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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열차사고 탓에 ‘진행’ 신호된 녹색…국제 신호등 3색이 대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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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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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신호등은 경찰관이 교통상황에 따라 수동으로 직접 조작했다.

초기 신호등은 경찰관이 교통상황에 따라 수동으로 직접 조작했다.

빨강은 ‘정지’, 주황은 ‘주의’, 초록은 ‘진행’.

151년 전 런던 거리 첫 신호등 등장 #빨강은 피 연상시켜 ‘정지’ 신호로 #한국 80년대 ‘←’ 넣은 4색등 도입 #8년 전엔 3색등 시범운용했다 실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설치된 교통신호등은 이렇게 3가지 색을 사용합니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빨강이 ‘정지’ 의 의미로 쓰이게 된 건 자극적이면서도 ‘피’를 연상시켜 공포감을 주는 탓에 위험의 신호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또 빨강이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 가운데 가장 파장이 길고 먼 곳에서 뚜렷하게 보인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눈이 색맹인 사람도 빨강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신호등을 대표하는 색으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입니다.

‘주의’ 표시가 주황이 된 건 빨강, 초록 두 색깔과 비교했을 때 가장 대비되는 색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비가 잘 돼야 신호의 구분이 명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유리탑 안에서 밖을 살피며 신호를 조작하는 방식의 3색 신호등.

유리탑 안에서 밖을 살피며 신호를 조작하는 방식의 3색 신호등.

그런데 초록은 좀 유별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에 먼저 신호등을 쓴 운송수단이 있었는데요. 바로 기차입니다. 초창기, 그러니까 19세기 철도의 신호체계는 빨강이 ‘정지’, 초록 ‘주의’, 하얀색이 ‘진행’ 이었다고 하는데요. 별문제 없이 운용되던 이 신호 체계는 한 번의 대형사고로 인해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한 기관사가 깨져있는 빨강 신호를 하얀색으로 착각해 그대로 진행하다가 앞의 기차와 충돌하는 대형사고를 일으킨 겁니다. 이를 계기로 초록이 ‘주의’에서 ‘진행’으로 바뀌고, 새로이 주황이 ‘주의’ 표시가 된 겁니다.

초록이 눈을 편하게 해주는 색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진행 표시가 됐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쓰고 있는 신호등의 색깔이 자리 잡게 된 건데요. 이 같은 자동차 신호등의 역사는 150년이 넘습니다. 세계 최초의 신호등은 1868년 영국 런던에서 등장했는데요. 가스를 사용하는 수동식 신호등으로 적색과 녹색을 표시하며 경찰관이 직접 수동으로 조작했습니다.

최초로 전기를 사용하는 신호등은 1914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설치됐는데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가렛 모건이 개발한 것으로 정지를 나타내는 적색등 하나만 있는 수동식 신호등이었습니다.

신호등은 가로 형태도 있지만, 세로도 많이 사용된다.

신호등은 가로 형태도 있지만, 세로도 많이 사용된다.

1918년에는 미국 뉴욕에 오늘날과 같은 3색 신호등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당시 신호등은 2층 유리탑 속에 설치되어 있었고, 경찰관이 유리탑 속에서 차량 흐름을 보며 적절히 신호를 조작했다고 하네요.

자동으로 일정 주기에 맞춰 신호가 바뀌는 3색 자동신호등은 1928년 영국 햄프턴에 설치된 게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언제 신호등이 첫선을 보였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40년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데요. 요즘 같은 둥근 신호등이 아니라 기둥에서 3색 날개가 번갈아 튀어나오는 기차용 날개식 신호기였습니다.

그러다 광복 이후 미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3색 신호기가 보급되기 시작했는데요. 1980년대 초반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80년대 초 국내에 좌회전 신호를 넣은 4색 신호등이 도입됐다. [중앙포토]

80년대 초 국내에 좌회전 신호를 넣은 4색 신호등이 도입됐다. [중앙포토]

바로 기존 3색 신호에 좌회전용 화살표(←)를 넣은 4색 신호등이 도입된 겁니다. 유영선 도로교통공단 과장은 “우리나라는 도로가 외국에 비해서 넓기 때문에 비보호 좌회전이 어렵고 사고 위험이 높다”며 “이 때문에 별도로 좌회전 신호를 더 넣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4색 신호등은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교통신호의 통일성을 규정하는 비엔나협약(1968년)과 맞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이 협약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65개국 정부 대표단과 국제도로교통연합 등 23개 기구가 참여해서 맺어졌습니다. 차량 신호등은 적색·황색·녹색의 3색으로 하고, 보행 신호는 적색과 녹색의 2색으로 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물론 비엔나협약이 명확하게 국제표준은 아니지만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참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인데요. 게다가 요즘 같은 국제화 시대에 우리 국민이 외국에서 운전하는 경우도 많고, 또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와 운전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에 신호등의 통일은 관심사임이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 경찰청에서 서울 시내에 3색 신호등을 설치해 시범 운용을 시작했는데요. 좌회전 차선에는 빨강·주황·초록 화살표가 나타나는 좌회전용 3색 신호등을, 직진 차선에는 일반적인 3색 신호등을 따로 설치해 각기 신호를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홍보가 부족했던 탓에 운전자들이 혼란을 일으켜 사고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비난 여론이 일었고, 결국 3색 신호등은 모두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경찰에서는 3색 신호등 도입은 거론하지 않고 있는데요. 경찰청 고위 간부도 “상당 기간 3색 신호등 얘기는 꺼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게 3색 신호등이라면 우리도 통일의 필요성을 고려해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무조건 도입 가능성을 배척하기보다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도 서서히 변화를 시도해보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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