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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효율 끌어올리려는 현대차 ‘강수’…조직 싹 뜯어고쳐

중앙일보

입력

미래車 조직으로 개편한 현대차그룹 R&본부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지능형안전연구팀에서 시험 중인 자율주행차. [중앙포토]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지능형안전연구팀에서 시험 중인 자율주행차. [중앙포토]

현대차그룹이 연구개발본부를 완전히 뜯어고친다. 연구개발(R&D)을 강화해서 미래차 트렌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현재 연구개발본부는 5개 담당 체제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설계·전자·차량성능·파워트레인(PT) 담당이 각각 해당 부문 R&D를 책임진다.

하지만 9일 조직 개편으로 현대차그룹은 이 체계를 3개로 통합·분리한다. ▶제품통합개발담당 ▶시스템부문 ▶프로젝트매니지먼트(PM)담당 등이다. ‘부문’은 ‘담당’보다 상위 조직이지만, 3개 부문·담당은 각자 독립적이면서 대등하게 역할을 분담한다.

협업 강화한 조직 구조로 탈바꿈

남양연구소. [사진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 [사진 현대차그룹]

이처럼 조직을 바꾸는 건 “미래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아키텍처 기반 시스템 조직(SBO·System-Based Organization) 체계”라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여기서 아키텍처(architecture)는 차량 개발의 뼈대를 의미한다. 이번 조직 개편의 기준이 차량의 기본 골격이었다는 뜻이다. 제품통합개발담당은 자동차 콘셉트를 선행 개발하고, 시스템부문은 자동차에 탑재되는 주요 개별 기술을 개발하며, PM담당은 차급·브랜드별로 제품(차량)을 최종 완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3개 부문·담당은 협업하기 싫어도 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먼저 제품통합개발담당이 자동차 개발 초기 단계서 전체적인 기본 구조를 마련한다. 특히 제품통합개발담당 산하 차량아키텍처개발센터(신설)는 고객이 선호하는 기술 적용이 가능한 아키텍처 개발을 담당한다.

이렇게 나온 밑그림을 토대로 시스템부문은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주요 핵심 기술을 개발한다. 아키텍처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요 핵심 기술도 개발이 어려워 유기적 협조가 필수다.

현대차그룹 자동차부문 연구개발본부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 [중앙포토]

현대차그룹 자동차부문 연구개발본부 사운드디자인리서치랩. [중앙포토]

차량의 4가지 핵심기술이 시스템 부문 산하에 편제한다. ▶섀시담당(현가·조향·제동) ▶바디담당(차체·내·외장) ▶전자담당 ▶파워트레인담당 등이다. 각각의 담당은 독립적인 조직을 구축해 분야별 기술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 특히 4개 담당 모두 각자 설계·해석·시험부문을 통합한 개발조직을 별도로 구축해 부문별 독립성을 높였다.

핵심 기술을 확보한 다음엔 PM담당이 제품개발을 총괄한다. 시스템 부문에서 개발한 기술을 차급·브랜드별로 최적화하는 업무다.

지금까지 PM담당 산하 조직은 브랜드·차급 개념이 섞여 있었다. 제네시스PM처럼 브랜드를 담당하는 조직도 있고, 레저용차량PM이나, 전기차·고성능차 담당조직도 존재했다. 그러면서 소형·중대형 등 차급 개념으로 구성한 조직이 별도로 있었다. 하지만 9일부터 PM담당 산하 조직은 경형·소형·준중형·중형·대형센터 등 차급별 5개 조직으로 개편한다. 현대차는 “브랜드·차급간 간섭을 방지하고 콘셉트를 구분해 차급별로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화성 남양연구소의 친환경자동차 계측실.[중앙포토]

현대자동차 화성 남양연구소의 친환경자동차 계측실.[중앙포토]

여기서 개발한 차량은 최종 단계에서 다시 제품통합개발담당으로 되돌아온다. 제품통합개발담당 산하 또 다른 조직(차량성능개발센터)이 /종합적인 차량의 성능 조율을 맡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소음·진동·이격음(NVH)·안전·내구성·공기역학 등을 담당한다.

R&D 수장 교체 후 조직 개편

조직개편 이후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 조직 구조. 그래픽 = 차준홍 기자.

조직개편 이후 현대차그룹 연구개발본부 조직 구조. 그래픽 = 차준홍 기자.

이밖에도 연구개발본부는 디자인담당·상용담당을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고, 가상공간 시뮬레이션 조직(버추얼차량개발실)도 신설했다. 버추얼차량개발실은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실물제작·주행시험에 필요한 시간·비용을 축소하기 위해서 새롭게 조직을 꾸렸다.

이와 같은 R&D 조직 개편은 지난해 9월 14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이뤄진 후속 조치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양웅철 전 현대차 연구개발총괄(부회장)과 권문식 전 연구개발본부장(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들은 장기간 현대차그룹 R&D를 담당하던 인물이다.

이후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R&D 조직 개편에 힘을 쏟았다. 현대차그룹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차량성능담당 사장)을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했다. 현대차 연말 인사(임원 승진자 347명)에서 최다 승진자(146명·42.1%)를 배출한 곳이 R&D 본부다. 지난 3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직접 R&D·미래 기술에 5년간 45조3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힌데 이어, 9일 조직개편까지 했다.

미래차 개발→품질·수익성 향상→R&D 재투자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조직 변천사. 그래픽 = 차준홍 기자.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조직 변천사. 그래픽 = 차준홍 기자.

현대차의 R&D 절대 투자 규모는 경쟁사 대비 다소 부족한 편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R&D 투자액(4조4213억원)은 폴크스바겐·도요타의 절반 미만이다. 현대기아차 매출액 대비 R&D 비중(2.9%)도 도요타(3.5%)·폴크스바겐(5.8%)·GM(5.3%)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번 조직 개편은 R&D 효율성을 강화해 부족한 R&D 투자를 만회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R&D 조직을 개편해서 미래형 신차를 선제적으로 개발하면 차량 품질이 향상하고 수익성이 좋아져 R&D에 재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은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고객 요구에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구조”라며 “연구개발 환경과 협업 방식이 달라지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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