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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악마의 속삭임 “바꾸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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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논설주간

최훈 논설주간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거나 “카멜레온 같다”는 말은 오랫동안 우리 삶에선 부도덕의 표징쯤으로 여겨져 왔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게 우리네 예의나 미덕이었다. 세태는 그러나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신속한 방향전환 ‘애자일’의 시대 #영구적 완벽 해법은 애당초 불가능 #오류 확인 즉시 변화의 결단이 필요 #국정도 민첩·유연한 전환 자세로

시대의 트렌드에 가장 촉(觸) 빠른 비즈니스와 기업의 세계에선 요즘 ‘애자일(Agile)’이란 단어가 모든 걸 지배하고 있다. ‘민첩한’이란 사전적 의미의 이 개념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의 장애(bug)와 고민을 극복하려던 기술적 탐구에서 비롯됐다. 치열한 경쟁 속 고객과 수요의 변덕, 자고나면 진화해 있는 디지털 기술의 가속도가 배경이었다. 끊임없이 자기 테스트와 피드백을 거듭해 신속한 디버깅(Debugging, 오류 수정)을 해나가자는 애자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 철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애플·구글·페이스북 등의 IT·인터넷 강자들이 다스리는 시대. 그들의 성공 사다리였던 애자일은 이제 기술의 차원을 넘어 가장 효율적인 경영 관리의 화두로 부상했다. “실패는 빠를수록 좋아(Fail Fast!)” “일단 해봐, 발전은 나중에(Done is better than perfect)” “큰 물고기가 아닌,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 계명은 애자일의 동의어들이다. ‘지체된 결단’을 막으려 아예 작업의 단계별로 마감 시간을 박아 놓는 ‘타임 박싱(Time Boxing)’ 역시 애자일의 필수 컨셉트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처럼 일의 단순 속도만 재촉하는 “빨리빨리”와 애자일은 그 궤를 달리한다. 예측과는 다른 실패를 발견한 즉시 그 원인을 확인한다. 땜질 처방은 금물. 대신 조속히 방향을 바꿔 나아가는 ‘방향 전환(pivot)’이 결합된 민첩함을 전문가들은 애자일로 통칭한다. 농구나 미식축구에서 재빨리 방향을 전환해 패스하거나 질주하는 ‘피봇 플레이’처럼….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 5~10개년 계획 같은 ‘지구전’은 바보되기 십상인 ‘전격전(Blitzkrieg)’의 시대를 우리는 맞고 있다..

이 분야의 고전인 『애자일 프랙티스』(벤캣 수브라마니암)에는 변화의 결단을 가로막는 ‘악마의 속삭임’이 비유로 등장한다. “네 사용자들은 늘 불평만 하지. 그들이 너무 멍청하고 이해를 못해 그런 거야. 매뉴얼도 자세히 안 읽어보거든. 이건 오류도 아니란 말이야. 네 잘못 아냐. 원래 그들이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현학적이거든. 경고 따위 무시해. 멈추거나 바꾸지 마. 계속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시간이 최고의 자산인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경영이야말로 이런 악마의 유혹에 빠져 든 분위기다. 권력의 우유부단과 꾸물거림으로 ‘소득주도 성장’‘탈원전’‘대일(對日) 적대시’ 등의 핵심 경제·외교 정책은 점점 통제하기 조차 힘든 ‘괴물’로 커져가고 있다. ‘끓어가는 냄비 속 개구리’의 공황 상태가 모두의 불안한 심리인 듯 싶다.

애초에 자기 테스트나 시뮬레이션을 거쳤는지 조차 의문스러운 정책들의 오류는 확인된 지도 한참을 지나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금수(禁輸)나 각종 경제지표 악화라는 ‘악성 버그’는 확산 일로다. 거듭된 현장의 알람 피드백에도 권력은 자신의 길만을 홀로, 그것도 멀리 가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지낸 ‘실세’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억울하기도, 불행하기도 하다. 선거 땐 몰랐지만 도저히 지금 이런 정책들은 안 될 것 같으니 연기하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거짓말쟁이, 배반자로 지지층에 몰리면 아무 것도 못 한다. 남북문제 등 과제가 많은데 핵심지지 세력이 정면 반대하면 추진 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정권 핵심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답이리라. 그런데 이게 과연 진보나 보수같은 그런 진영의 정치공학적 문제인가. 바로 나라의 성쇠(盛衰)가 걸린 일머리의 문제일 뿐이다.

리더들의 ‘방향전환 장애’를 분석한 롭 무어는 꾸물거림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자부심과 자존감 등 권위의 상처, 번복에 따르는 재실패의 불안감, 주목과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의 우려.”

(『결단』) 오너인 국민이 국가 경영을 한시적으로 맡긴 국정 CEO의 오랜 꾸물거림은 직무유기에 다름아니다. 내각제나 분권형 책임총리제 같았다면 벌써 CEO가 몇 번은 교체됐을 난국이 아닌가. 임기가 보장된 권력이 ‘변화의 선택’을 이렇듯 주저한다면 시대의 흐름을 잡지 못하는 5년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회의와 저항도 피해갈 수 없을 터리라.

오픈된 정보·지식이 넘쳐나고, 첨단 기술의 발전과 환경을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시대. 영구적이거나, 완벽한 해법은 가능하지도 않은 세상이다. 지금 이 시점의 더나은 방향으로 유연히 선택해 나가는 것. 그게 바로 나와 회사, 국정의 가장 합리적인 생존법이다. 조변석개. 자주 바꾸고, 그 다음 또 바꾸자. 카멜레온처럼…. 요즘 애자일의 세계에서 자주 인용되는 터키의 속담이 우리 권력자들에게 도움이 될 듯싶다. “아무리 멀리 갔어도 잘못된 길이라면 빨리 돌아오라.”

최훈 논설주간