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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무능 한국당의 오산과 착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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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안 풀리는 건 죄다 과거 정권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재인 정권은 행운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대통령 탄핵과 집권당 붕괴로 등장했다. 모든 게 마땅치 않았던 전 정권과 비교하면 평균만 해도 잘하는 걸로 둔갑한다. 똑같은 논리로 폭주 집권당에 맞서는 야당도 그렇다. 어지간하면 민심이 응원한다. 하지만 몇 년째 야당 연습 중인 한국당은 도무지 웬만하질 않다. 여권 핵심들까지 “집권 4년 차 같다”고 혀를 차는 판인데 뜨질 못한다.

버티면 이긴다고 그냥 엎드린 야당 #사람, 리더십, 나태 체질 안 바꾸면 #3연패 쓰나미 4연패로 덮칠 뿐이다

사실은 그 정도도 아니다. 유권자 세 사람 중 두 명이 한국당에 비호감을 느낀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덕분에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두 배로 벌어졌다. 경제와 안보가 쌍끌이 위기다. 정권은 좌편향 독주를 넘어 폭주에 불통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싫지만 한국당은 더 싫어요’란 말이 많고 여권은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야당 복은 있다’며 깔깔댄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과거에만 매달리는 집권당이라고 비난하지만 한국당이야말로 과거로만 과거로만 달리기 때문이다.

속도감 있게 커지는 친박과 비박의 집안 싸움 파열음이 우선 그렇다. 보수대통합 없이 지금의 야권이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사기다. 그런데도 탄핵 반대당과 찬성당으로 갈려 으르렁대더니 이젠 숫제 친박당으로 가른단다. 남은 쪽은 또 자기들끼리 삿대질이다. 이유가 한심한데 몇 개 안되는 감투를 놓고 치고받는 난투극이다. 권력에게 그렇게 치열하게 따지고 맞서는 투사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바지 내리고 엉덩이 춤이나 춘다.

야당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면 조롱하고 무시 만할 게 아니라 민주당을 배워야 한다. 야당 민주당에도 물과 기름이었던 친노·비노 내분과 바닥 모를 무기력증이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두려움 없이 파고들었다. 안철수 세력을 끌어들여 야권을 통합했다. 이해찬 의원 등의 공천 배제로 친노, 운동권 이미지를 탈색하고 선거에 나섰다. 지금 한국당은 정반대다. 그러면서도 자기들끼리는 ‘경제가 어려우니 사고만 안치면 내년 총선은 무조건 이긴다’는 필승론으로 얼굴이 밝다.

툭하면 새 피를 발굴하겠다는 데, 진짜 그럴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물러날 사람이 자리를 비켜줄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다. 게다가 영입 대상으로 기껏 거론한 인사는 스포츠 스타 박찬호 씨, 외과전문의 이국종 교수 같은 사람들이다. 한심한 발상이다. 물론 바둑이건 벤처건 누구든지 자기 분야에서 ‘뜨기만 하면’ 여의도로 향하는 건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들 전설급 영웅들이 한국 정치에서 존재감을 보이거나 정치를 바꿨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당사자들은 손사래를 쳤다. 당이 본인 의사도 묻지 않고 무작정 이름을 내놨다는 것이다.

성공했다는 50~60대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한국당 의원들은 대체로 기존 문법을 따르는 데 익숙한 초식남들이다. 가치 지향적 선택이나 행동은 적고 말 잘 듣고 줄 잘 서는 상황 순응형이 일반적이다. 국회의원을 대충 벼슬길에 출세길로 보기 때문인데, 지역 구도에 기대 대대로 따뜻한 아랫목이나 차지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얄미운 문화와 구조, 웰빙 체질을 바꾸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바뀐 건 모래 속에 머리나 처박는 타조 정신이 일반화됐다는 거다.

지금 야당은 여당 할 때 공천 싸움에 진박 타령으로 망했고, 교육감 선거에선 단일화 못해서 몰락했다. 과거 야당인 오늘의 여당은 공천 잘하고 단일화해서 승기를 잡았다. 그런데도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까지 내리 3연패(敗)한 정당의 다음 총선 전략이 오로지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는 거다. 죽을 쑨 정권이 어찌어찌 생명을 연장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자중지란의 ‘정권에 고마운 야당’이 선거에 이긴 경우는 못 봤다. 시늉뿐인 야당 연습에 재미 붙이면 야당 노릇 벗어나기 힘들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