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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 대북 영향력 없다더니…“지난해 한국에 북일 접촉 지원 요청”

중앙일보

입력

북한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을 부정했던 일본이 지난해는 한국 정부에 북ㆍ일 접촉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8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일 TV아사히에 출연해 “지금 북한에 대해 가장 영향력이 있는 건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의 대북 영향력을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실제로 지난해 일본은 대북 접촉을 놓고 한국 정부에 도움을 구했다는 얘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중앙포토]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이날 “북한과 일본의 정보 라인이 지난해 7월과 11월 각각 베트남 다낭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비공개 접촉을 진행했다”며 “당시 일본 정부가 북한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역할을 요청했고, 남북이 물밑 라인으로 협의한 결과 (북ㆍ일) 접촉이 성사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당시 북한에선 통일전선부가, 일본에선 내각 조사실 관계자들이 만났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정부는 지난해 3월과 9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특사단을 북한으로 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면담했고 면담 결과를 주변 국가들에 전하기 위해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일본에 특사로 보냈는데 서 원장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 원장은 두 차례의 방북 직후인 지난해 3월 13일과 9월 10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났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일본 측은 서 원장 일행에게 북한과의 접촉 주선을 요청했고, 이후 정보 당국은 북·일 접촉을 돕기 위해 남북 비공개 라인을 가동했다. 소식통은 그러나 양국 간 사안이라는 이유로 북·일 접촉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을 거부했다.

일본의 다른 대북 소식통은 “아베 총리는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때 일본 문제를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당시 미국과 신뢰가 없었던 북한은 일본과의 접촉에 앞서 한국 측에 많이 의존했고, 한국 정부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9일 본지와 만난 미타니 히데시 전 일본 내각 조사실 정보관(국가정보원장 격)은 “6자회담 국가 중 북한과 회담을 하지 못한 나라는 일본 뿐”이라며 “다음은 일본 차례”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북한의 반응이 있지 않겠냐는 뜻이다. 아베 총리도 기회가 될 때마다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강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회담에서, 한국은 남북 비공개 라인을 가동해 북ㆍ일 접촉을 도운 셈이다. 지난해 만났던 일본과 북한은 올해 들어 1월과 5월에 외교라인을 가동해 추가접촉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더 진전이 없는 상태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일본 내 대북 소식통은 “아베 총리는 ‘지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말해 '지금'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며 "현재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을 향해 빠지라고 하는 대목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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