문섬 인근 47m 수심에 있던 커다란 해송(산호의 일종)을 생각해 지었다.

제주 바다를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모인 이들이지만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김 씨는 “제주도에서는 다이버라고 하면 전복이나 물고기를 훔치는 도둑으로만 알고 있다”며 “쓰레기를 치우려고 왔다가 해녀나 어민들에게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바다는 한 번 망가지면 돌이킬 수 없어” 

그가 지금까지 본 제주 바닷속 쓰레기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제주 인구와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게 바다”라면서 “자동차 분진이라든지 축산폐수, 플라스틱 쓰레기 등 모든 게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방폭포 앞바다에 들어가 보니 오래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반쯤 녹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미세플라스틱이 돼서 물고기 등의 먹이가 된다”며 “20년 전만 해도 흔했던 전복, 다금바리는 거의 보이지 않고, 폐어구에 걸려 죽어가는 거북이를 본 적도 있다”라고도 했다.

김 씨는 “바다는 한번 망가지면 복원에 최소한 수십 년이 걸릴 정도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며 “청정 제주 바다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바닷속 쓰레기를 계속 치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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