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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친박들의 도 넘은 ‘황교안 패싱’ 극복이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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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친박 독주’에 흔들리는 자유한국당, 황교안의 대응은 

여의도 연구원장을 맡은 김세연 의원(가운데)과 환담 중인 황교안 대표(왼쪽). 황 대표는 친박계가 김 의원의 연구원장 사퇴를 유도하자 박맹우 사무총장과 논의 끝에 ‘없던 일’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은 친박 중진 유기준 의원. [뉴시스]

여의도 연구원장을 맡은 김세연 의원(가운데)과 환담 중인 황교안 대표(왼쪽). 황 대표는 친박계가 김 의원의 연구원장 사퇴를 유도하자 박맹우 사무총장과 논의 끝에 ‘없던 일’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쪽은 친박 중진 유기준 의원. [뉴시스]

“연구원장직에 전념해야 하니 보건복지위원장은 맡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친비박 갈등 격화로 딜레마 봉착 #지지율 정체 속 비박과 소통 시도 #친박 ‘김세연 축출작전’은 막아 #‘박근혜 프레임’ 극복이 급선무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맡아온 가운데 국회 복지위원장에 선임된 비박계 소장파 김세연 의원은 황교안 대표의 호출을 받고 대표실을 찾았다가 황 대표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김 의원은 “3선 의원 보고 상임위원장을 맡지 말라는 건 총선 앞두고 바보 만드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황 대표는 “알겠다”며 물러섰다.

그런데 닷새 뒤인 7일, 김세연은 당 사무총장에 막 취임한 친박계 박맹우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 박맹우는 “맡은 두 자리 다 중책이라 겸직하기 어려울 거란 얘기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온다”고 했다. 여의도연구원장 직을 그만두란 뜻임을 알아챈 김세연은 “황 대표 뜻이냐? 대표는 며칠 전 내게 두 자리 다 잘하라고 했다”고 따졌다. 그러자 박맹우는 “황 대표랑 상의 안 했다. 사람이 좋아 그런 얘기 딱 부러지게 할 분이 아니다”고 했다. 격분한 김세연은 “대표가 지명하고 2년 임기가 보장된 자리를 이유도 없이 나가라니 용납 못 한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맹우는 “그래도 (사임하라는) 의견이 많아 그 분위기를 전달해야 할 것 같아 얘기하는 것”이라는 말을 4~5번 반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틀 뒤인 9일, 언론에 ‘친박계, 김세연에 연구원장 사퇴 압박’ 설이 보도되면서 당은 난리가 났다. 비박계는 “연구원장은 내년 총선에 공천 기준이 되는 여론조사를 주관하는 핵심 요직인 데다 비박계에 주어진 유일한 당직이다. 친박이 이 자리를 빼앗겠다면 내년 공천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 반발했다. 그러자 박맹우는 이날 오후 “김세연이 준비가 많이 돼 있어, 겸직하도록 황 대표와 정리했다”고 물러났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김세연과 대화 내용을 일관성있게 지키기 위해 겸직을 허용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황교안, 실의 빠진 황영철에 위로 전화

비박계 중진은 “친박이 전당대회에서 뽑힌 대표마저 우습게 보고 당직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드러났다. 황 대표가 친박들의 전횡을 방치하면 식물로 전락할 거다. 하긴 대표의 손발인 사무총장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못 정했으니 이런 사달이 난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한선교 사무총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임하자 황 대표는 복당파 비박계 이진복 의원(3선·동래)에 사무총장을 맡아달라고 통보했고, 이진복은 수락했다. 그런데 친박 초·재선들이 모여 ‘복당파는 사무총장 자격 없다’고 입장을 정했고, 친박 중진 의원이 황 대표를 만나 ‘이진복 카드는 절대 수용 못 한다’고 압박했다. 결국 황 대표가 물러서 친박계 박맹우 의원을 사무총장에 앉혔다. 이런 싹쓸이가 없다.”

이에 앞서 친·비박은 지난 5일 비박계 황영철 의원이 맡기로 돼 있던 예산결산 특별위원장 자리를 친박 김재원 의원이 차지하면서 이미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비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은 사실상 김재원 편을 들어준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거세게 항의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는 동료 의원(황영철)을 배려하지는 못할망정 내치는 게 말이 되냐. 대단히 잘못됐다.” 그러나 나경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결위원장은 (황영철 지명 아닌) 경선이 원칙이다”며 맞받아쳤다. 양측의 골은 더 깊어졌다.

