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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서 사망한 환자 71%, 연명의료 중단 택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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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얼마 전 60대 여성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뇌동맥류(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푸는 질환) 증세를 모르고 있다가 뇌출혈이 생겼다. 응급 뇌수술을 했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았다. 의료진이 뇌파 검사를 했더니 의학적으로 뇌사(腦死)로 판정됐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였다. 이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서류를 남기지 않았고, 평소 생의 마지막 방법에 대해 생각을 피력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의료진의 판단을 받아들여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했고 곧 숨졌다.

최근 1년 존엄사 선택한 809명 #본인 서명 1%→29%로 늘어 #“환자 불필요한 고통 줄여야” #간호사·복지사 설득이 한몫

지난해 2월 연명의료 중단(일명 존엄사)을 도입한 이후 이 환자처럼 인공호흡기를 달았다가 제거하는 경우가 1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은 처음부터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았지만, 호흡기를 단 뒤에 제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종전에는 연명의료를 하던 사람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면 불법이었다. 또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 중단(존엄사) 서류에 서명한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

연명의료 결정 비율

연명의료 결정 비율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허대석 교수팀은 지난해 2월~올해 2월 연명의료결정 서식에 서명한 뒤 사망한 19세 이상의 성인 환자 809명을 조사했다. 이 기간에 서울대병원에서 숨진 성인 환자 1137명 중 809명(71.2%)이 연명의료 중단 서식에 서명했다. 허 교수는 “서울대병원은 간호사·사회복지사를 늘려 말기 암 환자 등이 입원하면 가족과 환자를 설득한다”며 “이 때문에 사망자 중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한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은 대개 30%를 넘지 않는다.

연명의료는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체외생명유지술(에크모)·수혈·혈압상승제 투여 등을 말한다. 임종기에 접어들면 연명의료를 아예 시행하지 않거나(유보), 시행하다가 중단할 수 있다. 현행 법률에는 ▶환자가 서명하거나 ▶가족 2명이 환자 뜻을 확인하거나 ▶환자의 뜻을 모를 때 가족 전원이 서명하면 합법적으로 존엄사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809명 중 관련 서식에 직접 서명한 환자는 29%(231명)이었다. 지난해 2월 이전 시범사업 기간에 직접 서명한 환자가 1%에 불과했는데, 제도 시행 1년 만에 상당히 늘었다. 나머지 71%는 가족이 결정해 아직은 대다수가 가족에 맡겨져 있다.

본인이 연명의료를 결정한 231명 중 유보한 사람이 227명(98.3%)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중단은 4명(1.7%)에 불과했다. 가족이 연명의료를 결정한 578명 중 중단한 사람은 77명(13.3%)이었다. 허 교수는 “1년 새 13%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등의 방법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함으로써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였고, 환자가 직접 서명한 비율이 증가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조사에서 임종 1개월 내 말기 암 환자의 중환자실 이용률이 30.4%로 2012년(19.9%)보다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에는 이용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반대로 갔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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