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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에게 전화해도 싫다더라"…장관 하래도 마다하는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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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9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사이에 오간 대화다.

▶박지원=“‘회전문 인사’만 하려고 하지 마세요. 대탕평 인사를 꼭 건의하셔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낙연=“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양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청문회에 임하기 싫다는 분들이….”
▶박지원=“청문회 하지 말까요?”
▶이낙연=“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이 총리의 발언에는 인물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청와대의 고민이 담겨 있다. 특히 이달 중순, 늦어도 다음 달 초순 이뤄질 개각의 폭이 작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재 영입난은 더욱 크다. 이 총리는 이날 개각 규모와 관련해 “선거에 출마할 분들은 선거 준비를 하도록 보내드리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4명의 장관은 바뀐다는 의미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진선미 여성가족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총선 출마 대상이다.

여기에 강원도 출신인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장관급)을 출마시켜 여당의 약세 지역인 ‘강원 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 정부 원년 멤버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교체 대상으로 꼽힌다. 최근 북한 목선의 입항 사태 논란을 일으킨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경질성 교체설까지 나온다. 공석인 공정거래위원장도 새로 임명해야 한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등 일부 증인이 불참, 좌석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등 일부 증인이 불참, 좌석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청와대의 부름에 다들 손사래를 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개각과 청와대 개편까지 염두에 두고 다양한 인사를 접촉하고 있다”며 “그런데 대부분 ‘총선 이후에 보자’며 고사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사청문회 부담 때문이다.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전 국민에게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일거수일투족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낙마할 경우 향후 행보도 꼬일 수 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 부담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지난 4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노 실장은 “장관 인사검증을 제안하면 대개 ‘나는 장관 말고 (인사청문 대상이 아닌) 차관 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인재 풀(Pool)이 협소해진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걱정이다.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만약 고용노동부 장관을 뽑는다고 하면 한국에서 노동 분야 전문가가 빤하지 않으냐. 그래서 장관 해달라고 전화를 하면 ‘에이스’들은 인사청문회에서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으니 다 거절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2017년 청와대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뽑으려는데 다들 고사하다 보니 30명 이상한테 연락했다고 한다. 그렇게 구한 박성진 후보자가 종교 문제 때문에 낙마하는 모습을 보고 청와대가 허탈해했다”고 말했다.

2006년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현 민주평화당 의원)가 재산증식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6년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현 민주평화당 의원)가 재산증식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엄격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인사청문회 도입 초기인 2006년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인사청문회를 경험했던 장병완 민주평화당 의원은 “요즘 인사청문회는 과거보다 훨씬 더 신상털기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같은 방식으로는 일류 장관을 뽑을 수가 없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흠칫 내기’에 탈탈 털린 상태에서 장관으로서 힘이 실리겠느냐”고 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우리 입장에서 좀 가혹하다 싶은 점은 도덕성 잣대가 이전 정부보다 좀 높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냉소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게 당시 야당이자 현 여당이란 것이다. ‘공직 배제 5대 원칙’(병역 비리·위장전입·논문 표절·부동산 투기·세금 탈루)을 내세우다 후퇴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정치권 내에선 그러나 여야 모두에서 인사청문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긴 한다. 지금대로면 능력보다는 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보고 발탁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한다. 미국처럼 도덕성과 사생활 검증은 비공개로 진행하고 정책검증은 공개로 진행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원내대표를 지낸 장병완 의원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인사청문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주요 의제에서 밀리다 보니 논의가 안 됐다”고 전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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