황교안을 만나 물어봤다.

계파 갈등이 재연되는 양상이다. 유승민·안철수를 받아들이란 요구도 나온다.
“헌법 가치를 같이 하는 모든 세력이 한국당 깃발 아래 뭉치는 게 바람직하다. (유승민 등) 개개인은 별도로 가치가 맞는지 봐야 한다. 아직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
유승민과 소통은 하나.
“문호를 넓게 개방하고 있다.”
내년 공천은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기는 공천이 되어야 한다. 공정하고, 경제를 살리는 공천을 하겠다.”
당과 대표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다.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로 본다. 지지율이 계속 오를 수는 없다. (5·18 망언 등) 일부 실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확장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단기간에 모든 걸 충족하긴 어렵다. 내 목표는 특정 세력 아닌 모든 국민과 함께하자는 것이다.”
당 중진과 원로들을 만나 조언을 들어왔는데 무슨 얘기가 나왔나.
“강력한 투쟁을 하라고 하더라(웃음). 정책을 구상하고 경청도 하되, 투쟁해 관철하라는 의미로 본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황 대표는 물밑으로는 비박계와의 소통에도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의에 빠져 지역구에 칩거 중이던 황영철에게 6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황교안이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 위로 전화했다. 당 운영과 관련해 여러 가지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황 의원께서 당이 하나로 갈 수 있게 힘이 돼달라”고 했다. 황영철은 “일부러 전화주셔서 고맙다. 분노를 느끼지만, 당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 탈당은 길이 아니라고 판단해 남기로 했다. 말씀 유념하겠다”고 했다. 황영철은 “놀랬다. 이번 파동은 원내 문제라 황 대표는 책임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위로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다. 탕평을 위해 고민하는 게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17주년 기념행사장. 황교안은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황교안이 유승민에게 “(당 대표를 해보니) 힘이 든다”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유승민은 “아니, 우리는 이십몇년이나 (당을) 했는데 (당신은 당을) 조금 했다고 힘들다고 하면 어떡하냐”고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한 의원은 “따뜻하게 받아주는 말이 아니라, 무안 주는 듯한 어투여서 걱정이 됐다”고 했다. 유승민이 황교안에게 품은 ‘불만’이 드러난 듯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황교안은 다시 말을 건넸다. “유 의원께선 내 베스트 프렌드의 베스트 프렌드시다”고 했다. 유승민이 이 말을 받지 않아 대화는 더는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황교안에 따르면, 두 사람이 공유하는 ‘베스트 프렌드’는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7개월간 민정수석으로 근무한 김영한 전 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난 지 1년 만에 간암으로 숨졌다. 그는 황교안(23회 사시 합격)의 검찰 1년 후배로, 공안부 검사를 지내며 황교안과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유승민과 같은 고교(경북고)를 나와 유승민과도 친분이 두텁다. 황교안은 이런 ‘연’을 바탕으로 유승민에게 대화의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한국당에선 황교안이 이학재·김세연·박인숙 의원을 다리로 유승민과 관계를 트는 방안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 의원은 바른정당 시절 유승민을 지지했고, 한국당 복귀도 가장 늦게 해 유승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침묵하는 중도 보수 잡아야

유승민의 측근은 “행사 테이블에서 덕담 건넨 건 나쁘지 않다. 그러나 황 대표는 취임한 이래 유승민에게 전화한 적 한번 없다. 더 가까이 가야 한다”고 했다. “총선에서 수도권은 불과 3% 표차로 승부가 난다. 유승민, 안철수가 유세하면 10%는 더 나온다. 결국 황 대표가 유승민에게 손을 내밀어 수도권에 출마하게 해야 한다.” 요즘 유승민은 ‘대구 전사(戰死)’론을 펴고 있다고 한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를 버리고 수도권에 출마하면 ‘비겁자’ ‘도망자’ 소리를 듣게 된다. 보수통합(합당)이 성사되면 수도권에 출마할 수 있지만, 통합이 안 되면 낙선 위험을 무릅쓰고 대구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이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의 분석이다. "황교안이 대표가 되면서 25%대까지 당 지지율이 올라갔는데 친박계 부활로 ‘박근혜 프레임’ 회귀 양상이 되면서 주저앉았다. 황 대표가 살길은 ‘박근혜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보수층 가운데 친박 비중이 5%라면 비박은 10%가 넘는다. 우리공화당 지지율은 1~2%대에 불과하다. 침묵하는 보수는 따로 있다. 이들을 잡으려면 친박 인사 중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