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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 보면 주문처럼 빠져든다…뉴욕 들썩이게 만든 한국 DJ

중앙일보

입력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DJ 예지. 한국어를 활용한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DJ 예지. 한국어를 활용한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지난해 영국 BBC가 꼽은 ‘가장 기대되는 아티스트(Sound of 2018)’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된 한국 아티스트가 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DJ 겸 프로듀서 예지(2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BBC는 “예지 같은 음악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며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 가사가 딥 하우스 비트와 만나 넋을 빼앗는 황홀한 소리를 만든다”고 이유를 밝혔다. 당시 리스트에는 예지를 비롯해 미국 싱어송라이터 칼리드와 빌리 아일리시 등 16팀이 이름을 올렸다.

BBC 선정 ‘기대되는 아티스트’ 예지 #다음달 1일 서울서 첫 단독 내한공연 #“한국어 소리 예뻐서 악기처럼 활용” #음악ㆍ미술 접목 독특한 M/V도 화제

예지는 1년 새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4월 북미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 무대를 장식했고, 이달 말에는 일본에서 열리는 후지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시작한 월드투어도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 다음 달 1일에는 서울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에서 첫 단독 내한공연을 갖는다. 공연을 앞두고 e메일로 만난 예지는 “예전에도 한국에서 공연한 적은 있지만 녹음된 DJ 세트리스트가 아닌 라이브 공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여타 아이돌 그룹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패션 스타일로도 주목 받았다. 예지는 ’패션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편안함“이라며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밝혔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여타 아이돌 그룹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패션 스타일로도 주목 받았다. 예지는 ’패션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편안함“이라며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밝혔다. [사진 프라이빗커브]

그의 음악은 말 그대로 독특하다. 2017년 발표한 ‘내가 마신 음료수(Drink I’m Sippin On)’ 뮤직비디오 배경처럼 국적 불명의 창작물에 가깝다. 그는 한국어ㆍ일본어ㆍ중국어 간판이 등장하는 공간을 헤매며 랩인지 노래인지 모를 가락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노래가 끝날 때쯤엔 국적을 막론하고 “그게 아니야”를 따라 외치며 리듬을 타게 된다. 3분 21초짜리 곡에 52번이나 등장하는 주문에 이끌려 예지가 부린 마법에 빠져든다. 지난해 발표해 애플뮤직 광고에 삽입된 ‘한 번만 더(One More)’ 역시 묘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떻게 한국어로 음악을 만들게 됐을까. 예지는 “한국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지닌 언어로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한다”고 답했다. “한국어 특유의 질감이 있어요. 보기엔 각져 있지만, 발음할 땐 시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영어보다 한국어가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 1년간 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평소에도 집에서는 한국어를 주로 사용한다”며 “언어를 매개로 가족, 조상들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예지가 뉴욕 보일러룸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다양한 국적의 관객들이 한국어 후렴구를 따라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예지가 뉴욕 보일러룸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다양한 국적의 관객들이 한국어 후렴구를 따라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유튜브 캡처]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을 배출한 카네기멜런대에서 비주얼아트를 전공한 미술학도답게 그는 언어 역시 또 다른 표현 방법으로 이해했다. 유년기 시절 일본과 중국에서 보낸 시간 역시 활용 가능한 표현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언어는 보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아요. 과거보다 소통 수단이 많아졌으니 문화를 대표하는 성격이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 역시 “슬프면서도 기쁜, 멜랑콜리하면서도 사색적인 느낌을 담은 필름”에 비유했다.

대학 졸업 후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 라디오방송국에서 DJ를 하며 하우스 음악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는 취미로 음악을 만들었는데, 음악이 업이 되면서 그 반대가 됐다”며 “장르는 다르지만 아이디어가 착상되고 창작하는 방식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술과 음악을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만큼 앨범 커버부터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비주얼 작업도 직접 하는 편. ‘레인 걸(Raingurl)’ 등은 몽환적이면서도 위트있는 연출로 호평받았다.

‘라스트 브레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뷰티 유튜버들이 올리는 영상을 패러디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라스트 브레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뷰티 유튜버들이 올리는 영상을 패러디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그렇다면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어떤 음악일까. “한국인으로 자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람들이 원하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단일민족이다 보니 맞고 틀리고에 관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거죠.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면 바로 전 국민에게 전파돼 사랑받을 수도 있지만, 특이한 아이디어가 살아남아서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려운 환경이고요.” 그는 아시안 뷰티 유튜버의 전형성을 꼬집은 ‘라스트 브레스(Last Breath)’를 언급하며 “불편한 스테레오 타입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할 것 같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소수자로서 하고 싶은 말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번 한국 투어에 대한 기대감도 표했다. 댄스ㆍ재즈ㆍR&BㆍK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다는 그는 “투어 도중 대화를 통해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라고 밝혔다. “저는 스펀지 같아요. 제 주변 사람들이 저의 모양을 빚어가거든요. 음악뿐 아니라 미술ㆍ음식ㆍ유적지뿐만 아니라 정치까지 모두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투어가 끝나고 작업실에 돌아가 추억을 곱씹다 보면 또 새로운 곡이 나오거든요.” 독특한 패션 스타일로도 주목받고 있는 그는 “브랜드보다는 엄마가 어렸을 때 입었을 법한 빈티지 제품을 좋아한다”며 “빨리 동대문에 가서 쇼핑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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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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