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세종시의 한 사회복지시설 사무실에 상기된 표정의 70대 여성이 경찰관과 함께 들어섰다. 여성은 며칠 전 “아들로 추정되는 남성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이미 확인 작업을 거쳤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였다.
잠시 뒤 사무실로 40대 남성이 들어왔다.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간간이 흰머리가 나 있는 남성을 보는 순간 여성은 아들임을 알 수 있었다. 두손으로 아들의 볼을 만져보고 품에 안아 본 뒤에야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42년 전 헤어진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기쁨과 미안함이 교차해서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졌던 아들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겼다. 어느덧 여섯 살 아들은 쉰을 바라보는 장년이 돼 있었다.
1977년 가정형편에 친척집으로 아들 보냈다가 헤어져 #"DNA 통해 찾을 수 있다"는 말 듣고 경찰에 실종 신고 #두 아들 중 둘째만 찾아… 경찰, 셋째 아들 찾는데 주력
42년 전 헤어졌던 모자가 극적으로 만났다.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어머니의 소원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칠순을 넘기고 남은 인생이 줄어들수록 어머니의 속은 타들어 갔다. 생사만 알아도 좋을 것 같다는 바람에서 “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하루가 열흘 같았다.
A씨(70·여)는 42년 전인 1977년 가정형편 때문에 세 아들 중 둘째와 막내를 친척 집에 보냈다. 당시 둘째는 여섯 살, 막내는 네 살이었다. 여덟 살인 큰아들은 A씨가 데리고 살았다. A씨가 두 아들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친척은 둘을 대전의 보육원(당시에는 고아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아들이 보육원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만, 이미 문을 닫아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애만 태우다가 보낸 시간이 30년을 훌쩍 넘었다. 그러던 중 A씨는 지인에게서 “요즘 경찰에서 DNA(유전자)를 통해서 실종된 사람을 찾아준다”는 말을 들었다. 2014년 봄의 일이었다. 반신반의하던 A씨는 서울의 한 경찰서로 달려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고 “아들을 찾아달라”며 실종신고를 했다. 자신의 DNA도 채취해 건넸다.
A씨가 제출한 DNA 자료는 전국 경찰서로 전해졌다. 매년 경찰서에서는 관할 지역 내 보호시설 수용자를 대상으로 DNA를 채취, 보관한다. 실종자나 무연고자를 가족에게 찾아주기 위해서다.
지난 4월 세종시의 한 보호시설에서 유전자를 채취한 세종경찰서 고민희 경사는 경찰이 보관 중이던 DNA와 대조 작업을 벌였다. 마침 2014년 서울에서 아들을 실종 신고한 A씨의 DNA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한번 대조작업을 거친 고 경사는 A씨와 B씨가 가족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연락을 했다.
A씨는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아들의 얼굴을 꼭 보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다”며 경찰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1993년부터 세종의 보호시설에 들어왔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모두 바뀐 상태로 가족이 알고 있는 인적 사항만으로는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해외나 국내로 입양되지 않고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중이라 DNA 확인이 가능했다. 경찰은 B씨와 함께 보육시설로 보내졌던 막내의 행방을 찾는 데도 주력할 방침이다.
세종=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