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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靑, '日에 새 협상안 제시' 부인하지만…"실제 검토됐던 내용"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는 11일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협상안’을 일본에 제안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말했다.

김성주 일제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김성주 일제강제징용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및 근로정신대 피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날 한 언론에 보도된 새 협상안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한국 기업과 일본이 기금을 마련하고 부족분을 한국 정부가 충당한다는 내용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대법원에서 승소한 보상액에 대해서는 한·일 기업이 책임을 지되, 향후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 판결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는 구조다. 이른바 ‘1+1+α’ 안이다.

현재 강제징용 관련 소송은 모두 15건이다.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것은 3건의 37명이고, 진행 중인 소송은 모두 12건으로 원고는 940명에 달한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러한 관측에 대해 “일본에 관련 협상안을 제시한 바 없다.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제외하고 한·일 기업과 한국 정부가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은 지난해 연말 실제로 검토됐던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운데)와 유가족들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운데)와 유가족들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인 11월말 배상금 문제에 대한 협상안을 만들기 위한 당·정·청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일부 시민단체와 피해자단체 관계자도 참석했다. 회의에 관여했던 여권의 한 인사는 이날 “일본 정부를 제외한 3자가 배상에 책임을 지는 안은 사실 피해자 단체에서 현실성을 감안해 주장했던 안”이라며 “당시 회의에서 관련 사안이 논의돼 구체적인 기금 마련 방안까지 검토됐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어 “당시 관련 사안이 국무총리실에서 사실상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이관됐는데, 협상안 마련 과정에서 안보실 고위인사가 직접 방대한 분량의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마련된 안에 따르면 배상기금 마련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은 1965년 한·일 협정 때 일본이 제공한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차관 2억 달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옛 포항제철(포스코) 등 16개 공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현재 대부분 민영화가 이뤄진 상태로 ‘일본 자금’을 통해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금 규모가 18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월 18일 일본의 '나고야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소속 일본인 활동가들이 일본 도쿄(東京) 마루노우치(丸ノ內)에 위치한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본사 앞에서 이 회사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8일 일본의 '나고야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소속 일본인 활동가들이 일본 도쿄(東京) 마루노우치(丸ノ內)에 위치한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본사 앞에서 이 회사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기업의 참여 의사를 타진하는 과정에는 한일의원연맹에서 활동하는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일파(知日派)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강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18조원에 달하는 수익금 중 극히 일부를 사용해 재단을 만들어도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해당 안은 결국은 채택되지 않았고, 일본에도 직접 전달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중심이 돼 책임지는 ‘통 큰’ 제안을 실제로 했다면 한국이 명분 싸움에서 완전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당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당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의원총회에서 강창일 의원이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자 손가락으로 엑스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의원총회에서 강창일 의원이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자 손가락으로 엑스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정부는 지난 6월 19일 일본 측에 ‘한·일 기업이 위자료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협상안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가 이미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안이었다.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달 들어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장기전 태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당시 안이 일본 측에 공식 전달됐을 가능성은 낮다. 강 의원은 “사실상 전쟁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는 와중에 백기투항에 가까운 안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라며 “특히 한·일 양국의 물밑협상에서 마지막 카드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 공개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눈 뒤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인사를 나눈 뒤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만 청와대에선 “일본에 새로운 협상안이 전달됐다는 것은 물론이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협상안 역시 검토되거나 채택된 적이 없다”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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